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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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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은 엄밀하게 추리소설이라 말하기가 힘들다. 민속학, 초능력이 가미된 추리소설? 필자는 민속학을 곁들인 추리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추리라는 느낌은 많이 받지 못했다. 왜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우선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가 경찰과 탐정이 아니다. 소설의 화자 또한 삼류 잡지에 투고하는 글쟁이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은 음양사다. 음, 주술사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추리소설에 음양사라니? 가당치도 않다. 음양사가 나와서 주술적인 요소로 사건을 해결하나? 그렇다면 추리가 아니지 않은가? 응당 추리소설이라 하면, 몇 가지의 단서로 줄을 이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추리소설의 기본 요소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우부메의 여름』은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을까? 한번 엿보자.

본인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게 등장인물들이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이랑 이 얘기, 저 얘기, 구름이 정처 없이 흐르는 것처럼 정말 두서없는 말이 많았다.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니시오 이신"이 생각난다. 아니나 다를까, 니시오 이신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추종자였다! 

뭐, 짧게 등장인물부터 살펴보자. 이름을 나열하는 것보다 직업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삼류 기자(화자), 음양사, 의뢰인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첨언하자면 의뢰인(여성)은 기자와 음양사에게 의뢰를 한다. 자신의 여동생이 20개월이나 임신을 하고 있고, 남편은 실종된 상태다. 이 기괴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기괴한 내용만큼 기괴할 정도로 많은 대화가 나오고, 이 대화가 소설에 꼭 나올만한 것인지 계속 의문을 품게 된다. 심지어 양자역학도 나온다. 뭐, 당시(1950년대)만 해도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일본은 패전을 과학기술 역량 부족으로 보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소설에 주절주절 과학 이론이 소개되는 것 같다.

어디 과학 이론일 뿐일까? 종교에 민담에 대해서도 화자와 음양사는 많은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이 원체 찌질함과 귀여움을 왔다 갔다 하는 인물이라, 음양사의 대화에 맥없이 끌려갈 때도 있고, 소소한 반항을 할 때가 있다. 음양사는 '우부메'(그렇다! 우부메는 일본 요괴다!) 그림을 가지고 화자와 대화를 나눈다. 일본에서는 우부메를 고획조(姑獲鳥) 라 쓰고 '우부메'라 읽는다고 한다. 음양사는 엄밀히 고획조와 우부메는 다른 요괴라 말한다. 우부메는 여러 설이 있지만, 아이와 관련된 설이 대부분이다. 출산 도중 아이를 잃어 슬픔으로 요괴가 됐다는 얘기, 아이는 살았지만 정자 본인이 죽어서 아이를 지키려고 요괴가 됐다는 얘기. 우부메는 슬픔과 관련된 요괴다. 

소설은 음양사와 화자의 지루한 궤변의 줄다리기 속에서 천천히 나아간다. 의뢰인 여동생이 20개월 이상 아이를 품은 기괴한 사건의 진상, 그런 아내를 두고 실종된 남편의 행방. 소설은 두 줄기를 독자에게 내밀고 천천히 끌어당긴다. 독자는 줄기를 잡고 따라가다 보면 이 두 사건에 관련된 다양한 인물과 관련된 사랑과 오해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과 오해는 곧 슬픔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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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38호』주제는 민속학 미스터리·추리를 다루고 있다. 책을 펼치면 처음 등장하는 것이 우부메와 교고쿠 나쓰히코의『우부메의 여름』이다. 

『우부메의 여름』의 배경은 1950년대다.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가 아직 모호한 시대라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전근대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의뢰인의 부모님이 그러하고 주인공인 음양사도 그렇다. 보통 추리는 논리와 이성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근대적 사고관이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근대적인 인물들이 왜 나올까? 여기서 인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은 근대적-전근대적 사고관 차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개개인의 인식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스터리 평론가 박광규는

“그의 작품에서는 '무언가의 근본이나 정체 등이 알고 보니 과거 그렇게 믿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다'라는 흐름이 자주 등장한다. 말하자면 그러한 문제의 답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형태로 환원할 수 있는데, 그 인식을 시정할 때 다른 양상이 보이면서 불가사의함이나 수수께끼가 풀린다는 것이다.” -미스테리아 38호

어떻게 보면 전근대적 사고관에서  근대적 사고관으로 전환이라 볼 수 있다. 본인 또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혹시 근대적 사고관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작가와 평론가는 왜 '인식'을 논했을까? 

이런저런 비평 용어를 붙일 수 있겠지만, 본인의 역량미달로 그렇게 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화자'의 경험으로 '인식'을 논해보겠다. 화자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그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했으며, 아주 유명한 '임팔 작전'의 생존자다. 그는 하급 장교로 임관했으며 병사는 모두 죽고, 하급 부사관(작중 형사로 등장함)만 살아남았다. 즉, 그의 소대는 본인 포함 두 명만 살아 돌아온 셈이다. 

당시 위정자가 '인식'을 제대로 했다면, 전쟁이 났을까? 무리한 작전으로 화자의 소대원이 몰살 당하는 일이 있었을까? 화자는 전쟁 경험을 통해 이런 '인식'을 종종 얘기하곤 한다. 

소설은 쉽지 않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다양한 이론 기반으로 궤변이 넘쳐난다. 그런 궤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사랑과 오해가 빚어낸 파국, 전근대적인 가문의 비극, 화자의 찌질함과 귀여움 속에 반전을 볼 수 있다. 

문장은 '-'를 통해 마치 연극의 호흡 조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금 과하게 사용된 경향이 있어 라이트노벨 느낌이 살짝 든다. 하지만 그 부분을 등장인물의 호흡조절이라 생각하고 읽다 보면, 등장인물이 느끼는 압박감과 끈적끈적한 표현을 느낄 수 있다. 다음 작품도 조만간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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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리뷰하려 한다. 지금 200쪽 가까이 읽었는데 무슨 소설인지 모르겠다. 뭐, 하루키 소설이  "내가 도대체 무슨 소설을 읽고 있는 거지?"라는 느낌을 팍팍 주는 경향이 강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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