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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이어 도련님도 완독한 거시야요. 재밌긴 했지만 단편을 개작한 것이라 늘어지는 부분도 꽤 많았던 전작과 달리 ‘도련님’은 확실히 제대로 준비하고 쓴 듯 구성도 탄탄하고 늘어지는 부분도 없이 단숨에 읽히는 고야요. 


1906년에 발표된 소설이라는데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인 무정이 1917년에 나왔으니 족히 10년은 이르게 나온 셈) 지금 읽어도 틀내 안 나고 세련된 느낌 한가득이야. 


무정은 안 읽어봐서 정확한 대조는 불가능한데, 읽어본 사람들 말에 따르면 무정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하니까, 저렇게 아마 세련된 맛은 없는 작품이겠죠. 듣기로는 계몽 소설이라 그러니까 더더욱 그럴 테고요. 


아무튼 샛별이는 그 이유가 뭘까? 이토록 빨리 나온 소설인데 조선 묵은지 특유의 그 퀘퀘한 군내가 (그것들은 그것 나름대로 맛있긴 하다만) 안 나는 이유가 뭘까? 하고 곰곰이, 는 아니고, 글 쓰는 도중 가볍게 생각해봤는데,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그 중 샛별이 맘에 가장 재밌게 다가온 것이 바로 ‘개인’의 존재였사와요. 


소세키는 도련님의 초반부에서, 아니 고작 1장인 15~27 페이지까지만 할애했으니 초반부라고조차 말할 수 없겠죠. 아무튼 작가는 그토록 짧은 초반 분량만으로도 주인공의 성격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함과 동시에 주인공이 가족 공동체로부터 벗어나 ‘개인’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조금의 조급함도 조잡함도 없이 거의 산뜻하리만치 가뿐히 그려내버리는 고야. 


동시대의 조선 소설…… 같은 건 없으니 그보다 몇 십 년 뒤로 넘겨봐도 소설 내의 주인공이 이토록 가뿐히 개인으로 자립하는 일은 조센에선 흔치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1906년으로부터 한참 뒤인 1980년대 쯔음에서나 겨우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뭐 샛별이가 조센 묵은지 연보 다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니 틀렸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대충 그 엇비슷한 시기였을 거임. 


그리고 그때조차 이렇게 산뜻하게 개인으로서 등장하는 작품이 있나 싶어요. 다들 묵은지 특유의 구질구질, 질척질척한 분위기의 기반이 되는―


(완전히 돌아버린 실험 소설 제외. 아니, 근데 그 대가리 깨지게 어렵다던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같은 것도 가족 이야기 아님? 샛별이는 안 읽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갑자기 딱히 있지도 않은 힙스터 본능 발기 하지 않으면 읽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아무튼 조센의 혈족 주의는 이토록 뿌리 깊은 것.) 


―가난, 뿌리 깊은 혈족주의, 구태의연한 전근대적 사고방식, 눈치 좆나게 주는 서열 문화 등등 의 잔재로부터 완전히 탈출하지 못하고 거기서 헤우적되고 있지 않음? 


그런데 이 도련님이란 소설은 1906년에 쓰였으면서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구질구질하거나 질척질척한 분위기까지 연상시키는 않는다 이거야요. 


물론 아예 아무것도 안 남는 건 아니야요. 혈족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개인이 된 주인공에게도 ‘기요’라는 여성은 분명하게 남아요. 그러나 그 여성은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과거의 존재고, 친인척도 아니야요.


분명 기요는 주인공의 부모를 대신해 그에게 사랑을 주고 그를 길러준 존재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론 피도 안 섞인 남이고, 남의집살이를 하는 하녀일 뿐인 존재라 주인공을 길러주었다고 해봤자 묵은지 소설이나 아침 드라마 따위에서 흔히 나오곤 하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식의 대사를 치며 질척질척하게 달라붙는 존재는 못 되는 고야. 


기요는 다만 멀리서 주인공을 응원할 뿐이고, 그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구질구질해지기 쉬운 생계 문제 또한 정말로 아끼지만 피도 안 섞인 주인공이 아닌 피가 섞인 조카의 도움으로 해결한다는 설정이야요. 


아마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이토록 산뜻하게 가족 공동체 밖으로 나와 홀로 설 수 있었을 거야요. 


그러나 한 인간이 개인이 되려는데, 가족만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죠. 이를테면 그 먼 옛날에도 가족 공동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도 자신이 가장 의지할 수 있을 핏줄 공동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곧 고생길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먼 옛날에는 얼마나 더 했겠어요. 


그러니 방랑벽을 못 죽인 그런 방랑자들은 죽거나 힘든 삶을 살아야만 하거나 곧 돌아오거나 하는 식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을 거시야요. 


음, 그러니까, 샛별이 말은, 한 인간이 개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한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보기보단 가족의 구성원 중 하나로써 여기는 전근대적 가족 공동체 밖으로 탈피할 경우, 그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이 허다하게 생겨난다는 말이에요. 그건 바로 가족 공동체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가족의 구성원 중 하나인 나를 위해 해주었던 집단적인 일들을 내가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야요.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그런 일들을 혼자서 해나갈 만한 힘과 의지력이 없는 고야. 그래서 전근대 사회에서 개인 같은 게 없었던 걸 테고. 


그런데 소세키의 도련님은,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묵은지들처럼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는 대신 아주 산뜻하게, 단 몇 문단만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거시야요. 




[나는 드러누워 6백 엔을 어디에 쓸지 곰곰이 생각했다…… 마침 물리학교 앞을 지나다가 학생 모집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지원서를 받아 바로 입학 수속을 해버렸다…… 그럭저럭 3년간 남들만큼 공부는 했지만, 워낙 소절이 없는 터라 석차는 항상 뒤에서 헤아리는 게 빨랐다…… 


“시코쿠 근방에 있는 중학교에서 수학 교수를 구한다네. 월급은 40엔인데 가보는 게 어떻겠나?”] 




하는 식으로요. 좀 어처구니가 없죠. 하지만 달리 보자면 이때의 일본은 이미 학교 같은 근대적인 시스템이 자리잡았다는 말이 되겠네요. 


여담으로 백석 시인은 1937년 언저리에 선생으로 근무 중이셨는데, 그때에는 그만한 직업도, 아니, 농사 짓는 것을 제외 한다면 직업이라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었던 터라, 학교 선생이란 게 대단히 명예 높은 (유교 문화 영향도 컸겠지만) 직업이었던 듯한데, 1906년에 쓰여진 이 도련님이란 소설 내의 선생이란 직업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하네요. 


물론 소세키의 풍자와 익살 덕분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작중의 주인공은 백석같은 엘리트가 전혀 아닌데도 선생이 될 수 있었던 만큼, 그리고 뭐만 하면 수시로 때려치운다고 말할 만큼 직업 선택의 자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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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시인’들 보다는 더 있었다는 증거겠죠.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문학적 표현일 뿐이면, 아님말고야요. 




자꾸 책 내용하고는 별 상관 없는 일뽕스런 딴소리만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원래 독후감이란 지좆대로, 아니 샛별이는 좆이 없으니 샛별 핑크 뷰지대로 쓰는 거 아니겠음? 


기왕 딴소리 하기 시작한 거 샛별이는 이쯤에서 소세키의 계보를 잇고 있는 그 녀석을 불러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도련님 읽는 내내 그 녀석 냄새 진동해서 실소나던 차였던 고야요.


물론 이 경우에는 소세키에게서 그 녀석 냄새 난다고 하는 건 순서가 역운지한 거니, 자기는 일본 문학 같은 거 잘 안 읽었다고 그토록 말하고 다닌 그 녀석에게서 소세키 냄새가 진동한다고 하는 거겠죠. 아무튼. 


조센이 대충 1980? 아무튼 그 언저리 쯔음일 때, 고도성장기다 뭐다 한 덕에 조센도 드디어 평범한 좆간들이 개인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질 때쯔음,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다들 처음 겪어보는 일이고, 과거의 잔재 또한 그리 쉽게 떨쳐낼 없어 다들 머뭇거리고만 있을 때, 혜성같이? 라기보다는 머중 문화와 같이 스며들어 쨰즈, 위쓰키, 프리 쎆쓰, 소확행 등등을 쿨하게 말해준 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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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샛별이는 하루키가 소세키의 계보를 잇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소세키와 하루키가 똑같다는 말은 아니야요. 일단 소세키가 그려내고 있는 이 도련님이란 캐릭터는 하루키의 캐릭터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야요. 아마 작가의 차이 만큼 시대상의 차이가 그에 큰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샛별이는 생각하는데…… 아직은 모르겠노. 


뭐, 그걸 탐구해보는 게 이번 소세키 전집 읽기의 목표 중 하나야요. 


아직 전집에 실린 14개의 책 중 2권만 읽을 터라 뭐라 하기는 어려운데, 듣기로는 샛별이가 전에 읽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 이번에 읽은 ‘도련님’처럼 유쾌한 분위기의 책들은 작가가 온천에서 피 토하고 죽기 일보 (30분 동안 임사 상태였다던데) 직전까지 간 이후로 확 달라진다고 하는데, 과연 어찌될지.


그리고 또 한가지 듣기로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일문학 작가는 소세키라고 해요. 근데 하루키는 소세키가 근대 문제를 고민한 후기 작품들보다는 문과 산시로 등을 좋아한다더라. 특히 문에서는 태감새의 영감을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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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것들 다 작가가 피 토하고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 전에 썼던 글들이기도 함. 




하여튼 하루키 이 작가는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과연 이 작가는 얼치기 1머중 문학 작가인가? 


아니면 36 슨상님을 따라 노! 벨상을 받을 갓작가인 거신가? 


참으로 궁금한 것입니다..




흠. 소세키 책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시 하루키 이야기만 잔뜩하고 만 거시야. 하지만 괜찮지 않을까? 


분명 작금의 독갤 하루키단은 할복맨에 밀리고, 한때 독갤 하루키단의 필두였던 샛별이의 전향 혹은 회샘으로 세력이 다소 죽었다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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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못 받을 듯) 이자 


이승우 작가가 30년에 걸쳐 생의 이면 5만권 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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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최다판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1Q84' 판매량이…'어마어마'



10년간 최다판매 작가 1위로 선정된 하루키의 책들은 교보문고에서 89만 4000여 권 판매를 기록했다. 교보문고의 점유율이 전체 도서시장의 20∼25%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350만∼450만 권이 나갔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출간된 ‘1Q84(전 3권)’은 현재까지 총 200만 권이 판매돼 화제가 됐다.




책을 이만큼이나 팔아댄 메가 히트작가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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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갤의 아이도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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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그리 왜쳐댔지만 이상하게도 글에서 소세키 냄새가 노무 풍기는, 


하루키, 또 당신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