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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다뤄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주제에 이 책에서 이미 다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책에서는 초반부터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언급되면서 반복되지 않고 오직 한 번뿐인 삶은, “삶이 아무리 끔찍했거나 아름다웠거나 혹은 찬란했다고 할지라도 그 끔찍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듯이, 이런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농담』에서는 결국 그런 가벼움을 깨닫는 것으로 끝난다는 차이가 있음.


루드비크는 복수를 위해 헬레나와 정사를 벌였지만 오히려 제마네크는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 것에서 망각으로 인한 존재의 가벼움을 깨닫게 됨. 이는 루치에를 계속 열망하고 있었지만 정작 만나게 되자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나는데, 자신이 바라던 사람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과거에 있지만 다른 것은 모두 변해버렸고, 그대로인 것이 없다는 점에서 복수는 무의미하게 되어버림


그는 자신이 과거에 집착하면서 사랑, 고향, 민속예술 등 모두 그 자체로는 죄가 없는 것을 미워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와 루치에가 유린당한 것처럼 그 또한 죄 없는 것들을 유린해왔고, 그래서 오히려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민속예술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과거 사랑했던 민속예술의 세계에서 피난처를 구하려고 하지만 야로슬로프가 쓰러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그 또한 의지할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또한 망각에 의한 무의미라고 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또한 야로슬로프처럼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마무리임. 


이런 가벼움에 대한 깨달음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라는 말로 끝나면서 가벼움과 무거움이 합쳐지게 되는데, 아마 조금만 더 나아면 루드비크도 이렇게 될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농담이 더 재밌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