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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집이다. 가장 유명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보다 같이 수록된 다른 작품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미 완결된 작가의 인생을 알고 있었고 그의 분신과도 같은 등장인물들의 고뇌 덕분일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따로 리뷰하는 것보다는 3개의 작품을 한데 묶어 이야기해 보고 싶다.


판사로서 고위 관료 이반 일리치는 입신영달에 성공했으나 행복한 결혼이 아니었고, 결국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었다. 그의 가족은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년에 도망치듯 아내로부터 가출하여 농부가 어떻게 죽는지 의문형의 유언을 남기고 기차 안에서 객사한 작가의 삶과 매우 닮았다. 반면 <악마>에서 주인공 예브게니는 자살 혹은 타살로 고통스러운 악마(선악과를 건네는 이브)의 유혹에서 벗어난다. 이 이중적인 결말은 이는 작가의 젊은 날 번뇌이자, 실현되지 못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마지막으로 <신부 세르게이>는 작가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구도자의 삶이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신부와 같이 그는 겁이 나 손가락을 자르지 못했다. 작가는 자신의 나약함이 투명하고 적나라하게 페이지마다 오롯이 적어두어 지금까지 독자에게 최고의 소설가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기적으로 유명해진 자신의 오만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신께 사죄한 신부 세르게이처럼 말이다.


아내의 신경질과 요구가 늘어갈수록 이반 일리치는 삶의 중심을 점점 더 일에 두었다. 날이 갈수록 더 일에 빠져들었고 명예욕도 예전보다 강해졌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 생활이 어느 정도는 삶을 편리하게 해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굉장히 복잡하고 힘겨운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에서 그렇듯 결혼 생활에서도 확실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 대해 나름의 태도를 정했다. 결혼 생활에서는 아내가 제공해 줄 수 있는 편리함, 즉 따뜻한 식사와 집안 관리와 잠자리만 요구하기로 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가정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 즐겁고 유쾌한 일도 조금쯤은 바랐는데, 그런 바람이 충족되면 굉장히 고마워했고 만일 반감이나 불평에 부딪치면 그 즉시 일이라는 자신만의 독립된 세계로 들어가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남편의 성격이 괴팍한 탓에 자신의 삶이 불행해졌다고 결론 내리고 나니 스스로가 불쌍해졌다. 자신이 불쌍해질수록 남편에 대한 미움은 더 커졌다.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그렇게 되길 바랄 수는 없었다. 남편이 없으면 월급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이 더더욱 싫어졌다. 자신은 남편이 죽는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끔찍할 만큼 불행하게 느껴졌다. 화가 치밀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고, 이렇게 화를 감추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이반 일리치는 짜증이 더 심해졌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거짓말 말고도, 아니 거짓말 때문이겠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그가 바라는 만큼 마음 아파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몹시도 괴로웠다. 어떤 때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리고 나면, 이런 고백 하기 부끄럽긴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보듯 가엾게 여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달래듯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입맞춰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주길 바랐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관리인 데다 수염까지 하얗게 센 사람이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이반 일리치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게라심과의 관계에는 이런 바람을 충족해주는 뭔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와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이반 일리치는 흐느껴 울고 싶었고, 누군가 그런 자신을 달래며 같이 울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울면서 위로를 구하는 대신 진지하고 엄숙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면서 오랜 버릇대로 대법원 결정에 대해 견해를 말하고는 자기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다른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이반 일리치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그의 마지막 남은 삶을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그러고 나서 그는 조용해졌다. 울음을 멈추고 숨 쉬는 것까지 멈추고는 온 정신을 집중했다. 사람이 내는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목소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가 처음으로 들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분명한 개념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반 일리치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고통받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다시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그 순간만큼은 고통도 잊을 정도였다.

“사는 거라고? 어떻게 말이냐?”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요, 사는 것 말입니다. 예전처럼 사는 것.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

“예전에 네가 어떻게 살았지? 건강하고 즐겁게 살았던가?”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는 예전 즐거웠던 삶의 순간들을 기억 속에 떠올려보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 즐거웠던 그 모든 순간이 이제 와서는 그때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말고는 모두 그랬다. 어린 시절 그때는,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에 매달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정말로 행복한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을 느꼈던 사람은 이제 없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추억인 것만 같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그러지 말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렴.”

“네, 말씀드리죠. 결혼 전에 어리석게도 이 마을 여자와 관계를 가졌어요. 그러니까, 숲이나 들에서 그 여자를 만났는데······.”

“예뻤냐?” 삼촌이 물었다.

삼촌의 질문에 예브게니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못 들은 척하고 얘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악마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는 자신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진즉에 예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예브게니가 말다툼할 때 보면 다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리자와 마리야 파블로브나 모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예브게니가 정신병을 앓는 정신병자였다는 의사의 말은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는데, 예브게니는 그들이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보다 더 정신이 건강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 예브게니 이르테네프가 범죄를 저지를 당시 정신병자였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정신병자여야 했다. 진짜 정신병자는 다른 이들에게서 광기의 징후를 보면서 자신에게서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악마

어딘가로 떠나 숨어버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까지 궁리하기도 했다. 필요한 사람에게 줄 거라고 둘러대면서 농부가 입는 셔츠와 바지, 외투, 모자를 준비했다. 언젠가 이 옷을 입고 머리를 깎고 떠나리라고 생각하면서 옷들을 방에 보관해놓았다. 일단 기차를 타고 3백 베르스타쯤 간 뒤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녀볼 작정이었다. 그는 한때 군인이었던 늙은 떠돌이 남자에게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먹을 것과 잠자리는 어떻게 얻는지 등을 자세히 캐물었다. 군인은 어느 마을 사람들이 음식과 잠자리 인심이 가장 후한지 얘기해주었고, 세르게이 신부는 자신도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옷을 입고 떠나려고도 했지만, 그대로 있는 게 좋을지 떠나는 게 좋을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처럼 망설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망설임도 사라지고 눈앞의 삶에 익숙해지면서 악마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농부의 옷은 한때 그가 간직했던 생각과 느낌을 떠올리는 물건일 뿐이었다.

신부 세르게이

세르게이가 기억하기로 그녀는 불행해 보였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고, 과부가 된 그녀를 수도원에서 다시 보았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았다. 예전처럼 어수룩하진 않다 해도 볼품없고 초라하고 처량했다. 그녀는 딸과 딸의 약혼자를 데리고 수도원에 왔다. 그 당시에도 그들은 가난했다. 세르게이가 나중에 듣기로는 그녀가 어느 지방 도시에서 아주 궁핍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왜 그녀 생각을 하는 거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그녀 생각이 났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바닥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처럼 지금도 불행하게 지내는 걸까? 도대체 왜 내가 그녀 생각을 하는 거지? 대체 뭘 하는 거야? 그만둬야 해.’

신부 세르게이

‘그러니까 내 꿈이 의미하는 게 바로 이것이구나. 파셴카는 내가 되어야 했지만 되지 못한 바로 그 사람이야. 나는 신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사실은 사람들을 위해 살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지만 신을 위해 살고 있는 거야. 그래, 하나의 선행,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한 잔의 물이 내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은혜보다 더 귀중한 거야. 그런데 거기에도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망이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묻고 대답했다. ‘그래, 있었어. 하지만 그 모든 열망은 세속적인 명성으로 더럽혀지고 묻혀버렸어. 그래, 하나님은 나처럼 세속적인 명성을 위해 사는 자와는 함께 계시지 않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찾아야 해.’

신부 세르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