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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창비에서 나온 구판을 읽고 간만에 개정판으로 재독해보았는데, 개정이 딱히 번역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비교적 최신 이야기를 더 담고 있고-이글턴이 책 발간 이후 어떻게 문학 이론이 전개되어 나갔는지를 이전 챕터들에서 서술하듯이 개괄해나간다든가-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사실 <문학이론 입문>이 문학이론이라는 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생겨났고 어떤 의문이나 필요를 위해 생겨났는지를 설명하는 걸 이해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다. 현상학이니, 해석학이니, 구조주의니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아직 견문이 너무 얕았던 시기에 읽었다보니 더 그렇기도 할 테다.



테리 이글턴은 문학이라는 것이 추앙 받게 된 역사를 되짚어보며 문학을 다루는 학문이 시초부터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먼저 조명한다. 아마 그 이후로 계속해서 문학에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니 사회 참여니 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겠지만, 영문학이라는 것이 지금도 갖고 있는 지배적인 위상을 생각했을 때 그 분석이 지금도 유의미할 수밖에 없으리라. (베어울프를 제외하면) 초서에서 시작하는 그 영문학의 정전이란 시대에 따라 사실 상당히 두서 없이 나열된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라, 고전 영문학 중 몇 가지를 나름 좋아하는 입장에서도 이것이 단순한 계보 이상으로 '진정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주 가지곤 했다. (테리 이글턴은 이런 질문에 "사회적 맥락 없이 좋은 것은 없다"고 간단히 단언하며 근대 민족국가의 기반으로서의 문학 분석을 암시한다)



다만 문학 이론이라는 것이 그래서 얼마나 문학 밖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례로, 프로이트가 지금 일반인들에게 비판 받는 이유 중에는 그가 사용한 문학 작품에서 '사례'들을 자주 차용한 점도 있을 테다. 그런 전통을 이어 받은 정신분석학은 텍스트를 통해서 사람의 무의식, 사람의 관계 등에서의 미묘한 비밀을 탐구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과연 텍스트가 얼마만큼 세상에 대한 비밀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면 솔직히 아리쏭하다. 그 비평 대상이 영화나 드라마로 옮겨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평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을 벗어나 어떤 일반론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심지어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예를 들어서 개인적으로 나는 정신분석학 계열의 비평들이 어쩔 수 없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 조던 피터슨 열풍과 소위 보이루 논문 같은 것들에서 문외한조차 괴상하다고 느낀 제일 큰 요소는 아마 남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라캉의 상징계가 우리가 스스로를 위치시킬 수밖에 없는 세계에 대한 훌륭한 비유인 것은 사실이지만-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언어와는 무관한 '법' 그 자체일 것 같지만-이것이 결국 무엇 위에 자리 잡고 있느냐 하면, 프로이트에 대한 오해 아닌 오해, 남근 선망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정신분학 비판의 남근 중심주의 등등......) 과연 이 남근에 담긴 의미가 정말로 오해를 넘어서 전달되어야 할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느냐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시 정신분석 비평의 과실은 그보다는 사회의 유사 가족 관계 속에서의 미묘한 역학 관계를 분석한 데에 더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어쩔 수 없게도, 문학 이론은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지만, 다룰 수만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문학 이론을 읽는 것이 즐겁긴 하지만, 그것이 그 읽는 것의 즐거움 이상의 뭔가를 담고 있느냐 스스로에게 물으면 잘 대답하지 못하겠다. (최근에는 엘렌 식수의 <Reading with Clarice Lispector>를 그렇게 읽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자신이 문학을 시작한 이유가 문학이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어서, 라고 답했다는 걸 느낄 때면, 뭐랄까, 일종의 문학도로서 문학의 무책임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이 아닌 방식으로 이 주제들을 다룰 수 있느냐고 묻는 내면의 목소리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은 실증적인 과학과는 별개로 여전히 우리 문화와 사회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