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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의 정체성은 모순성이다.

모순성의 현신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세계, 피안한 신의 세계, 그리고 전체와 분리시킨 철저한 개인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모조리 모순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국적의 작가와 학자여서 일까, 요즘 같이 읽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책임과 판단』 속 사유의 주제와 소재가 사뭇 친밀하다. 도덕이 붕괴한 시기를 공유했던 위대한 두 지식인의 조응된 양심과 성찰에서 비롯된 고민과 고뇌는 같은 부류의 것이다. 일치된 의식이 관통한다.




작품전체에 반복되는 모순성은 신성으로 지배되는 세계와 악마성으로 지배되는 세계의 결합이다. 분리된 두 세계가 아닌 결합한 두세계. 모순성의 특징을 가진 데미안은 그 자체로 압락사스다. 싱클레어에게 내면세계의 신성은 엄마로 상징된다. 안락함, 평화로움, 관대함. 크로머 사건을 고백하고 싶었고 기어이 고백하고 평안을 얻게된 첫 대상도 엄마였다. 싱클레어의 내면은 엄마에서 아빠로 전달되고 아빠에 전달된 싱클레어의 내면은 드디어 현실화된다. 공적인 것이 된다. 아빠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싱클레어의 내면이 방탕한 방황중일때 아빠의 대응은 사납다. 내면이 반영되는 현실의 체계다.


싱클레어 성장과정을 보며, 새삼스레, 부모의 역할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녀에 대한 선취된 지위로 자녀의 앞에 서서 지휘관이 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가, 하찮은가. 부모의 역할은 생존을 도와주는 것, 한 인간에게 목숨을 부여하고 유지하게 해주는 의무가 부모의 몫, 生을 시작시키고 지속시키는 것까지만 부모의 몫. 부모는 한 아이에게 생존가방같은 존재로서 그 가방 안에 안락한 의식주와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은 사랑을 가득히 넣어두고 세상의 모순속에서 방황하고 상처받았을 때 다시 치유하고 세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존가방이며 구급상자 같은 존재.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의 고유한 인격과 성벽(城壁)의 완성은 세계의 몫이다. 싱클레어를 만들어 낸 데미안, 에바부인, 크로머,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의 세계다. 부모는 아이의 세계앞에서 소박해진다.

부모가 자녀앞에 앞장서서 길을 터주고 만들어주고 알려주고 지시해주는 것은, 오만이며 월권이다. 아이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무도한 정복자일 뿐이다. 아이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목소리를 스스로 듣고 그 소리가 이끄는대로 갈 수 있도록 차분히 조용히 말없이 있어주는 것이 도리다, 그런 것 같다.



헤세는 시인이기도 했던 만큼, 작품전체에 아름다운 문장들이 가득하다. 소설 자체가 신비롭고 아름답다. 서늘한 메세지를 담은 낭만적인 문장이 가득하다.( 이를 번역서로도 느낄 수 있게 해준 번역가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