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이외의 천체에서 온 외계인과의 만남을 다룬 책들은 (수는 많지 않지만) 은근히 오래 되었다.
흥미로운 건 단순히 서로 문화가 달라 맞부딪치던, 다른 문화권의 주민들에 대한 태도와 외계인을 상상하는 태도가 꽤 차이가 있었다는 것.
왜냐면 지구 밖의 존재들은 지상과는 다른 월등한 존재들로 상상되었기 때문.
그런 태도가 갑자기 확 바뀌는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
"우주전쟁"이 기념비적인 SF인 것은, 잘 쓰여져서가 아니다 (소설 구성이 정말 개판이다).
외계의 종족을, 대화가 불가능한 전적인 타자인 동시에 적대적인 존재로 상상한 첫 작품이기 때문.
그 이후로 우리는 천체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심지어 가정 내부에서도) 그렇게 낯설고 이질적이며 이해불가능한 적대적 존재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젠 그런 것에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문화의 역사를 공부해서 배운다는 건, 이런 집단적인 심성의 변화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걸 포함한다.
'이방인' - 소외된 자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 내부에 있지만 다른 구성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르네 지라르 같은 경우, 사회의 기원에는 타자를 향한 초석적인 폭력이 존재했다고 보았는데
그런 존재를 사회 내부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적, 상징적 제의로 작동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저작이 신화와 문학, 정치학과 인류학을 넘나드는 건 바로 그 때문.
우리에게 친숙한 '어릿광대'의 역할이 새롭게 재조명된 건 아마도 20세기 중반의 인문학 때문이다.
축제기간 동안 왕으로 치켜세우다 축제의 마지막에 희생제물로 죽임을 당하는 존재, 사회를 존속시키는 약이자 독인 존재, 이건 지라르와 데리다가 공통적으로 다룬 주제였으니까.
그런 거대한 규모의 변화는 차치하더라도
'아웃사이더'가 왠지 힙한 이미지로 느껴지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라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병약한 귀족의 창백한 이미지가 남다른 고귀함으로 소비되었던 구별짓기의 놀이 말고
자의식적으로 자신이 남들과 다르며 사회가 자신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회를 거부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진 아웃사이더는
19세기 말 이후의 산물이니까.
그리고 그 주제를 다룬 비평서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가 출간되면서 그 저자는 비평계의 수퍼스타로 등장했고.
사실 역사적으로 그런 존재는 선배들이 있었긴 하다. 뭔가 남다른 척 하면서 사실은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위악적인 지식인들 말고도 말이다.
뜬금없게 느껴지겠지만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젠트리 계층의 낮은 신분인데도 자긍심이 강한데, 그건 속물적이지 않은 통찰력으로 세상의 진실을 남보다 '더'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자신의 아버지가 그걸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엘리자베스 최대의 위기는 다아시의 고백이 아니라, 다아시가 고백하면서 그녀의 아버지를 비평하는 대목이다. 엘리자베스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자긍심,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끼니까.
그런데 이건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시골의 젠트리 계층, 결혼 못하고 나이든 여자. 소설을 쓰면서 사람들과 세상사의 진실을 더 잘 꿰뚫어 본다고 자부하지만, 그건 속물정신 가득한 견고한 영국 사회의 질서와 심성 앞에서 종종 흔들렸을 테니까.
19세기 말에 와서야, 정말 사회 부적응자에 인간 쓰레기처럼 보이는 존재들조차도 자의식 하나만으로 세상 전체와 맞짱뜰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독갤만 봐도 이방인,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이 아싸 찌질이의 계보를 가열차게 잇고 있는 독서인간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미안하다, 이 말 하려고 어그로 끌었다.
"참고문헌"
시라노 드 베르쥬락, "달과 태양으로의 여행" (미번역)
웰즈, 우주전쟁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데리다, "플라톤의 약국"
푸코, 광기의 역사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루소, 쇼펜하우어 등의 삶과 태도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카뮈, 이방인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디씨 독서갤러리의 많은 글들
The end.
아싸의 과정은 자아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본인과 타자를 구분하고 더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인데 가끔 그게 어떻게 삐뚤어지는가,로 보는게 더 필요한거 같음 - dc App
어느 정도는 드립이었는데 진지한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
눈치가 없었군 ㅋㅋ 외계인 좋아해서 덕분에 읽어보려 함 ㄱㅅㄱㅅ - dc App
처음 독서 입문할때 이 책과 블랑쇼의 <도래할 책>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음.. 두 책 모두 이해할 깜냥은 거의 없었지만 반복적으로 공명하는 울림에 끌렸다고 해야하나? 도끼, 니체, 우나무노, 오르테가, 무질, 브로흐, 시오랑, 베케트, 헤세, 카뮈 등등 독린이 시절 길잡이 역할을 해줬음 ㅋㅋ
좋은 책을 읽고 난 뒤엔 혼자서 길을 찾아야 하는 법이지. 계속 힘내주라.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