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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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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6 (1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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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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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더스트’라는 물질로 멸망한 인류, 파괴된 문명 속 자행되는 야만, 도피처가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 그 안에서의 일상과 우정과 사랑.


크게 세 챕터로 이루어져 있음. 멸망 후 재건된 세상의 대한민국에서 더스트생태학을 연구하는 연구원 ‘아영’, 더스트가 창궐한 시대에 안전한 도피처라고 불리는 ‘프림 빌리지’를 찾아 헤매는 ‘아마라’, ‘나오미’ 자매, 모든 일의 배후를 아는 ‘지수’와 ‘레이첼’의 이야기가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진행됨.


책에서 중요한 요소가 소재보다 인물인 만큼 인물 구성에 대해 먼저 짚자면, 주인공이 연구원인 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때부터 유구함. 하긴 주인공을 제외해도 애초에 다양한 직업을 보여주는 것에 약하긴 했음. 인물을 작가 본인이 직접 겪은(것으로 보이는) 직업(학생, 연구원 등)이나 ‘전통적인’ 남성 직업(정비사, 군인 등)을 여성으로 치환하는 것으로만 구성함.


거기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여성임. 남성이라고 못 박고 나오는 사람 외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칭할 때 ‘그’라고 해서 헷갈릴 수 있지만)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인물이 전부 여성임. 프림 빌리지라는 곳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여성 공동체로 보임. 인물을 여성으로만 구성하는 거야 흔하긴 한데, 김초엽의 경우 유난히 남성을 의도적으로 지우는 것처럼 보임. 그런데 이걸 과연 짚고 넘어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듦(할 말 다 해놓고). 이러한 것을 굳이 짚는다는 것 자체가 이 책 혹은 젊은 국문학 여성 서사 전체에 대한 감상을 흐리고 내 사고를 스스로 가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 는데... 언급할 건 하겠습니다. 이러한 점이 자꾸 눈에 밟히느냐 책(작가)의 특성으로만 보고 넘기느냐가 김초엽 작품(혹은 젊은 국문학 여성 서사) 감상의 분기점이 될 듯함.


딴 얘기로 빠진 김에 조금만 더 하면, ‘여성 서사’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여성 작가들의 문학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재단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듦. 남작가의 글을 언제 ‘남성 서사’라고 한 적 없던 것처럼, 여성이 글을 쓰면 그것이 여성 서사인 것을, 하나의 ‘사조’로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 평하는 것이 과연 문학 감상에 도움이 되는 걸까(어째선지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에서 등장하는 ‘가마 이론’이 떠오른다). 구조나 세대적 특징에 따라 작가들을 분류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이나 PC를 골자로 삼는 현 ‘인기 있는’ 젊은 국문학의 흐름을 단순히 여성 서사라고 단칭 하는 것은 그 안에서의 다양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2화 댓글에 달았던 젊은 국문학 독서 중간 결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들게 되었음. 이에 대한 또 다른 답을 찾는 것이 새로운 숙제이자 목표가 될 듯함.


본 얘기로 돌아오면, ‘우빛’ 때보다 보드라움은 덜함. 우빛이 보드라움에 건조함 추가였다면 ‘지구 끝의 온실’은 건조함에 보드라움 추가 같음. 단편집 안에서 느꼈던 문체적 장단점이 적절히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돼서 문체나 감성만 보면 단편집보다 호불호가 덜할 것 같음.


근데 여기서 표현을 건조하다고 할지 담백하다고 할지 고민했는데(우빛 후기에서 담백해질수록 괜찮다고 했기에), 읽을수록 담백함보다는 건조함이 더 강해 보임. 왜 그런가 하니, 문장 놀이를 잘 안 함. 쓸데없는 기교가 없음. 너무나 정직하게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제시할 것만 제시하고 설명할 것만 설명함. 시점 변화도 정직함. 괜히 왔다 갔다 하지 않음. 챕터에 맞게, 단락에 맞게 딱딱. 마치 교과서로 공부한 글쓰기 같음(비슷한 SF 작가로서 천선란과 강하게 비교되는 점이 이 부분. 천선란에 비해 단락 구성에 군더더기가 덜함. 추가적으로 감성의 토대도 천선란이 ‘시니컬’이라면 김초엽은 ‘온유’라는 차이가 있음). 그럼 보드랍다는 건 대체 뭐임? 건조고 담백이고 일단 부드러움이 기본이라서 그럼. 글 전체의 기조가 부드러움임. 거기다 감성이 담겨야 할 것 같은 순간에는 부드러움을 넘어선 보드라운 문장들이 확 펼쳐짐. 좀 많이.


이번 장편에서는 보드라움보다 건조함이 좀 더 부각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이전 단편집 내에서도 건조함이 더 두드러진 작품들(‘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이 있는데도 김초엽이 유독 젊은 국문학에서 유행하는 감성인 ‘안온 다정 무해 따뜻’의 선두 주자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렇듯 작풍 기저에 깔린 부드러움 때문인 것 같음.


근데 문제는, 그러한 문장들이 극적 긴장감을 잘 형성하지 못한다는 점임. 여기서는 제시된 문장을 받아서 탁 쳐주는 문장이 따라와야 할 것 같은데...! 명언 하나 정도 강렬하게 나오거나 빵 터지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너무나 평이한 문장으로 끝남. 보드라움 하나로만 승부를 보려 하니 단락 자체의 감정적 완결성이 약함. 그런데 그렇게 약한 단락들이 모여 책을 이루니 전체적으로도 심심하게 진행됨. 한마디로 연출력이 약함.


대사가 번역투인 것도 심심함에 한몫하지 않을까 싶음. 인물들이 주고받는 핑퐁과 별개로 대사의 종결 어미 배치가 미숙해서 대사의 리듬감이 현격히 떨어짐. 어떤 인물이든 대사의 끝맺음이 전반적으로 어색함.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나오는 만큼 의도한 사항인가... 싶다가도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함.


세계관 얘기를 좀 하면, 색다르긴 함.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된 소재는 식물임. 멸망한 세계를 구원한 것이 식물이라는 점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가 얼마나 오만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그 식물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식물이라는 점, 또한 어찌 됐든 식물을 심고 퍼뜨린 것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연대와 의지를 보여줌.


그러나 식물이 주요 소재이고 디스토피아 세계관인 것에 비해 자연 묘사에 힘을 안 씀. 또한 더스트라는 물질이 생기고 퍼진 이유에 대한 배경 설명이 약함.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인물의 내면도 다른 인물을 향한 감정 외에 따로 다루는 게 없음. 즉 세계관 구성 자체가 탄탄하지 않음. 단순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아예 설득 자체를 안 함. 과감할 정도임. 멸망한 세상을 다채롭게 묘사하거나 절대자로까지 연상되는 인물의 내면을 다양하게 보여주려면 작가가 어떻게 이 세계를 구상했는지 직간접적으로 보여줘야 해서 그런지, 본 이야기 외에 조금이라도 사족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과감히 생략함.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세계관 자체가 아닌 ‘불행한 시대에 불행한 일들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끝끝내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마음’ 등 회복을 향한 행위의 동력은 사랑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임. 세계보다 인물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바람에 생긴 맹점 같음. 본인이 자신 없거나 관심 없는 부분에 한해서는 과감히 서술을 포기함.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영상미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라도 있었을 텐데... 근데 이건 책이잖아... 아닌가 선택과 집중인가... 아니면 애초에 영상화를 노린 건가...


그리고 과학 지식을 서술할 때 신나 보이는 것과 별개로 독자들이 어느 정도 기본적인 SF 배경지식이 있다고 상정하고 쓰는 것 같음. 이 정도 설정은 다들 알지? 하는 느낌임. 그렇게 얕은 설명과 없다시피 한 설득이 합쳐져 이 책의 SF 부분을 약하디약하게 만듦. 정말 솔직히 판타지와 썩 다를 게 없어 보임.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후기에서 '극도로 얕은 SF는 의외로 마술적 리얼리즘과 다를 게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임. 물론 천선란보다는 낫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임.


서사의 흐름이나 인물 간 갈등에 격한 면이 없는 것도 단점으로 보임. 도덕적 무결성에 집착하는 느낌이 묘하게 난다고 해야 하나, 모든 갈등 요소가 너무 편안하게만 느껴짐. 파괴와 멸망을 예쁘게 포장해서 이상적으로 그리면 이렇게 나올 것 같음. 대립이 첨예한 갈등이 아닌 간단한 말싸움 정도에서만 그치니 ‘안온 속 전쟁’, ‘평화가 허락한 갈등’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음. 책 자체가 하나의 무균실 같음.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책 전체의 균형이 기묘하다 보니 감상 정리가 좀 어려워서 그럼. 주연들의 성격이 비슷한 듯 다르고, 다들 세계 따위 관심 없는 듯 있고, 문체는 건조한 듯 보드랍고, 주제는 식물 찬가인가 싶다가 사랑 찬가인가 싶고, SF인 것 같으면서 아닌 것 같고, 얘가 주인공인가 쟤가 주인공인가 싶고, 재미가 있으면서 없고...


아무튼 한 단어로 정리하면 ‘감성소프트SF’ 그 자체. 여기서 그만 마무리 짓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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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지만 끝내 사랑하게 되는 것. 놓친 후에야 더욱 절실히 감각하게 되는 마음, 세계를 떠나며 피어오르는 고양감. 어찌 보면 모순적이고 어찌 보면 이기적이지만 사실은 관심과 사랑으로 귀결되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


결론부터 말하면 우빛보다 괜찮음. 우빛은 SF가 양념으로 쳐진 감성 나열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방금 떠나온 세계’는 과학적 배경도 감성의 농도도 훨씬 짙고 풍부하게 느껴짐.


우빛과 ‘지끝실’에서 이어지는 작가만의 기조는 그대로긴 함. 두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드라움과 건조함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SF. 그래도 이번엔 우빛보다 소재를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채택해서 인물 간 감정에 집중하기 쉽고, 단편집이다 보니 장편에 비해 늘어지지 않음. 장애와 결핍, 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주여서 (뻔하긴 하지만) 상징성도 좋고 생각해 볼 거리도 많음. 여러모로 전작 단편집과 장편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괜찮게 채워짐.


근데 ‘두 명의 주인공’이라고 굳이 쓴 것처럼, 상황과 배경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모든 단편의 플롯이 비슷한 건 단점으로 보임. 그중에서 인물 구성이 가장 비슷한데, 어느 한 명은 꼭 소수자를 대상화한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그를 관찰하고 호감을 느끼며 이해하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인물임. 이렇게 두 명만 나옴. 모든 단편에서. 그 외엔 어떤 인물도 희미하게만 스쳐 지나감. 단순한 만큼 읽기는 쉽지만, 이는 곧 작가가 하고픈 말을 하려는 방식이 단 한 가지밖에 안 된다는 것과 같음. 다른 방식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다양한 상징과 소재도 뻔한 흐름 속에 갇혀 버리게 됨. 이러한 일 대 일 구조는 이번 단편집뿐 아니라 모든 전작에서 동일하게 흐르는 구조이기에 더더욱 단점으로 보일 수밖에 없음.


글이 너무나 평이한 문장으로만 구성되어 극적 긴장함이 약하다는 것도 전작들과 이어지는 단점임. 독자의 마음을 갖고 놀지를 못하고 너무 밋밋하기만 함. 소재가 아까울 정도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기분을 느낄지 예측이 됨. 하다못해 벅차오르게도 할 줄 모름. 이쯤 되면 SF에 가려져서 그렇지 기본적인 문장력이 부족하다고까지 느껴짐.


세계관 설득에 대해서 짚자면, 애매하긴 함. 전작들보다는 더 설명을 해주려는 것 같은데 단편별 편차가 크고 한 작품 안에서도 배경이나 인물 설정 중 하나는 뭉뚱그림. ‘이러저러한 느낌’을 전달하는 건 능하지만 그 ‘이러저러한’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알려주지 않음.


내용을 보자면 어긋난 관계와 그로 인한 결별이 주임. 소수자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인물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서 겉돌기도 하고 나름 괜찮다고 느끼며 살아가다 결국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기 위해 ‘탈출’을 거행함. 관찰자 역할의 인물은 항상 한발 늦게 그의 마음을 진작 헤아려 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거나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을 애써 삼킴(이러한 엔딩을 보면 최은영이 생각나는데... 최은영의 씁쓸엔딩은 결별 이유가 극히 개인적인 마음이라면 김초엽의 씁쓸엔딩의 이유는 상황과 조건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함). 모든 소재가 큰 틀로 보면 ‘장애’이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러한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책 전체의 주제는 ‘이해와 긍정’이 될 것 같음.


그렇다 보니 책 자체에 따뜻함이 감돎. 그놈의 ‘보드라움’도 우빛보다 덜하고 이별이 더 직접적으로 나오는 데도 이상하게 따뜻함이 느껴짐. 그건 아마, 결함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문제시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조금은 다른 너와 나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이해하려는 시선이 이 사회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작가의 생각이 글에 스며있어서 그런 것 같음. 그 모든 부드러움의 원천 또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기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듦.


아무튼 지금까지 읽은 것들로 정리해 보면 김초엽의 작품들은, 범 미래 한국이나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인(이름)이 주로 등장하는, SF가 마냥 얕지는 않지만 그렇게 자세하지도 않은, 두 여성의 관계가 중점적인, 그 끝은 십중팔구 결별인,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 소프트 SF,라고 할 수 있음. 저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거슬려 한다면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거임. 대체 왜 이렇게 유명하지 싶은데 곰곰이 생각하면 유명하고 잘 팔리는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매번 손이 가기엔 주저하게 되지만 막상 읽으면 그럭저럭 잘 읽게 되는 그런 작가임. 한두 권 정도 더 남긴 했지만 이쯤 읽으면 될 것 같음. 김초엽도 한동안 그만.


추천작: 로라



천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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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지금까지 읽어온 젊은 국문학의 아득한 대척점에 있는 작품. 그러면서도 열린 교회가 닫힌 느낌. 아니, 닫힌 교회가 열린 느낌임. 모든 표현과 묘사와 설명 하나하나가 지독할 정도로 ‘빻았’고 구시대적이지만 어째선지 그것들이 촘촘한 설계처럼 보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섬세하게 역겨울 수가 없음. 편협한 시각을 너무나 당당하게 자랑하지만 그러한 독자의 감상을 예상한 듯 가끔씩 모든 걸 헤집어 놓음. 본질이 의도를 가리고 의도가 본질을 가림. 정말 제정신 박혀있으면 이 책의 모든 문장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고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음. 파도처럼 강렬하면서 불꽃처럼 강렬함. 그리고 그 끝엔 꺼진 불씨처럼 연기만 나풀거림.


‘노파’ (- ‘애꾸’) - ‘금복’ - ‘춘희’의 일생을 담은 한 편의 지독한 대하드라마. 기본 골자는 주 인물들의 일대기이자 ‘평대’라는 지역의 연대기임. 의외로 별 내용 없음. 하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줄거리를 풀어쓰자면 한도 끝도 없어질 것 같음. 그만큼 인물도 이야기도 풍부함.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흉내 낸 것 같다는 평이 많던데 공감이 잘 안 감. 만연체긴 하지만 의외로 문법적이고 환상성도 ‘백고’에 비해 좀 더 현실에 부착되어 있음. 백고가 상상력이 뻗어나간 하나의 신화 같다면 ‘고래’는 표현의 확장으로 인한 하나의 설화 같음. 언어나 문화가 주는 차이가 있겠으나 결정적으로 백고가 한 가문에 대한 일정한 흐름인데 반해 고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산발적인 흐름이라는 차이가 있음.


소위 ‘글빨’이 좋음. 만연체에 장광설이 심해 문장이 지저분하나 이상하게 가독성만큼은 좋음. 안 좋을 요소들로 범벅인데 좋음. 설화 같다고 한 것처럼 듣도 보도 못한 옛 단어들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찾아볼 겨를 없이 읽어나가게 됨. 안전벨트 없이 거친 비탈길을 달리는 트럭 조수석에 앉아있는 것 같음. 난 불안해 죽겠는데 와중에 옆에서 아저씨 혼자 신나게 썰 풀고 앉아있음.


일단 다 차치하고, 몸서리치게 빻았고 지나칠 정도로 외설스러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진입 장벽임. 묘사 하나하나에 성적 대상화가 들어있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처참함. 이렇게 원색적인 표현들로 인해 속이 울렁거린 건 처음임. 여성은 성적 객체로서 신체 하나하나 뜯어 품평하듯 묘사하고 남성은 머릿속에 밥과 성관계, 질투밖에 없이 그림. 저게 기본임. 인물을 소개하기 전에 저런 설명부터 최우선으로 함. 거기에 인물뿐 아니라 그냥 모든 비유에 숨 쉬듯 음란함이 들어있음. 적당함이 없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정도임. 그렇다 보니 ‘아저씨가 신나게 썰 풀어주는 것 같은’ 필력과는 별개로 작가 본인은 굉장히 차갑고 차분하게 한 땀 한 땀 공들여 쓴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음.


그러나 읽다 보면 기묘한 감정에 휩싸임. 이거 사실... 뒷걸음질 여성 서사 아닌가...? 주요 인물들이 전부 여성이고 각자 나름의 목적과 본능과 야심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거대한 여성 서사라고 할 수 있음. 작가가 성을 그리는 시각이 특이함. 여성에 비해 남성을 굉장히 단편적인 존재로만 그림. 극 중에서 한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남성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걸 ‘당당하고 인정 많은 여장부에서 이기심과 치졸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속 좁은 사내’가 되었다고 표현함. 남성이 되었기에 주인공은 훨씬 더 당당하고 거침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그는 전과 다른 갈등 요소에 직면하고 망하게 됨. 여성이 닿을 수 있는 사회적 명예의 끝은 결국 남성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거꾸로 그녀는 그가 되었기에 몰락하게 됨을 보여줌.


게다가 대부분의 주요 인물들이 장애 요소를 띄고 있어 이건 또 뭐야... 뒷걸음질 PC야...? 왜 다양해...? 인물의 결핍 요소를 장애로 치환했다고는 보이지 않음. 그렇기엔 당장 춘희가 왜 벙어리인지 마땅한 설명이 없고 상징도 약함. 하지만 춘희가 벙어리이기에 마술적 리얼리즘의 범위가 확 넓어짐.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임. 그렇다면 즉 여기서 장애는 글을 더 재밌게 쓰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 따위는 뒷전임. PC라는 말도 아깝긴 함. 근데 그러한 점이 글빨과 잘 얽혀서 이상한 쪽으로 시너지가 좋음.


구조 얘기를 좀 더 하면, 불꽃같던 1부와 2부가 끝나고 3부가 시작되자마자 심심해짐. 극한으로 동적이었던 이야기 후에 너무나 정적인 이야기가 펼쳐져 갑작스레 지루해지고 늘어짐. 강약 조절의 실패인가 싶은데 1부가 거대한 파도, 2부가 타오르는 불길이었다면 3부는 전소된 잿더미라는 측면에서 이마저도 구조적임. 위트도 마찬가지임. 위트라고 하기엔 의식적인 경향이 강해 그 많은 익살과 능청이 애드리브가 아닌 그저 잘 계산된 농지거리에 불과해 보임.


그러니 이 엄청난 규모의 이야기가 작가의 손을 넘어 스스로 넓어진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작가 손에 붙들려 설계된 구조로 보임. 내가 느낀 역겨움과 기묘함과 놀라움 모두 작가의 의도인 것 같음. '더러운 상업주의와 영합한 플롯’을 비판하고 그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이미 이 자체가 지독한 어느 하나의 플롯에 갇혀있다는 것을 작가는 과연 알까 싶음. 필력에 한바탕 놀아나는 재미는 분명히 있고 독특한 개성과 엄청난 흡인력은 인정하지만 두 번 이상 읽고 싶다는 생각은 없음. 부커상 탔으면 많은 의미로 한탄스러웠을 듯.


하여 그래서, 칭찬과 비난이 난무하는 이 감상에 불만을 가질 이들도 많을 것이니, 젖가슴 타령이나 하는 한1남문학을 애써 포장하는 것이 불만인 자들도 있을 것이고 까려고 읽은 것이냐 저 정도로 웬 지랄이냐 싶은 자들도 있을 것이나, 독자여, 너무 질타 마시라. 이 긴 주저리는 그저 한 개인의 감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책에 대하여 생각할 땐 그 책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고개를 들어 우리의 2000년대를 생각해 보라. 당장에 지금과 성인지 감수성부터 차이가 나지 않는가. 허나 잠깐, 그렇다면 내 지금껏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평해온 젊은 국문학들 역시 단순히 얄팍하다고 쯧쯧거릴 게 아니라 실은 그 자체로 작금을 담아낸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고래가 2000년대를 대변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독자여, 나를 질타하시라! 나는 대체 어떻게 책을 읽어온 것인가, 어떻게 읽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가장 편협한 존재는 다름 아닌 나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나의 비좁은 식견을 어떻게 깰 것인가. 이렇게 하나의 책은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지고 나의 발걸음은 도서관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독서의 법칙이다.



김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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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1, 2


‘TV동화 행복한 세상’ 2021년 버전... 이라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TV동화’에 비해 따뜻함이 덜함. 그렇다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현실 버전인가... 싶은데 ‘달러구트’에 비해 힐링도 교훈도 약함. 이런 표지와 이런 제목에서 기대하는 감성의 농도가 생각보다 연함. 기대에 한참 못 미침. 그렇다 보니 애초에 그러한 기대와는 살짝 다른 책인 것 같음.


일단 문체가 한없이 얕고 가벼움.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책보다 더. 내가 정말 문학을 읽고 있는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임. 근데 그게 그냥 단순히 나풀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계산적인 MZ스러움’에 기반한 가벼움임. 한마디로 아재가 젊은 척하려고 애쓴 느낌이 팍팍 난다는 뜻. 거기다 대사는 올드하기 그지없고 작가의 기본적인 개그 센스는 한숨 나올 수준이라 무슨 깔깔유머집 보고 있는 것 같음.


1권은 한 편의점 사장이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계기로 알게 된 노숙자를 편의점 야간 알바로 고용하고 그 노숙자는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며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를 찾아간다는 것이 주 내용이고 2권은 모종의 이유로 편의점 알바에 지원한 한 남성의 이야기가 중심임. 거기에 에피소드 형식으로 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음.


어찌 됐든 이 책이 표방하는 감성이 힐링이기에 그에 맞춰 얘기를 해보면, 달러구트에 비해 보편성이 약함. 물론 내가 이전에 읽은 힐링 감성 책이라곤 달러구트밖에 없어서 비교군이 없긴 함. 양해 부탁. 우선 타깃층 설정이 애매함. 취준생의 아픔을 가장 먼저 내세우길래 어수룩한 노숙자가 일하는 편의점에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 젊은이들이 치유 받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웬걸, 진행될수록 타깃이 청년이 아닌 중장년이라 느껴짐. 은퇴 후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장이나 잘나가는 대기업 그만두고 방에 갇혀 나오질 않는 아들을 둔 아주머니, 뼈 빠지게 일해봤자 집에서는 찬밥 신세라고 한탄하는 아저씨 등 의외로 젊은 층이 아닌 중년층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중에서 자기 고집에 빠져 가족 간 소통이 단절되어 일상에 웃음과 여유가 사라진 중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옴. 달러구트의 타깃층도 2030으로 어느 정도 편중되어 있긴 하지만 그 안에 녹아든 감성은 연령을 막론하고 공감과 감동을 느끼기에 무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보편적 공감을 무기로 삼기엔 너무 특정 연령과 계층에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함. 하긴 반대로 중장년층이 달러구트 읽으면 하여튼 요즘 젊은이들 약해 빠져가지고 징징거리기 하나만큼은 일품이라고 깔 수도 있을 듯. 어쨌든 욕심 상 이것저것 넣었지만 작가가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썼는지 잘 보인다는 뜻.


그런 데다 앞서 말한 개탄스러운 개그 센스와 더불어 일에 치이고 가정에 치이는 남성 가장 이야기에 서브 주인공 격인 사장 아들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CJ감성감동신파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음. 거친 사회에서 닳고 닳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는 ‘효자’ 감성과 아들 생각에 절절매고 전전긍긍하는 ‘아들맘’ 감성이 너무나 짙음. 솔직히 좀 적당히 해라 싶더라... 너무 과함.


작가의 욕심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보면, 인물들 사연의 시의성도 시의성인데 ‘코로나 시국’에 대한 시의성도 열심히 집어넣음. 특히 단순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코로나 대응에 대한 정부 지침을 열심히 비판함. 이러한 경향은 2권에서 두드러지는데, 인물들의 입을 빌려 거리두기 정책에 대해 강하게 돌려 깜. 이게 정말 목적을 띈 정부 비판인지 극을 살리기 위한 장치인지는...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는 게 맞을 듯. 하지만 책이 나온 시점을 생각하면 오묘하긴 함.


그와 더불어 1권 노숙자의 과거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대체 뭘 위한 설정인지 알 수가 없음. 스포라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후반부 전개는 정말 황당무계 그 자체임. 가뜩이나 책을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가 독자층을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한 넓고 얕은 알량한 힐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렇게 뼈대마저 대충 설정할 수가 있나 싶음. 그마저도 ‘사실은 상처 많고 유약한 중년 아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 어이없는 사연에 직접적인 용서 없이 본인만의 작고 소중한 회개에 코로나 아니었으면 못 썼을 결말까지... 참으로 자기 혼자 가냘프기 짝이 없음. 천명관은 대놓고 빻았기라도 하지, 이건 교묘한 ‘모에화’ 같아서 더 기분 나쁨.


현실에 발을 맞춘 공감과 친숙한 공간을 선정한 선점 효과를 통해 특유의 수요와 인기를 구축했다지만 과연 이게 이렇게까지 장기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책인가 싶음. 가볍고 얕은 만큼 쉽게 읽힌다는 점 말고는 다른 장점을 찾기 힘듦.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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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고공 농성을 벌인 ‘강주룡’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담음. 1부는 혼인과 신혼생활, 남편을 따라나선 독립운동으로, 2부는 평양 일대에 퍼진 노조 운동에 가담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음. 1부와 2부가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함.


추천사에 ‘거침없이 나아가되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다’고 하는데 적극 동감함. 자칫 작위적인 고결함으로 보일 수 있는 비장함을 최대한 줄이면서 주룡이 겪은 모든 기쁨과 슬픔을 비극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지 않아 신파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구조를 잘 단속시킴. 즉, 책에 쓸데없는 부분이 잘 없음. 이북 사투리로 구성된 문장들은 적당한 이질감으로 흥미를 증대시키고 역사 속에서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는 영리한 서사 구조로 감동의 흐름을 잘 잡음. 전체적으로 깊으면서도 간결하고 깔끔함.


그러나 어째선지 책을 덮고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쉬움이었음. 책이 간결하고 깔끔한 이유에는 두께도 포함되는데, 보면 알겠지만 300쪽도 되지 않아 굉장히 얇음. 얇아서 아쉽다? 잠깐 들어봐. 책 맨 뒤에 있는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작가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꽤 많은 자료를 참고했음을 알 수 있음. 물론 그중에서 문학으로 승화할 만한 부분들을 골라 쓰긴 했겠지만, 다른 말로는 거기서 쓸 만한 게 이 정도 두께밖에 안 됐다는 거임. 그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료는 많지만 재료는 적다는 거고 그 파편들을 이어 붙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 책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거임. 물론 이게 평전도 아니고 소설인데 당연히 작가의 가공이 들어가야 하지, 그런데 조미료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책을 얇게 만드는 그 조금의 요소들이 눈에 톡톡 밟힘.


우선 사랑과 호감의 영역이 특히 그러한데, 보다 보면 강주룡을 무슨 팜므 파탈로 만들어 버림. 남자만 나왔다 하면 나한테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여자는 처음이얏 하며 주룡에게 호감을 가짐. 강주룡이라는 인물의 특이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면과 일침이라는 너무 손쉬운 방법만 반복함. 자료 내적인 부분의 조미료가 이렇다면, 외적인 조미료는... 사실 없음. 무슨 말이냐면, 시간의 흐름을 포함한 모든 묘사와 표현이 단정을 넘어 너무나 간결함. 사건, 사고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모두 단 몇 쪽 안에 훅훅 끝나버림. 행적에 공백이 있는 부분은 당연히 건너뛰는 게 맞지만, 제한된 조건을 풍성하게 키우기보다는 그저 정말 제한된 조건 속에서 필요한 설명만 하고 넘어감. 책에 쓸데없는 부분이 없다고 한 만큼 다시 말하면 책에 필수적인 요소밖에 없음. 조미료가 눈에 밟힌다면서 조미료가 없다니... 내가 쓰면서도 이상한데 진짜 그래. msg가 있으면 하는 곳엔 없고 왜 굳이 여기에 싶은 곳에는 있음. 그렇다고 이게 설계 실패인가 하면, 그건 아님. 가뜩이나 여성 운동가라 자료가 풍부하지 않았을 텐데, 그 속에서 뽑아낼 건 최대치로 다 뽑아냈다고 생각함. 설계 실패라기보단 전략의 한계 같음. 실존 인물을 다루는 데에 소극적이어서 능숙함이 부족하게 느껴짐.


결국 이 모든 건 작가가 강주룡이라는 인물을 너무 아껴서 생긴 점들이라고 생각함.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런 인물을 발굴하고 제일 먼저 소설로 쓴 것에 자부심이 강해 보임. 그렇다 보니 굳이 공백을 채워 불필요한 사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거고 상상을 허락하는 부분들에 한해서는 최대한 주룡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을 거임. 인물을 훼손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빛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서툴게 표현된 것 같음.


그 외에 책의 온도와 밝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대사를 따옴표 없이 줄글처럼 처리하고 화를 내거나 소리치는 장면에도 느낌표가 잘 없다는 점이 만주의 매서운 겨울바람과 더불어 책의 기본적인 명도를 낮게 함. 마치 차분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는 것 같음. 하지만 그 안에서 주룡의 의지, 살고자 하는, 이해하고자 하는, 사랑하고자 하는, 벗어나고자 하는, 버텨내고자 하는, 이겨내고자 하는 그 모든 의지에서는 뜨거운 불꽃이 이글거림. 영상 연출로 따지면 기본은 흑백 화면인데 중요한 순간마다 컬러로 보여줄 것 같은 이미지임. 차가움과 뜨거움의 균형이 잘 맞으니 이야기가 담담하되 단단함.


그러니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와 별개로 이러한 인물을 조명한 이러한 책은 조명 받아야 한다고 생각함. 어찌 보면 ‘젊은 국문학 여성 서사’를 논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어야 할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듦. 무엇보다 전혀 몰랐던 색다른 인물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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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절이 이제 너무 질려

- 그럼 안 읽으면 되시겠습니다.

- 근데 아직 궁금한 게 많아

- 그럼 읽으면 되시겠습니다.

- 근데 솔직히 거기서 거길 것 같긴 해

- 그럼 안 읽으면 되시겠습니다.

- 아직 안 읽어본 작가도 많고...

- 그럼 읽으면 되시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책을 검색하고 대출 여부를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는 사다 놓은 책이 그대로 쌓여 있는 채...


안녕하세요. 자칭 겉절이 감별사, 젊은 국문학 찍먹러입니다.


실은 겉절이는 잠시 쉬고 한동안 집에 있는 책들을 읽으려 했는데 어째선지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예상만큼 못 읽고 1부를 마무리 지어서 그런지 아쉽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런지 이것도 안 읽고 저것도 안 읽고... 그냥 별안간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손 놓고 있을 바엔 뭐라도 읽자 싶어서 다시 젊은 국문학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튼, 1부 후기에서도 언급했듯 이번엔 극히 최근의 젊은 작가들이 아닌 겉절이 전체로 판을 좀 더 넓혀보려 합니다(그 첫 타자가 천명관의 ‘고래’였습니다). 어디서부터가 젊은 국문학이고 어디까지가 늙은(?) 국문학이냐는... 그냥 알아서 적당히 자르겠습니다. 읽을 책이 넘쳐나니 부담스러우면서도 설레네요(집에 있는 것들은... 짬짬이 천천히 읽기로...).


그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