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컬렉션에 추가한 Arden Shakespeare판. 최근에서야 읽기 시작함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유독 어려운 편이라 진도가 안나갔는데, 그래도 나름 재밌는 포인트들이 많음



<겨울 이야기>는 단독작품 중 마지막으로 여겨지는 <템페스트> 직전에 쓰인 후기 작품임.


First Folio가 처음 출간했을 때만 해도 템페스트와 더불어서 희극으로 분류됐었지만,


19세기말 이후로는 말년의 4작품(페리클레스, 심벨린, 겨울이야기, 템페스트)은 따로 묶어서 "후기 로망스(late romances)"로 분류하고 있음.



요 후기 로망스들은 대체로 장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기존 관습 및 형식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이 있음.


장르적으로 보자면 비극+희극(겨울이야기의 경우 전원극까지)이 섞여있다고 보면 되고, 여기에 판타지적 요소/동화적 요소를 첨가했다고 보면 됨.


서사구조도 대략 비슷한데 (잘못을 저지름 -> 후회/고통의 시간 -> 재결합/화해/용서)


겨울 이야기도 이 서사구조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는 스토리임.




언어적으로 보자면, 후기 작품들은 기존 작품들에 비해서 운문이 느슨하고 좀 더 자유형식에 가까워서,


각운도 거의 없고 리듬도 상당히 변칙적임.


오히려 읽기 까다롭고 어렵다고 느낌.


<겨울 이야기>는 특히 읽기 더 어려운 편인게,


초반 비극 파트가 레온테스 왕이 질투로 미쳐가면서 자기파멸로 나아가는 내용인데,


이 심리의 변화과정이 부숴지고 쪼개진 언어로 표현됨.


다른 인물들의 대사에서 숨겨진 늬앙스를 찾아내서 곡해하고, 자기도 계속 이중의미 삼중의미 써가면서 말하고,


하여간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정신나간 언어들로 표현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연기하기도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함.


오죽하면 Norton판이나 Arden판이나 각주에 "이 부분은 모호하다" "이 부분은 (1) 또는 (2) 또는 (3)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게 심심찮게 나옴ㅋㅋ




각주 비율 레전드ㅋㅋ



의심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 각주 친절한데도 쉽지않았음ㅋㅋ





한 가지 예시가 될 장면을 보여주자면,


레온테스왕은 자기 부인(허마이오니)이 자기 베프인 폴릭세네스왕과 외도를 했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증거는 전혀 없고 맥락도 없음.


자기 혼자 머릿 속에서 의심을 하다가 심복인 카밀로를 불러서 다른 사람들도 이걸 다 알고 있느냐고 추궁하는 장면임.




LEONTES

Was this taken

By any understanding pate but thine?

For thy conceit is soaking, will draw in

More than the common blocks. Not noted, is’t,

But of the finer natures, by some severals

Of headpiece extraordinary? Lower messes

Perchance are to this business purblind? Say.


(대충 의역) 이 사실을 그대 외에도 알고 있는 자가 있소?

그대는 워낙 보통 사람보다 눈치가 빨라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릴테니.

비범한 놈들, 머리 좋은 놈들 몇몇 말고는 눈치 못챘겠지?

미천한 것들은 설마 이 사건에 대해 모르겠지? 말해보시오.


CAMILLO

Business, my lord? I think most understand

Bohemia stays here longer.


사건이라니요 전하? 제가 알기로 대부분

보헤미아(왕)께서 여기 더 머무르신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LEONTES

Ha?

뭐?


CAMILLO Stays here longer.

더 머무르신다구요


LEONTES Ay, but why?

그러니까 (더 머무르는) 이유가 어떻다고?

CAMILLO

To satisfy your Highness and the entreaties

Of our most gracious mistress.


전하와 왕비전하의 간청을 들어주신(satisfy) 거지요


LEONTES Satisfy?

Th’ entreaties of your mistress? Satisfy?

Let that suffice. I have trusted thee, Camillo... (생략)


만족시켜?(satisfy)? 왕비가 애원하고, 만족시켜?

더 이상 들을 것도 없군. 나는 자네를 믿어왔네 카밀로,



대략 이런 늬앙스..


카밀로는 너네가 부탁했으니 보헤미아왕이 요구에 응했지~ 라는 의미로 satisfy 를 썼지만


레온테스왕은 satisfy라는 단어에 내포된 '성적으로 만족시킨다'는 의미를 골라내서 자기 의심에 확신을 가지는 장면임.



앤토니 셔가 연기한 레온테스왕. 


단어를 자기 멋대로 이해하고 혼자 확신에 차는 그 미묘한 결을 굉장히 잘 살린 연기라고 봄


다른 프로덕션을 봐도 이 부분 이렇게 잘 살린 연기는 거의 없더라






영상물 추천하자면 우선 1981년 BBC 콜렉션.


BBC콜렉션이 세팅은 연극무대처럼 하고 관객없이 영화처럼 찍은거라 사실 작품마다 편차도 있고 호불호도 좀 갈리는데


개인적으로 겨울이야기는 괜찮게 봤음. 배우들 연기 대체로 훌륭함.


다만 레온테스 왕이 속삭이듯 대사를 치는 부분이 많아서 이게 잘 안들리는게 아쉬움





RSC 극단 1999년 작품.


유튜브에 영상이 있었는데 국내 아이피로는 못 보는거 같음.


BBC보다 연출이 더 재미있고 흥미로움.


레온테스 역의 앤토니 셔가 나름 네임드 셰익스피어 배우인데


심리묘사를 엄청 사실적으로 잘했다고 느껴짐.


근데 허마이오니 역 배우의 연기가 너무 별로였음.


나도 책 읽으면서 한 장면씩 보고 있어서 아직 다 못 봄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