버마의 나날은 조지 오웰의 첫 소설이지만 분량이 가장 길고 그 묘사 또한 빽빽하고 상당히 복잡하게 이루어져있다. 이후의 소설과 달리 기성 소설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다른 소설들이 대부분 3~4명 정도의 중심인물로 구성되어있는 것에 비해서 해당 소설은 그의 다른 소설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중심이 되는 인물은 찌질이 주인공, 악당, 똑바로 못서는 인도인, 개같은년 이라는 그야말로 오웰스러운 구조로 구성되어있지만 작디작은 사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럿 있어서 우리의 시선을 황량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장편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주인공이라면 처음 접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아니면 내가 읽었던 판본의 역자인 박경서가 아직 문학 번역이 익숙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못난 집안에서 못난 얼굴을 가져 못나게 성장한 주인공은 버마의 목재회사 직원으로 취직한다.(초본에는 경찰로 설정할 계획이었지만 출판사가 소송먹고싶냐면서 빠꾸먹었다.) 수입은 괜찮지만 환경은 최악이다. 날씨는 습고 무덥고 주변에는 온통 버마인뿐이며 주변에 있는 유럽인들은 매일매일 무위도식하면서 특권의식과 인종차별의식에만 젖어있다. 주인공은 그런 유럽인들을 경멸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 또한 그 특권을 포기하는 것을 그들만큼 끔직하게 싫어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매일매일 술과 버마인 창@@녀, 그리고 유럽인을 동경하는 인도인 의사와의 의미없는 대화로 간신히 그것을 버텨나간다. (작중 한 문장에 따르면 국민당Nationalist과도 연결고리가 있다고 한다. 훌륭한 반제국주의자 혁명가셨군.)
주인공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은 이미 버마에 동화된 존재이며 유럽으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신 그는 비밀리에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여자 한 명과 결혼하고 20년쯤 근무해 퇴직연금을 쌓을 때까지 꾹꾹 버티다가 1만 파운드(요즘 우리로 치면 7~8억쯤 된다고 상상해보자.)의 퇴직금을 들고 영국으로 도망가 자신의 청춘을 없애버린 버마를 머리속에서 싸그리 지워버린채 무난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이미 상상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줄 가상의 여자와 가상의 영국 시골을 만든채 나름의 도피처를 만들고 있다.
마침내 여자 한명이 버마 깡촌에 나타난다. 게다가 초면에 그녀를 구해주는 인연까지 쌓게 된다. 사실은 구해준게 아니라 그녀 혼자서 발작한걸 진정시켜 준 것에 가깝지만. 마침내 자신이 상상하던 여자가 나타나자 플로리는 그녀에게 나름대로 호의를 쌓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유럽인들 대신 버마에 친근감을 가지는 주인공과 유럽인의 사고방식을 가진채 살아가는 그녀의 간격은 너무나도 컸다.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 싫증이 날려고 한다. 여기에 버마 식민사회를 둘러싼 여러 암투들은 주인공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이런 와중에 간신히, 정말 간신히 기회를 부여잡은 주인공은 유럽인 여성에게 마지막으로 청혼을 하려고 하는데....!
"절대로, 절대로 아니예요! 당신이 이 지구 상의 마지막 남자라 해도 당신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청소부하고 결혼하겠어요!"
이전에 한번 언급한 바가 있지만 버마의 나날은 1984에 못지 않을 정도로 숨막히고 암울한 스토리다.(1984의 초안 중 하나가 유럽의 마지막 남자라는걸 다시 상기해보라.) 1984가 빈곤, 눈에 보이는 억압, 가상의 적, 정체된 사회를 통해서 우리를 괴롭게 한다면 버마의 나날은 온난습윤, 가상의 특권의식, 점차 깨어나는 현지인의 적의 등으로 독자를 짓누른다. 에릭 블레어는 버마에서의 대영제국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가라는 옛 꿈에 기대어 도망쳤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작중의 주인공은 그저 쓸쓸히 죽고 만다. (스포일러라고 하지마라. 원래 오웰 소설에서 주인공이 멀쩡한 엔딩 맞이하는 경우가 없다.)
당연하겠지만 이 소설 역시 오웰의 자아를 철저하게 투영한 소설이다.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오웰은 경찰직을 그만두기전 부터 이 소설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20대 시절을 절반 넘게 빼앗아간 대영제국과 버마에 대한 철저한 증오를 담아서 오웰은 이 소설을 쓴다. 다행히도 소설은 그럭저럭 성공했고 작가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대신 버마 현지에서도 에릭 블레어에 대해서 뜨거운 반응을 내놓았다. (작중 악당인 우포킨부터가 실존인물이다. 실제로는 오웰에게 버마어를 가르친 버마인 경찰이다. 오웰 특유의 고로시가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물론 애초에 오웰은 다시는 버마에 안갈 작정으로 소설을 썼으니 상관없었지만. (가지는 않았지만 1984를 완성한 직후, 다시 버마를 배경으로 중편 소설을 쓰고자시도했으나 한 글자도 못쓰고 죽어버렸다.)
제국주의의 비참함과 대영제국의 허상을 깨달은 오웰은 이후 오랫동안 괴로워한다. 작가가 되고자 시도했지만 작가로서의 원고들은 출판사에서도 반품당했고 그 결과 오갈데없어진 오웰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학대하여 부랑자 생활을 자처하기까지 한다. 그런 상처를 딛고 일어나 다시 버마의 나날이라는 완성된 원고가 출판사에서 통과가 되는건 인도제국 경찰직을 그만둔지 무려 7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오웰은 그때가 되서야 자신이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으라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때에 이르어서도 여자들에게 줄기차게 차여서 여전히 미혼이었지만 사람이 결혼하자고 태어난건 아니지 않은가.
버마에서 오웰은 깨닫는다. 모든 종류의 권력은 피지배자는 물론이고, 지배자 스스로마저도 황폐화시킨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웰은 그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자신이 보아왔던 것들을, 자신의 외로움을 담아서 소설을 써낸다. 그런 외로움은 아직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치유되지 못할 깊은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웰은 상처에 좌절하는 대신 다른 이들이, 미래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행동하기로 마음먹는다. 작가로서의 자신만의 소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오웰의 용기를 생각한다면 쓸쓸한 버마의 무더운 날씨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웰 좋아해서 작품 세 권(카탈로니아 찬가, 동물농장, 1984) 읽어봤는데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 dc App
조지의 개선문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