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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희곡 주인공들은

카뮈의 철학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한 지점을 극대화시켜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

카뮈의 철학은 삶에서 쉽게 느낄만한 무언가(부조리)에서 시작해 카뮈가 설정하고 사유한 지점으로 정도를 걸어 결국 그토록 외쳤던 영원의 사랑이라는 도차에 다다르는 느낌이라, 이 여로에 있어서 언제 한번이라도 샛길로 가버릴 경우 인물이 다소 비정상적으로 변한다는 생각이다 .
(철학적 자살, 노예의 반항 등 다소 강하고 괴팍한 어조 -물론 이런 괴팍함이 부조리 그 자체지만- 들을 사용하여 낭만에 다다르기 위한 고행길)


그래서 소설과 희곡의 주인공들.


<칼리굴라>의 칼리굴라, <오해>의 마르타, <이방인>의 뫼르소, <전락>의 클라망스 등은 모두 카뮈의 사랑에 다다르기 위한 여로를 밟아가던 중 한 고난에 봉착했을때 자신들만의 회피를 통해 카뮈의 작품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기묘한 분위기를 지닌 인물들이 탄생하게 되는 듯 하다.

그리고 재미난 점은 이들이 카뮈의 철학에서 어느 부분에서 회피하고, 엇나가고, 샛길로 가버렸는지 꽤나 직접적으로(특히 전락) 다가와 기묘하지만 확실한, 괴랄하지만 확고한 신념을 지닌 캐릭터들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허나 이에 반하는 주인공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페스트>와 <정의의 사람들>이다.

페스트의 리외는 카뮈의 모든 문학중에 본인이 가장 많이 투영된 인물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접한 카뮈의 작품중에선 그렇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가난입니다.'

<페스트>의 세상은 단지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부조리와 반항을 직접적으로 극대화시킨 것애 불과하다.

보이지 않고 상시시키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는 부조리를 눈 앞에 목도시켜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인 질병. 그리고 그 질병에 대한 반항에 있어 가장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내세워 '반항하는 인간'의 고뇌를 가장 용이하고 명징히 관객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팬데믹 사태를 겪음으로써  글자가, 부조리가 살아 숨쉬며 우리 곁에 혼재함을 뚜렷히 느껴버렸다.
오랑의 고립이 풀리더래도 결국 지구를, 부조리에게서 풀려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카뮈는 주사기 대신 펜을 잡은 또 다른 한 명의 이념적인 시지프였을 것이다.

<정의의 사람들>은 카뮈 작품들 중에 가장 뜨겁게 타오름과 동시에 경외와 찬사로 가득찬 작품이 아닐까?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반항을 통해 소위 인간군상이 뚜렷히 드러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일 것이다.
부조리 파트의 <오해>와 <칼리굴라>의 난해함은 없어진 채 소위 말하는 '정석극'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각색의 매력을 지녀 나에겐 마치 아서밀러의 <시련>이 잠깐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이는 부조리를 주연 인물에 담지 않고 외부에 두어 우리가 사는 현세와 동일시된 구조를 띈 세계를 창조했음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꽤나 로망도 섞여있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3부인 '사랑'파트를 잠시 맛본듯이 느껴지는 본 작품때문에, 사랑파트의 작품이 얼마나 찬란했을지, 카뮈만의 셰익스피어를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크다.





전락보다가 삘타서 썼는데 은근 길어져서 걍 좀 더 쓰고 감상탭으로 옮김.. ㅎㅎ.
아직 못본작품 많습니다.. 그래도 최애작가님이라 좀 끄적끄적해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