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회화는 그 표면에 있는 형상을 통해 그 배후에 있던 것을 은폐했었지만, 그것들이 이제 우리들을 향해 그 형상이 없는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도의 끝에는, 이 긴 서문의 끝에는 하나의 빛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간과의 유사를 지키려고 하는 것 같은 하나의 빛. 그의 눈은 우리들을 향하며, 그리고 그의 뒤에는 세계의 마지막 부분이 숨겨져 있음에 틀림없다는, 희망이라고 할까, 기대라고 할까, 그런 것이 남는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영화라는 화랑을 방황했던 것 같다. 이미지 속을, 나아가서는 이미지가 사라진 후의 공백을, 어쩌면 우리들에게 닮은 것인지도 모를 그런 빛을 찾으면서 방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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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성은 우리들 인간이라는 종의 가장 예민한 질병으로 이 질병을 통해 시간은 [지연이라는 그 본성에 있어] 우리에게서 사라져버린 그 알 수 없는 형상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혹은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우리들 인간의 선천적인 질병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 시간을 제외하면, 어떠한 순수함에도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들의 삶은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만 사는 이유가 주어지는, 일종의 질병인 것이다.
시간은 목적에의 절대적인 지연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지연은 목적이라는 절대적인 투명함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어 끝없이 이미지를 형성하게 될 동인이 되고 혹은 우리들 세계에 의미작용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지연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다 써서 소진시킬 수 없는 잉여 자체이다(지연은 시간 존재 형식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끝이 없는 운동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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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왜 영화를 보러 다니는 건데?
-사실 나도 모르겠어!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군. 우리의 어린 시절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던 그 세계와 그 시간을 보러 간다고 말이야.
-그게 전부야?
-물론 그렇지 않아! 하지만 말이야, 세계의 시초에는 이 세계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영화만큼 잘 드러내는 것이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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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 中
아직 1월이지만, 올해 읽은 책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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