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속의 집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이 더 있다

내가 살고 있지 않으나
나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집
내가 나를 지나야지만 들어가게 되는 집

내 아버지라 여겨지나 내 아버진 아니고
내 어머니라 여겨지나 내 어머닌 아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

형이라 여길 만한 다른 누구도 있다
그 사람을 대하면 내가 사라지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잠깐 나와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내가 살고 있으나 내가 살아 있을 땐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세상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에서
사람들은 황토 비늘 같기도,
불에 데어 기포가 돋은 것 같기도 한 피부를
잠깐씩 뒤집어썼다가
불쑥 내가 알고 있는 사람으로 변해
날 못 본 체 지나간다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외출하는 모습을 잠깐 봤다
아버지는 외출한 적 없는데 집에서 안 보인다

몸과 공간이 자꾸 서걱대며
서로 다른 공기 속에서 마찰할 뿐,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선 편했던 옷이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에선
다른 짐승의 껍질처럼 피부를 겉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못 만나고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문과 창의 각이 뒤틀려
마름모와 평행사변형들이 집 안 가득 떠돈다
공기는 흡사 수렁 같다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이 내 안에 있다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내 안에 더 깊게 많다니

내가 살고 있는 집
거울 속에서 푸른 물이 쏟아진다
형의 얼굴이 사분오열되어 내 몸에 들러붙는데
그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어머니를 소리쳐 부른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아버지는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집에도,
내가 살고 있지 않는 집에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엔
붉은 옷을 입은 금발 여자가
복통 앓듯 쭈그려 신음하고
다른 쪽 문을 열었더니
흰옷을 입은 흑발 여자가
금발 여자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다

금발 여자가 더 크게 신음할수록
흰옷 출렁이는 흑발 여자의 나비춤이 격렬하게
내 목구멍 안에 박힌다
숨 막혀 소리 지르자
목구멍 안에 쓰개처럼 걸쳐 박힌 나비가
어머니가 외출할 때 입던 옷으로 출렁이며
입에서 떼로 쏟아져 나온다

이 장면이 낯익다
어릴 때 본 어떤 화가의 그림 속이 내 집이었던 것
단정히 개켜 놓은 어머니 옷을 펼쳐
화가가 그림 그린다

화가는 어릴 때 누이를 잃었었다
화가가 색색 안료들을
내가 사는 집 벽에 회칠하고
나는 세 번 정도 죽어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팔다리가 길게 늘어나 온몸 죄어 오는 소릴
형의 귀에서 뺏어 들었다

통로가 좌우 사선으로 뒤뚱거린다
두 발은 동시에 두 걸음씩 허공을 헛딛고
계속 어머니를 부른다
화가가 금발 여자의 신음소릴 떠 벽에 짓이긴다
화가는 눈 코 입 없이 얼굴 전체가 검댕,
열일곱 살 때 스케치북에 황칠했던 그 얼굴이다

바닥에 또 푸른 물이 흥건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오래전부터 물속이었던 거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머리통이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춤추는데,
그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아
이곳이 바로 무덤 속인 듯싶다

화가의 얼굴 뒤에
또 몇 명의 사람들이 검은 형태로만 다가와
커다란 들통에 무언가를 삶아 댄다
온 사방에 김이 올라
흰색 노란색 콘크리트가 누액처럼 흘러내리고
그 위,
적갈색 상자에 밀봉된 음악소리가
뒤뚱뒤뚱 빗금을 긋는다

삐딱하게 놓인 노란 식탁에
들통에서 꺼내진 육질 덩어리

설핏 엄마를 닮았다

나비 떼가 허공에 멈춰 못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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