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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대학 교단에서 정년을 채우고 갑작스러운 시한부 판정으로 사망한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랄 것은 40대 초반에 있던 중년의 위기라 불리는 시기에 대학 강사인 캐서린과의 불륜 정도.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로 뻔하다.

하지만 이 책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책을 취미로 읽는 사람은 최소한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이 높다.* 그 말은 곧 독자 상당수가 스토너처럼 교수로서의 삶은 아니라도 최소한 학부생으로서 대학 생활을 경험했다는 의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물이 전형적인 중산층이기에 허울뿐인 계층 유지를 위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오는 자신 연민으로 공감할 확률이 높다.

* 독서율(일반도서, 지난 1년간 1권 이상 책을 읽은 비율) : 대재 이상 88.1%, 고졸 71.9%, 중졸 이하 27%, 200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문화관광부, 한국출판연구소)

왜 스토너가 불행했나 생각해 보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보다 유복한 아내 이디스를 만났다. 당시의 풍속에 따라 성급하게 결혼을 선택한 그는 이디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애정도, 물질적 만족도 다 이룰 수 없었다. 공허함을 느낀 아내는 완벽한 가정이란 외형을 얻기 위해 딸 그레스를 낳고 스토너에게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의 많은 부분을 맡긴다. 즉, 이디스의 마음은 결혼 전 고상한 부잣집 딸에서 전혀 변화된 바가 없었다. 로맥스와의 다툼 끝에 중심부에서 밀려버린 대학을 떠나려고 해도 이디스는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캐서린과 남편의 관계를 알았어도 한갓 불장난으로 치부하며 냉소적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가정에서 애정을 얻지 못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가? 결국 딸 그레이스마저도 애정 없고 답답한 가정에서 벗어나고자 계획 없는 임신과 애정 없는 짧은 결혼생활을 거쳐 알코올 중독에 이른다. 이 비극만 조금 특이할지도 모르나, 아이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결국 작가는 독자가 내심 바라던 스토너의 나은 삶은 하나도 이루어주지 않았다. 그저 독자 일반의 삶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꿈도 희망도 없는 평범하고 가련한 삶과 죽음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당대에는 책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PTSD가 오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그를 학문의 길로 이끈 아처 슬론의 대학 사무실에 방치된 고독사(死), 농사일을 하다 밭에서 죽어간 아버지는 스토너의 미래를 암시했다고 본다. 스토너 역시 교직생활의 마지막에 죽음과 대면한다. 나는 영화 <비바리움(2020)>이 떠올랐다. 이 공포영화에서 암시하는 대를 이어 반복되는 지독한 노동뿐인 삶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삶을 반추해가며 이 지겨운 인생을 슬퍼한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고독을 느꼈다. 밤에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방구석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램프의 불빛이 구석의 어둠에 맞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둠이 빛 속으로 모여들어 그가 읽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의 중에 아처 슬론이 그에게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과거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의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매스터스는 남은 달걀을 입에 넣고 잠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씹다가 맥주를 길게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자네들 둘 다 틀렸어.” 그가 말했다. “대학은 보호시설이야. 아니, 요즘은 그걸 뭐라고 하더라? 요양소. 환자, 노인, 불평분자, 그 밖의 무능력자들을 위한 곳. 우리 셋을 보게. 우리가 바로 대학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공통점이 많다는 걸 모르겠지만, 우리는 알지, 안 그래? 우린 아주 잘 알아.”


땅은 옛날과 다름없었다. 아니, 그때보다 조금 더 척박해지고, 소출도 조금 더 인색해진 것 같았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움이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들의 의지는 꺾이고, 머리는 멍해졌다. 이제 두 분은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당신과 그레이스를 위해서요. 여기에 계속 머무른다면, 내가 학과 내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아.” 이디스가 앙심을 품은 듯한 목소리를 이끌어내서 냉담하게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가난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지 못할 이유가 없죠. 일찌감치 생각해 보지 그랬어요? 그 일이 어디로 이어질지. 불구자처럼 무능력해지겠죠.”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바뀌더니 그녀가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애정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한테는 그런 일들이 아주 중요하죠. 그러니 달라져봤자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해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와 제가…… 우리 둘 다 아버지를 실망시켰죠?”

그는 딸을 만지려는 듯이 손을 들어올렸다. “아냐, 그렇지 않아.” 그가 흐릿한 열정을 담아 말했다. “넌 절대로…….” 그는 더 말을 잇고 싶었다. 딸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눈을 감자 정신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뭔가 무거운 것이 그의 눈꺼풀을 누르고 있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가 힘들게 눈을 떴다. 그가 느낀 것은 빛이었다. 오후의 밝은 햇빛. 그는 눈을 깜박이며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 가장자리를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진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손을 움직여 보았더니 몸속에 묘한 힘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공기 중에서 흘러들어온 것 같았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통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