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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된 소세키 전집 읽기.
근데 읽어 보니 번역도 괜찮고 글도 괜찮고, 무엇보다 책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일본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만큼 다양한 장르와 문체를 구사한 작가는 일본뿐 아니라 외국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 작가만 골라 잡고 내리 쭉 읽어도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이번달 내지는 다음달까지 다 읽어버리기로 한 거시야요.
그리고 소세키 전집 읽은 걸 기반 삼아 고진 읽기도 하려는데, 그 전에 샛별이도 소세키처럼 한문 공부나 좀 해서 한시나 좀 읽어볼까 생각도 해보고
아무튼 풀베게 이야기를 짧게 해보자면, 이 소세키라는 작가 첫문장 골라내는 재주가 머단하다
첫 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이거 탁월한 첫문장이라 생각했는데,
두 번째 작인 도련님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 이것도 훌륭했고
그리고 풀베개의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이것도 참 좋은 스타뜨인 듯. 물론 스타트가 좋다고 해서 그 책이 꼭 다 좋다고 볼 수도 없겠고 슬로우 스타터도 있을 테니까 그냥 그려려니 하는데,
잠을 잘 못 자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노
두부내상인가?
짧게 이야기하는 걸로 변경.
아무튼 풀베개는 전통적인 소설이라기보단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주의에 맞서 동양의 미학론을
줄줄줄 줄줄줄 외워대는 그런 소설이었음.
근데 그렇다고 해서 꺼드럭 헛소리만 MAX 하는 소설은 또 아님. 일단 전작에서부터 느낀 건데 캐릭터 만들고 대화 쓰고 그런 거 탁월하게 잘하는 데다,
교양도 어마무시한 작가라 소세키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서양의 것과 비교되는 동양적인 것의 가치를 줄줄 읊어대는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밌음.
일단 소세키가 말하는 그 동양적인 것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나 동아시아적인 것이고, 또 어디까지나 일본적인 것이고, 또 어디까지나 소세키 자신의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 였는데 아주 빠르게 전집 읽기를 목표로 하는지라 깊은
고민 같은 건 딱히 안 하고 읽단 술술 읽음.
그래도 작품 속 특정 부분에선 ㅡ중놈들이 무소유 안 하고 예술이고 뭐고 꺼드럭거리면서 수준 높은 중인 거 아는 장면ㅡ 뭐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구만,
하고 생각되는 거 보면 이런 건 일본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온천장 밖에서는 전쟁 터지고 그러고 있는데 비인정이다 회화다 한시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보니 역시 하루키의 문학적 아버지답노 싶기도 하고,
[선은 행하기 어렵고 덕은 베풀기 어려우며 지조는 지키기 쉽지 않고 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안타깝다. 굳이 이것들을 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나 고통이다. 그 고통을 무릎쓰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낼 만한 유쾌함이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한다. 그림이라는 것도 시라는 것도 또 연극이라는 것도 이 비참함 속에 틀어박힌 쾌감의 별칭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취를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행동은 장렬해지기도 하고 우아해지기도 하며, 뭐든 어려움을 이기고 가슴속의 한 점을 차지하는 최상의 취미를 만족시키고 싶어진다.]
이런 문장을 보면은 딱 할복맨 떠오르는 것이 소세키가 어째서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것인지 알 듯하노.
근데 이 풀베게란 책은 저렇게 일종의 소세키적인 미학론/ 서양 근대 문명 비판서 등등으로 읽어도 재밌는 책이다만,
그냥 좀 한심한 연애 소설로 읽어도 그 나름의 큰 재미가 있는 책이기도 한 고야.
일단 이 작품 속의 등장하는 나미라는 여인-
의 온천장 알몸 노출씬 (근데 이제 동양적인 미학이 잔뜩 가미 된) 뭐 이런 독붕이 오니짱 발기할 포인트도 있으니까요.
풀베게 속의 나미라는 캐릭터는 하루키 소설에 자주 나오는 뭔가 뭔가 환상적인, 몽환적인 여인의 원형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런 장면 나올 때마다 뭔가 좀 어색하고 지루하다 싶었던 하루키와 달리 소세키는 한시에 조예가 높은 작가답게
그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를 어색함 없이 잘 표현해내던 고야.
사실 근대 비판이나 미학론이고 어쩌고 하는 내용보다 작품 속에서 번뜩이는 시적인 문장 읽는 게 더 재밌었음.
이를테면,
흐릿한 먹빛 세계를, 몇 개의 은색 화살이 비스듬히 달리는 가운데 흠뻑 젖은 채 마냥 걸어가는 나를, 나 아닌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시가 되기도 하고 하이쿠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장들...
물론 아무리 문장이 아름다워 봤자 온천장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는 전쟁 터지고 저러고 있는데 하이쿠나 쓰고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 게 말이나 되냐
싶은 마음은 여전히 강하다만, 모든 작가가 꼭 모두 다 참전해 전쟁터에서 참혹하고 현실적인 뭔가를 쓰고, 한 작가가 쓴 모든 책이 다 그런 내용일 필요는
없겠고, 또 그런 건 전혀 바라지도 않지만, 작금의 코노 세카이의 작가는 이 소세키-하루키적인 작가가 앱도적 주류를 차지한 듯해
뭔가 띠껍노 씨발.
근데 그래도 이제는 90년대 조센이나 타이완이나 일본처럼 짝퉁 하루키들 넘쳐나는 시대는 간 듯한데...
그거 따라 문학도 노짱 하라버지 따라간 거 아님?
아무튼 소세키 전집은 마저 읽을 생각이다.
토오지 언제 시작함?
다음달
하이쿠 좋아하면 풀베개만한 소설도 없슴 !
샛별이는 여대생짱인데 어케 90년대 대한민국과 대만을 아냐 이거야
책을 읽기 때문이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