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쿤데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불멸> 다음에 발표된 소설 <느림>이다. 시기상으로는 비슷해서인지 형식은 앞의 두 소설과 유사함이 상당히 드러난다. 다른 점이라면 분량이 적은 편이라 <참존가>와 <불멸>에 비해 덜 복잡하다 정도? 약간의 보급형이라는 느낌이 든다.
속도와 기억은 서로 반비례한다. 걷다가 무언가를 떠올릴 때 사람은 걷는 속력을 점차 늦추고 기억에 잠긴다. 반대로 기억에 남기긴 싫은 사건으로부터는 최대한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즉, 우리가 느려질수록 기억은 깊게 새겨지고 빠르게 기억으로부터 도망갈수록 망각이 심화된다.
현대인의 삶은 빠르기로 넘쳐난다. 텔레비전 화면은 카메라에 따라 휙휙 전환되고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무언가 기억에 남을 리가 없다. 결국 사람들은 순간적인 상황에서 타인의 이목을 끄는 방식으로 살기 시작했다. 소설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춤꾼’이라 부른다. 춤꾼은 우리 삶의 양식이다.
심화된 망각은 기존 인간들의 소외를 야기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저 사건에 대한 순간적인 생각에만 머물고 이내 관심 밖으로 내보낸다. 덕분에 소설의 한 학자는 소극적인 존재였음에도 사상의 영웅으로 취급받는 동시에 유머의 소재로 소모된다.
과거의 사람들은 쾌락을 음미했다. 쾌락은 순각적이지 않고 연속적이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마차 속에서 스스로가 겪은 고통도 기쁨도 천천히 돌아보며 기억에 새겼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구성하게 했다. 이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기능하지 않는다. 우리는 느림이 주는 삶의 여유를 잃어버렸고 쾌락의 순간적인 자극 속에서 헐떡일 뿐이다.
일단 하나 클리어. 낮에 하나 더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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