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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는 없음. 


추리소설 갤에서 2023 1등 작품으로 뽑혔다고 해서 <방주> 읽어봤는데

이 장르엔 문외한이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좀 안타까웠음. 


추리가 필요한 사건의 전제 조건은 정보적 격차랑 공간적 격차일텐데, 

스마트폰, 블랙박스, CCTV 같은 게 생긴 일상 속에서 저런 판을 짜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니까, 


궁지에 몰린 현대 추리 문학이 택한 방식은 두 길 밖에 없는 듯. 

1. 김전일과 병신 무리들처럼, 꼭 폭설이 예고된 시즌에 산장에 기어올라 가거나

2. 디지털 기계나 감시 시스템이 없는 과거로 시대적 배경을 옮겨버리는 거. 


방주의 작가도 원래는 2번 계열을 쓰다가 이번 <방주>는 1의 방식을 택함.

 

그러니까 과문한 내가 보기엔 현대 배경의 추리소설의 성공적 시작은 어쩌면

1번 같은 비상식적인 설정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느냐, 

또 그 발단 안에 얼마나 추리적으로 또 주제적으로 매력적인 요소들을 넣느냐일 텐데, 


내가 보기에 <방주>의 도입부 설정은 독자를 납득시키는데도, 

기법이나 주제적으로도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데도 실패함. 


암실과 정보, 소통 단절,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충 콜라쥬한 것 같은 공간적 배경, 

(특히 빡쳤던 게 이 공간 설정임. <장미의 이름>과 이 작품을 비교하는 게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장미의 이름 속 수도원이란 공간이 가진 공간 자체적+나중에 추리와 어울어지는 매력과 아름다움에 비한다면
이 작품 속 공간은 화가 날 지경이었음. 일단 너무 조악했고 지도를 보는 순간, 소설 후반부의 내용을

50% 이상 예측했는데 그게 모두 맞았음. 님들도 직접 그 스케치를 보면 알겠지만 너무 뻔함..)


거기에 매력은 물론 특별한 인상도 남지 않는 주인공과 빌런, 

납득할만한 동기나 경탄할 만한 재치나 머릿싸움이 아니라 

독자로서 별로 머리를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조잡한 손장난 같은 조잡한 트릭과 추리.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내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이유이자, 

의욕과 조사만 있었다면 보다 깊이있게 파고들 수 있는 주제가 될 수도 있었을 <방주> = 창세기의 그것, 

라는 제목과 공간이 가진 함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는 부분. 


쓰고 보니 사회파 소설들의 장점을 가져와서 

추리소설에게 요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 같단 생각도 들긴 하네. 


뭐 이런 장르 작가들이 열심히 활로를 뚫다가 사회파, 범죄소설 같은 타 장르로 옮겨가거나

내가 진단한 현실적 한계들을 뛰어넘는 혈로를 찾게 될 수도 있겠지. 


여기까지 읽어줬다면 <방주>보다 괜찮고, 내가 진단한 이 장르의 한계를 멋지게 뛰어넘은 

현대 추리소설을 추천해 줘도 고맙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