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ㅈㅏ본주의.....
나는 책을 쥐자마자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빨간-검은색 .것은 역사적으로 생디칼리즘, 아나코-코뮤니즘의 상징색이 아니었는가!
머리가 띵해진 나는 책 뒷면을 보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불멸의 고전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의 대표작. 『공산당 선언』을 말이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아주 혁명적인 역할을 해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牧歌的) 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얽매어 놓고 있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없이 토막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노골적인 이해 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騎士的)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 가치로 해체했으며, 특허장으로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즉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종교·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공산당 선언, 제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아아! 그렇다. 기존의 차가ㅇㅗㅗㅗㅗㅗ ㄴ자본주의에 대한 오해는 여기에서 기반한다. 이 책은 철저하게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현행 체제를 해석하고자 시도한 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가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를 한다고 판단해버린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책 전체를 살펴봐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 말로는 책 내내 설명했다고 하는데 내가 이해를 못한걸 보니 헤겔스럽게 설명했나보다. 역시 마르크스주의자답다.)
저자가 아무런 생각없는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자기가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이야기를 진행할리가 없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럴리가 없다. (물론 책의 저자는 우리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다고 보는 편이 낫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자본주의가 뭔지 알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논쟁기념 123주년 키배가 예정된 글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는 차갑디 차가운 이 세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캐피탈리즘 호!(치민 아님)
1. 자본주의
저자는 이 세상을 이렇게 판단한다.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지 마라. 받아들여라.-10p" "세상은 얼음보다 차갑다. 세상은 잔혹하며 온갖 악으로 가득차있다.-26p" "나는 그 위선이 역겹다 못해 혐오스럽다.-92p" "그렇게 소수와 다수를 갈라쳐서 표를 얻어가는 이들이 정말 싫다는 말이다. -118p"
이 얼마나 가슴절절히 울리는 명문인가? 흡사 라이트노벨 주인공에서나 볼법한 정의감이지 않은가? 나는 읽다 눈물을 흘리며 조지아 맥스 커피를 사러 달려갔다. 조지아 맥스 커피는 원래 모든 혁명가의 음료니까...(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산업재해가 자본가의 살인 사건이라는 진실을 알고 있는가?)
노동자가 상처받지않는 체제가 완성될까요?
아무튼.
저자는 이렇게 세상을 중요시여긴다. 심지어 돈 때문에 책 내는게 아니라는 사람을 거른다고 한다. 세2노와 자@@청에게 동시에 엿을 먹이는 그 포스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런 사람들과 차가운 책.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을까? 당연히 마르크스주의자 아니겠는가? 아니면 넌 파쇼새끼거나 트로츠키주의자인거고. (실제로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개@돼지 혹은 닭대가리라고 한다. 전형적인 동물농장적 포스가 풍기고 있다.)
한편 이렇게 시장개입에 분노하는 저자지만 진짜 반시장적 악법인 도서정가제, 단말기정가제, 아이스크림정가제, 원유가격연동제, 대형마트 영업제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맨 첫번째는 책을 안 읽을테니 그럴터고 나머지들은 왜일까? 미국 책과 한국 보수유투브만 봐서 한국 현실을 그냥 모르는 게 아니라면 그럴 수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저자 또한 결국 이윤 추구가 목적이기에 도서정가제에 찬성할 수밖에 없나보다. 이 부분은 서러웠다. 하긴 마르크스도 주식 투자는 좋아했다고 안했던가.
또 통화 팽창의 주역이 은행이라고 밝힌다. 미국에서 나온 책을 읽은걸 그대로 옮겼을까?(미국은 지폐발행권한이 재무부가 아니라 은행에 있다.) 156p에서는 한국은행에서 발행한다고 명시하고있는데 이상하다. 아니면 현행 권력이 부르주아지의 이득을 대변하는 장치임을 암시하거나. 경제 활동의 주체가 공급자와 소비자라고 선언함으로서 노동,기업,정부 (난 이걸 초등학교때 배웠다.)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아서 후자인듯하다. 역시 마르크스주의자다.
2. 뜨거움.
이 책의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게 저자의 뜨거움이다. 책 제목과 대치되는 이러한 내용 전개는 책 저자가 자본주의를 비판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표현의 강렬함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감정의 강렬함은 갓 태어난 애도 울음,짜증,분노를 통해서 표출할 수 있다. (책 저자 정신연령이 그정도라는건 아니고 예시가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뜨거움 덕분에 모순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냥에 실패해도 괜찮다. 우수한 야구선수도 타율이 3할이다.21p" -"이윤으로 창출하지 못한 것이 나쁘다.-129p"
"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돈을 믿는다.-27p" - "인간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필연적으로 있어야한다. 209p"
"다주택자들 덕분에 건설사는 파산을 막았으며.-106p" - "혹독하기 때문에 누구나 성공하지 못하고 -67p"
(개인의 실패는 어쩔 수 없지만 기업의 파산은 안된다는 시점에서 참으로 공산당선언스럽다고 할만하다.)
"평생 (가난뱅이) 그 모양으로 살다가 고통스럽게 뒈져버려라! 118p" -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서 찾지마라 -149p"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설픈 파쇼 새끼들은 역시 아무 생각없는 중졸새끼라고 욕을 한다.(저자는 자신이 고졸이라고 항변하지만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4년제졸업 미만은 다 비슷한 수준으로 간주되기에 의미없다.) 그보다는 우리는 이것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정-반-합. 윤씨와 루카스씨라는 두 개체가 서로를 통해 반박함으로서 이론의 상승효과를 시도하는것이다. 자신의 이론에 반대하는건 범죄 vs 특정 이벤트 몰이용 전략을 시도한 어떤 사람과 똑같은 방법론이다. 훌륭하지 않은가? 이러한 모순을 이겨내는 것이 마르크스주의다. 버텨라, 살아남아라. 평화협상 맺다가 총탄을 맞아도 살아남아라. 글쓰다가 대가리에 도끼가 찍혀도 버텨라. 그게 마르크스주의다. 너가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하지 않았어도 마르크스주의가 널 선택했다. 그러한 경쟁과 잔혹함이 아름다운 세상이 마르크주의다. 뭔 소리 하는건지 모르겠으면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사실 저자가 뭔 말을 하고싶은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여행을 마치며
뭔 말을 했다고 벌써 끝내냐고 따질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래 책이 200p인데다가 여백이 넓직넓직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없는 내용을 만들어내는건 저자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못한다. 그게 가능했으면 웹소설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윤루@카스씨의 책을 보면서 나는 혼란스러움에 어쩔 수가 없었다. 루카스인지 카프카인지 정해진 주제 없이 이런저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하게 직구를 때리자면 자기 신념없이 자기 마음에 드는 문장 이것저것 가지고 와서 자랑스럽게 떠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마음에 안들면 화를 낸다. 나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지만 아무튼 상대방은 나를 존중해야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인성 수준은 칼 마르크스를 훨씬 뛰어넘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의 30만 구독자들 중에서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같은 위인이 없다는 정도겠지.
더욱이 윤루@카스씨는 특정 세력, 반시장주의적, 무엇인가를 증오하는 기색을 책 전체적으로 내뿜는데 그들이 누군지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하긴 특정성을 밝히면 고소당할테니 그 편이 현명하기는 하겠다. 나도 그래서 책은 전체적으로 순화시켜서 썼다. 이 감상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나도 날것으로 쓰겠다. 그 전에 폭력혁명으로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시간이 도래했으면 좋겠다. (다시 조지아 맥스 커피를 들이키면서)
윤루@카스씨가 원하는 세상이 도래하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들끼리 생산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생산자들은 아무튼 망하면 안된다면서 존중받기를 원하고(물론 소비자들과 노동자들은 존중하지 않는다. 윤루@카스씨에게는 노동자가 소비를 한다는 관념이 없나보다) 서로를 갈취하려는 세상,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개막하는 것이다. 막말로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과 신의가 없고, 패배자에 대한 존중(내 말은 도박하다 말아먹은 작자라도 개평은 쥐어줘야한다는 소리다)이 없는데 그런 사회가 존재할리가 있겠는가? 얼마 안가 초고교급 절망이 개막할게 뻔한게 말이다.
물론 윤루@카스씨의 최종학력을 고려해볼때 처음부터 그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윤루@카스씨는 고졸이다. 아니, 아니 이게 아니다. 윤루@카스씨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혼란에 빠져 공황에 빠져 붕괴할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제11번
ㄴ 비흐가 왜 금지어인가. 포락갤의 침공이 두렵습니까?
윤루@카스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인간들이 최저임금에 묶여있다. 그리고 생산직에 묶여있고 이들은 임금 결정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여기서 수정주의적 개량주의자들은 임금 향상, 노조 확장, 불평등 해소라는 하찮은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다자택을 옹호하고 재벌이라는 대기업이 존속하는 이러한 현실에서 이러한 개량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산수단의 집중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데 말이다.
윤루@카스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문제는 명확하다. 자본주의를 붕괴시켜야한다. 그리고 그 수단은 유투브의 30만 결사대와 함께 싸우는 것이다.(진보적으로해석하자면 투쟁력 절약주의라고 할만하다.) 그렇게 돈을 벌고 노동이 만들어내는 자본보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자본이 더 빨리 증가하여 사회의 재유지라는 대전제를 무너트리는 이 세상의 모순을 자각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저출산,사회적 갈등, 소수자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켜 이 빌어먹을 사회를 무너트리는 것이 저자의 의도인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이해해야만 우리는 저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마르크스의 경제학과 철학에는 그 어떠한 인간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태어나는 세상의 물질적 구조에 종속되거나 영향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역사학은 다르다. 인간은 끝내 이러한 모순에 굴복하지 않고 그 모순을 만들어내는 체제를 부수고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는 진보적 역사관을 향유하고 있다.(시!대!정!신!) 이러한 "마르크스의 모순"을 이해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윤루@카스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책은 차갑다. 하지만 그의 말은 뜨겁다.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모순되니까.
물론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윤루@카스를 공격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선생님의 실천이 성실한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렇다. 사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오로지 자신의 구독자들만을 세상으로 아는 사람의 말은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르크스 역시 런던 구석에 틀어박혀 자본론이라는 걸작을 쓰지 않았던가?(걸작 특: 이 글 읽는 사람중 아무도 완독 안함.) 그러한 면에서 윤루@카스는 또 다시 마르크스주의적 업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윤루@카스에게 조금 더 따뜻해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차갑다. 하지만 차가운 쟈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따뜻하다. 그런 의미에서 윤루@카스의 의견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썼다고 하면서도 독자들이 자신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해주면 열등감을 폭파시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렇기에 한달에 5천만원이 되어도 그는 여전히 <순행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행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뒤바꾸고자 한다. 윤루@카스가 『차가운 쟈본주의』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싶은 것은 바로 그것인 법이다. 혼란스럽다, 모순된다. 그래도 살아가라. 그것이 자본주의니까. (끄덕)
ps: 개정판에 따르면 윤루@카스는 조선왕조는 자국민을 노예로 삼은 왕조라고 한다. 역스퍼거들은 이런 드립에 대한 해답을 잘 알고 있다. "그럼 다른 민족은 노예로 삼아도 되는 것인가?" 윤루@카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같은 민족을 중시한다면서 자신의 의견에 안 맞는 사람은 북한으로 보낸다고 하니 그의 민족관과 국가관이 어떤지도 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읽어보니 '조지아' 맥스 커피가 의미심장하구만...
은행의 파괴... 인민의 구원...
돌겠네
윤카루스가 너보다 부자야 임마 ㅋㅋㅋ
엥겔스 집안보다 못벌죠? 자, 소시민이죠? - dc App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서 찾지마라 -149p"
이 글을 보고 공산당 가입에 흥미가 생겼읍니다
무지한 유물론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인가? 책의 모순들은 마치 성경 전도서의 문학 기법을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자본주의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차갑다는 걸 고차원적으로 은유하는 것이라고욧!!!!!!
새삼 모순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문체에 녹여낸 헤겔이 대단해보이네
윤루.카스=고졸 윤두창
똑똑한 청년.
혁명이다..
글에 네모칸 어케 넣냐
줄 타는 컨셉 미쳤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동무 내레 이런줄도 모르고 윤루ㅗ카스 동지를 미제파쇼에 충성하는 저질로 보고 있었습네다ㅠㅠ. 인민혁명을 위한 투쟁에 든든한 동지가 생겨 너무 든든합네다! - dc App
선생님 필력이 정말 우수하십니다. 저도 한땐 마르크스에 조사한 적이 있는데, 수준높은 풍자와 인터넷발 드립까지 재치있게 섞은 글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건가요? 저도 ‘조지아’를 마셔야될까요?
바@흐 ㅋㅋㅋㅋㅋ
정보) 노비는 노비일 뿐 노예가 아니다. 노예 개념을 그정도로 확장하면 자국민을 노예로 삼은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정보)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에서 노예와 주인은 문자 그대로 읽어야하는지, 단순한 권력 관계인지, 심지어는 그것이 다른 인간이기는 하는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노예가 그렇게 간단하게 '노비랑 다른 것임!'이라고 말할 수 없다. 네 말대로면 프롤레타리아는 애초에 '자유'롭다. 우리 현대인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