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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와는 조금 다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말씀 중심으로 기록한 것은 동일하지만 믿음과 구원에 대한 교리가 더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교리'는 믿음에 대한 원리(이치)를 뜻합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한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과 하나님은 각각의 존재라고 설명하면서 또,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얘기합니다. 곳곳에 흩어진 이와 같은 성경구절들을 모아서 해석하면 '삼위일체' 교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요한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육신으로서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는 과정은 인간의 몸을 입은 것이고, 예수님의 실체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에 '독생자'라고 말합니다.



(요한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입니다. 식물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것과 비슷한 관계입니다. 빛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유대인 대다수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지역 외부로 전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집니다.



1장 19절에 나오는 요한은 '세례요한'을 말합니다. 그는 요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침례)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그의 앞을 걸어가시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지칭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은 구약에 나오는 제물로서의 양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리아 땅으로 갑니다. 거기서 뿔이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을 발견하는데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립니다. 레위기에는 죄에 대한 속죄로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이 때 사용되는 제물 중 하나가 '양'이었습니다.





(3장)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등장합니다. 당시 랍비들의 선생이라 불릴만큼 성경(율법)에 능통하였으며 정교일치 사회인 유대지역의 사법기관 역할을 했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그가 한밤중에 예수께 찾아와서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예수께서 먼저 대답을 하십니다. 니고데모의 생각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의아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질문도 하기 전에 대답부터 하셨음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니고데모 입장에선 예수님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거듭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이 이미 한번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에스겔 36장을 살펴봐야 합니다.



(에스겔 36:24~27)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위의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맑은 물을 뿌려 씻겨 정결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성령)을 믿는 자들 속에 두어 율례를 행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요한복음 3장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한 더러움이 물로 씻은 듯 깨끗해진 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영을 받아 새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즉, '영적인 출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성령)께서 임하시고 율례를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과정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6장)


요한복음 6장에는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설교하실 때에 많은 수의 군중이 모였는데 식사 때가 지나 제자들이 예수께 여쭙니다. 저들에게 먹일 음식이 없습니다 음식을 마련할 돈도 없습니다. 그 자리에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으로 기적을 행하시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게 됩니다. 오병이어 일화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텐데 더욱 중요한 것은 뒷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여기서 '인자'는 예수께서 스스로를 지칭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 군중은 당황하여 웅성댑니다. 단어 그대로.. 예수님의 살(육체)을 먹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놀란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 말씀을 듣고 예수의 제자들도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며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수군거립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예수께서 설명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해석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는 육체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게 아니고 '영'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거듭남의 의미는 '영적인 태어남'이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태어난 새생명은 그에 따른 양식이 필요합니다. 이 양식이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복음 1장을 기억합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며 묵상하는 이유는 말씀이 곧 영적인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계속적으로 먹고 마시면 내부의 '영적인 사람'이 생명을 얻어 성장합니다.





(11장)


베다니 마을에 삼남매가 살았습니다.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입니다. 나사로가 병이들어 그의 누이들은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알렸습니다. 예수께선 그 소식을 듣고 머물던 곳에서 이틀을 더 계셨습니다. 그리고 베다니 마을을 향해 떠나십니다. 예수께서 도착하실 무렵.. 나사로는 이미 죽어 무덤에 묻힌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매를 위로하려고 모인 가운데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가서 여쭙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신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기록이 여럿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베드로가 살린 도르가(다비다), 사도바울이 살린 유두고가 있고.. 공관복음에는 예수께서 살리신 과부의 외아들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세히 서술된 기록은 나사로가 유일합니다. 나사로의 이야기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21,22)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용으로 볼 때 살아있는 사람들을 가리킴이 확실한데.. 그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단언하십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든 인간은 '죽어가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이미 모든 인간의 운명은 정해졌습니다. 나이들고 병들고 죽어갑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삶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을 영원과 비교하면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은 태어난 직후 곧바로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태어나자마자 썩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는 무덤에 묻혀 썩어가던 '나사로'의 상태와 크게 다를바가 없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요한 11:41,42)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소리로 부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이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이후 살아난 나사로를 본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영적인 생명이 없는.. 죽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운명을 감싸고 있는 육체는 무덤으로 비유 됩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듣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이 어떤이에게는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고

또 어떤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뒤돌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떤이들에게는 무덤을 흔드는 커다란 음성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엔 요한복음(2)와 사도행전에 대하여 올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