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고 똑똑해지는 게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똑똑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땐 책 읽으면 똑똑해지겠지, 라고 생각하고 책 읽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환상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 공부깨나 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게 허상임을 깨달았다. 내가 보기엔 멍청한 사람, 질문하지 않고 이름난 사람들의 슬로건을 단순히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데서 그치는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봤다. 내 견해가 협소하다고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다시, 책으로>라는 책에서는 독서할 때 두뇌의 여러 측면이 활성화되어 결과적으로 머리를 많이 써서 머리가 좋아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해력이나 추론 능력이라는 것은 단지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로 향상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핵심은 책을 얼마나 의식적으로 읽었느냐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시간을 많이 투여해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과 전문가가 된 사람의 차이를 ‘의식적인 연습’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내가 생각할 때도 책을 읽고 의식적으로 ‘이 문단, 이 챕터가 그래서 뭘 말하는 거지?’를 묻는 습관이 배어 있다면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능력뿐 아니라 세계를 읽어내는 직관력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책 읽는다는 사람들을 만날수록 가끔 의심이 드는 게, 그런 노력을 통해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 애초에 소수가 아닌가 싶다는 점이다. 메타인지가 좋은 사람이 책을 읽었을 때 지적인 전환을 맞이할 수 있고, 책이 그런 의지와 잠재력을 겸비한 이에게 유용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메타인지 자체가 발달할 기반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많은 책도 도로묵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똑똑해지는 게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똑똑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책을 좋아할 확률이 높은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똑똑한 사람일 때 책은 재밌는 도구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책이 대중매체였던 시대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마저도 벌써 끝나가는 듯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머리가 좋은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 재능을 귀하게 여기는 게 좋다. 그것을 다른 많은 이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쪽으로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