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문헌을 읽는 것과 해설서를 읽는 것은 교환될 수 없음. 절대 맞음.
그런데 시인은 그냥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죽은 시인들의 사교모임"을 위해 시를 쓰는 거라는 얘기처럼
철학사의 어느 시점부터 철학자들은 그냥 철학서를 대중들에게 내놓는 게 아니라 "철학사의 선배, 현실의 맥락, 지식인 사회의 동료들"을 보라고 쓰기 시작함.
그래서 1. 현실적인 맥락, 2. 참조하거나 겨냥하고 있는 선배들의 저술, 3. 그가 대화하는 동료들과 공유하고 있는 배경지식과 전제들
이걸 모르면 대뜸 1차문헌과 맞장뜨는 게 매우 힘든 싸움이 됨.
그리스 철학은 대뜸 맞짱 떠도 됨. 번역서 서문에 있는 배경 소개만으로도 충분히 맞짱 뜰 수 있음. 물론 시공간적 차이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건 친절한 주석의 도움을 바라야겠고.
그런데 중세~근대 철학부터 이게 좀 이상해지는데, 일단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도입한 개념들을 모르면 중근세 형이상학을 한 줄도 이해할 수가 없음.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실체 개념을 갖고 맞짱 뜨면 안 되니까.
그래서 대뜸 "에티카" 읽는 건 미친 놈임. 그러라고 쓴 책이 아님.
칸트 이후로는, 칸트를 모르면 대다수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짐. "순수 이성 비판"을 안 읽은 인간이 어떻게 훗설과 하이데거를 이해하고 A판과 B판의 차이, 시간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이들을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걸 이해함? 그런데 왜 맞짱뜨라고 하는 거지? 권총이라도 주고 호랑이를 잡으라고 해야지. 마스크 안 쓰고 석탄 캐러 가는 거랑 뭐가 달라. 오독이라는 먼지가 쌓여 지성의 진폐증으로 죽어.
뭐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더 이상 철학이 '지성적인 일반 시민들의 교양'이 아닌 세상이 되었음.
원래 그런 세상이 없었지만 예전에는 문맹률이 높아서 책 읽는 시민이면 이미 상당한 중상층 계급이고 교양의 폭도 좁아서 철학서 읽는 게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시대였음. 말하자면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카우프만의 어릴 적 독일 집에는 가족들이 각자 자기 "정신현상학" 책을 갖고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이나 아도르노가 멘토 역할을 하는 선배 격의 형들하고 "순수 이성 비판"을 읽었던 건 그들이 천재적이어서가 아니었음. 교양층 자체가 수가 적었던 시대라 그 정도는 했다는 거지.
그런데 그런 시대는 끝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교양의 폭은 엄청나게 넓어짐. 이제 시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가 '지적 교양'을 위해, 그 중에서도 특히 '철학'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음.
도대체 왜 철학 원전을 일반 독자들에게 권하는 건지 잘 모르겠음. 적어도 읽을 수 있는 도움은 줘야지.
난 어릴 때 어쩌다보니 한문 공부를 해서 나중에 사서를 독학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 그게 일반적이진 않잖음. 게다가 나중에 공부해 보니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내놓은 옛날 서당식 해석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었는데, 제대로 된 연구는 참조하지 않고 아무나 "논어 해설서"를 쓰는 풍토도 문제지만, 그런 주석서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 지침도 없이 "논어를 직접 읽으세요."라고 하는 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잘 모르겠음. 그런 것보다 영미권에서 나온 공자 해설서가 훨씬 더 도움이 됨. 미국놈들의 중국 철학 이해 수준을 낮춰 보지 말아야 함.
아무튼 오랜 동안 철학책들을 즐겨 읽었지만, 난 이게 대중들에게 읽혀야 하는 책인지 점점 갈수록 모르겠음.
철학이 의미있는 건 1. 당대의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기초적이고 원리적인 수준에서, 혹은 대전제의 차원에서 반성적으로) 기여하는 것, 2. 당대의 다른 담론들과 대화하면서 함께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게 기여하는 것. 3.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개인들에게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인) 삶의 고민들을 이해하고 해소하는 것에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을 주는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대뜸 벤야민을 읽는 게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도움이 될까 종종 고민함.
철학의 계기들은 정치, 과학, 예술 등 다양한 곳에서 오는데, 그건 철학사의 고전들을 읽기 위한 배경지식일 뿐만 아니라 철학을 읽으려고 하는 독자들의 계기이기도 함. 그런데 이 사회는 충분히 복잡해서 그 계기들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기 어려움. 그런 것에 힘을 더 써도 부족한 마당에, 그 계기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면서 원전과 맞짱뜨며 철학을 공부하는 게 과연 얼마나 유의미할까, 그런 고민임.
정 읽고 싶으면 옥편 하나 들고 "노자" 해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꼴 나지 말고, 해설서 도움 받으면서 읽으세요. 끝.
부록
책 얘기를 해야 하니까, 칸트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과 대수기하학을 이해하는 게 정도입니다. 뉴턴물리학과 유클리드기하학을 토대로 만들어진 "순수 이성 비판"(책 얘기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직관적인 이해로도 대충 커버가능했던 과거의 과학-세계상을 혁명적으로 바꿔버린 현대 물리학과 수학의 단절적인 발전을 모르면 과학과 함께 '학의 안전한 길'로 철학을 이끌려고 했던 칸트 선생의 원대한 꿈을 포기하고 그냥 칸트 앵무새가 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순수 이성 비판"은 참 좋은 책입니다. 잠들기 전에 읽다보면 정겹고 구수하고 그래요. 잠도 잘 오고.
헉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에 문제가 있음?
문헌학의 기초인 텍스트 비판이 전혀 없이, 한대 훈고학과 주희 성리학적 해석의 전통 속에서 되풀이 되는 답습이니까요.
글쓴이의 관점을 무시할 의도는 없지만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통문화연구회의 번역은 그리 흠잡을 게 없다고 봄..딱히 문제가 되느 부분은 없어 보임 단 성리학이 아닌 선진시대 원형의 유학을 추구한다면 글쓴이의 말도 수긍은 가지만 그런 관점은 주류는 아니라는 거임..주자학적 해석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체계이자 오랜 시간 표준이 되어온 해석인데 이걸 부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매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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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대수기하학을 이해하기위한 과학책 커리큘럼도 짜주실수 있나요
드립입니다. 죄송합니다. 양자역학은 (수학은 어렵겠지만) 최대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있고요, 대수기하학은 일반인을 위한 책이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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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 너 같은 사람 만나서 정말 역겨운데, 몇 개 안 되는 글이지만 대부분 친절하게 답한 내가 왜 짜증이 났을까. 세상에서 제일 편한 논쟁 방법이 "난 별 뜻 없었는데 너가 지랄이네."라고 하는 건데, 계속 그렇게 하렴. 이기는 습관 좋네. 대화하기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너의 삶 응원해. 그러니까 귀찮게 들러붙지 말고 가. 너가 옳아, 내가 추해, 그러니 돌아가.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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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책의 내용, 혹은 내용을 바탕으로 누구랑 이야기하고 싶은데(내가 이해한게 맞나를 확인하거나, 거기서 내가 더 발전시킨 생각을 말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토킹을 하거나) 2차 자료로 이야기하면 뭔가 짜침..
글의 내용이 꼭 철학에 국한되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 본문에서 죽은 철학자와 이야기한다는 말처럼, 2차 자료를 읽을때도 내가 1차자료를 읽은 상태에선 2차 자료의 창작자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라면 그렇지 않은 상태에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들어야하는 느낌이라구..
네이놈 독서력이 제법이구나 냉큼 조선 성리학 관련 책들을 추천해다오
글쓴이는 아닌데 성리학의 기본 개념 체계를 이해하려는 목적이면 예문서원에서 나온 성리학의 개념들, 양명철학을 추천할만함 굳이 조선의 성리학을 원하는 거면 잘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