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1세기 국제질서 맥락으로 이해하기 – 패권 전환기 속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책에 대한 감상평임.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지인 중에 기자가 한 명 있는데, 기자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는 얘길 들어서임. 그런데 독겔에서 누가 극찬한 글을 보고 사서 읽게 되었음.
감명을 받은 것도 있고 잘 풀면 실베에 올라갈 만한 땔깜이기도 해서 이것저것 사진도 동원해서 제대로 써보려 했으나, 목표를 크게 잡았더니만 너무 부담이 되어서 오히려 차일피일 미루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음. 그사이 개인적인 일도 생기고 해서 으리으리한 글을 적을 기운은 없지만… 이 책 감평 올리겠다고 몇 주 전부터 독겔에 몇 차례 말해 놓은 게 있어 심적인 부담을 갖던 중, 마침 여유가 생겨서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게 되었음. 아무리 익명으로 한 약속이라도 남아일언중천금이니 일단 뭐라도 쓰겠음. 쓴 게 아까워서 싱겔에도 올리긴 하겠음.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적은 글이니 이제 실베 따윈 기대하지 않음.
이 책은 2019년 한일 후쿠시마 WTO 수산물 분쟁에서 역전승을 거둔 정하늘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의 저서임. 저자는 2018년에서 2022년까지 우리나라의 WTO 분쟁을 담당하면서 11건의 WTO 분쟁에서 전부 승소하였음. 그중에는 일본을 상대로 한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은 물론이고 미국을 상대로 한 역대 최대규모의 철강분쟁(2조원대) 등도 포함되어 있음. 저자는 정부에 가기 전 로펌에서 일할 때 이미 영국의 변호사 평가기관으로부터 국제통상분야 최고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고 함. 학창시절에는 칠성전기라는 유명한 판타지 소설을 저술하기도 하였다고 함.
그런 저자가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느냐? 세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임. 로펌 시절 스타 변호사였던 저자가 정부로 가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2017년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였다고 함. 당시 국회에서 트럼프의 통상정책에 대한 특강을 요청받은 저자가 ‘트럼프가 왜 이럴까’를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미국이 패권을 스스로 내려놓으려는 것이 아닐까?’였다고 함. 그래서 그때까지 세계의 경제질서를 굳건히 책임지던 WTO의 마지막 흥망성쇠를 최일선에서 겪기 위해 정부에 합류했다는 것임. 그런 만큼 퇴임한 뒤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임.
저자는 우선 1장에서 1980년대와 2017년(저자가 정부에 가기로 결심한 시점),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를 각각 비교함. 우리 모두가 현실에서 흔히 접하였을 예시를 드는데, 그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듦. 그 뒤에 그러한 변화가 현대 국제질서의 산물이란 점을 설명함.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야기한 현대 국제질서가 지금 훼손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훼손될 것이기에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까지의 세상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함. 국제질서에 의해 영향을 받던 우리의 삶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임.
2장은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역학에 대해 역사와 사상의 발전을 중심으로 설명함. 패권과 현실주의, 자유주의와 국제제도, 이념과 사상, 이런 것들이 국제질서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제제도의 탄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조명함. 그래서 제목이 “패권의 역사, 질서의 진화”임. 역사적으로는 아주 오래 전 옛날부터 동서냉전이 끝나는 시점까지를 커버하는데, 여기서 나온 여러 사실관계나 개념, 역사 등이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를 관통하는 재료가 되는 것들이 많음.
3장은 냉전 이후에 미국의 절대 패권이 지배하던 20년 정도를 조명함. 여기서 미국의 진정한 국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피상적으로만 알던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 그리고 미국이 현대 국제질서와 국제제도 확립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던 ‘세계패권국’이란 게 얼마나 어마무시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음. 또 미국이 이 기간에 자기가 바라는 국제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했다는 점도 설명함. 그래서 3장의 제목은 ‘팍스 아메리카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임. 이 기간은 인류 역사상 경제적으로 그리고 안보적으로 유례없이 번영하고 안전했던 기간임. 다만 3장의 마지막에는 미국의 패권의 장단점과, 미국의 패권이 쇠락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01년 911을 시점으로 몇 가지 결정적인 사건을 기초로 순차적으로 설명함. 그리고 중국이 그러한 사건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면서 다음 장으로의 떡밥을 깖.
4장은 미중 패권 경쟁에 관한 장임. 3장의 마지막 장에서 이어져서, 중국이 어떻게 하여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설명하는데, 이때 WTO 가입이 중국에 가져온 효과와 중화사상이 중국인의 의식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도 설명함. 동시에 미국이 트럼프 때부터 갑자기 패권국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중국과 각을 세우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3장보다 좀더 깊고 체계적으로 설명함.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읽기로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패권국으로서의 부담을 진 것이 미국의 국력을 상당히 갉아먹는 사이에 911에 따른 잘못된 판단으로 미국의 힘이 약해진 사이에, 미국이 만들어낸 자유무역질서를 타고 중국이 강력히 부상하면서 미국의 위협으로 떠오르게 됌. 그사이에 미국 세계패권의 근간이 되는 자유무역으로 국내 제조업 종사자들이 소외된 것이 커지다 보니 국내 정치적으로도 한계에 다달았고. 그래서 미국은 세계패권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게 됌.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매우 체계적인 소개를 하는데, 저자는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미국의 세계패권을 훼손하는 건 가능하다고 진단함. 이는 그렇지 않아도 세계패권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는 미국의 현실과 맞물려 정말로 미국이 세계패권을 내려놓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
5장은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에 관한 내용임. 6장은 세계패권국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미국과 동맹국, 중국/러시아/이란, 글로벌 사우스가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 부분임. 즉, 5장과 6장은 1~4장까지 쌓아온 빌드업이 현재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파트라 볼 수 있음. 대단한 점은 다양한 사실관계를 이때까지 빌드업한 맥락에 고대로 포섭시켜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임. 우리가 매일매일 접하는 뉴스는 대부분 5장과 6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음.
7장은 약간 미래지향적임.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러시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앞으로의 국제질서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기타 등등이 서로 경쟁하고 타협하는 맥락에서 새로 쓰여질 텐데, 각자가 갖고 있는 미래 청사진이 무엇이며 그중에 무엇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지, 그리고 그러한 장단점에 대해 논하고 있음. 역시나 1~6장까지 빌드업한 맥락으로 미래를 설명함.
8장은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임. 8장의 절반? 3/5? 정도는 1~7장까지 빌드업한 내용에 우리나라 사정을 대입시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용임. 고조선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아주 심플하게 뽑아서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판 위에 깔아줌. 저자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고 느낀 부분이 이 8장이었음. 8장에 보면 저자는 정치적인 논쟁을 피하고자 함인지 자기 생각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양쪽 시각의 장단점을 모두 고려함.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정을 심풀하게 풀어서 1~7장까지 쌓아놓은 토대? 판? 위에 올려놓는 순간 독자들은 저자가 다음으로 제시할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됌. 8장에서 피력한 저자의 생각은 양측 극단주의자들이 아니고선 동의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내용이지만, 내가 보기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고 봄. 8장의 마지막에서 우리나라의 제약사항으로 진영논리와 극단주의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봄.
9장이 종장인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의 희망을 주면서 끝남.
책의 두께가 650장인가 되므로 당연히 위에 적은 것은 내가 이해한 바에 따라 책의 흐름을 일부만 적은 것임. 책을 직접 읽으면 당연히 훨씬 깊이 있는 내용을 알게 될 것이고, 나와는 다른 내용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임. 저자가 변호사라 그런지 일반적인 국제정치책에 비해 논리정연(보면 근거와 결론이 A=>B의 심플한 논리전개가 반속됌)하고 글이 간결해서 읽기 편함. 그리고 저자가 판타지 소설가라서 그런지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기술방식이 삼국지나 무협지를 읽는 듯이 흥미진진함. 다른 사람들도 많이 얘기한 것이지만 이 책의 다른 강점은 흡입력이 매우 좋다는 점임.
요즘 세상에 국제이슈가 왜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항일테니 굳이 강조하진 않겠음.
결론: 올해 책을 한 권만 읽을 거면 이 책을 읽어라.
감상 글은 "일반"말고 "감상"이라고 글머리를 선택해서 저장해야 보다 많은 이들이 놓치지 않을 듯,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headid=40
굿
잘 읽었음 - dc App
이거 읽고 영업 당해서 시켜봄 ㄱㅅㄱㅅ
동의한다. 이 책은 진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읽어야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