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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 뉴라이트 운동 등 지금은 침묵화되고 있지만 한때 사회를 강타했던 역사논쟁에서 지침이 되는 고전이라고 할수있다. 역사라는것은 자국민의 시각만으로만 보기보다는 외부인의 시각으로도 보는것이 참신하고 객관적인 역사이해에 도움을 줄수 있을것이다. 좌파적 역사관의 대부인 브루스커밍스도 그렇지만 우파적 역사관의 고전인 위 책 역시 외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경성방직을 경영한 김성수가문의 사례를 통해 조선의 식민지 과정에서 한반도는 자본주의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이 주장은 극우파가 주장하는 협의의 식민지 시혜론과는 차별을 두는 광의의 식민지근대화론으로서 자본주의의 형성이 식민시대에 나타났다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것이다. 이책을 고의 혹은 무지로 인해 지속적으로 오독한 세력들이 좌우 양 극단에서 이 책을 식민지 시혜론으로 받아드리며 이에대한 찬반논쟁을 하는모습을 볼수있는데 이는 애초의 책의 논지가 아니다.

책에서는 단지 자본주의의 맹아가 조선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맹아론을 부정하고있을 뿐이며 사유재산과 민간주도의 자유로운 상행위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에나 실현될수 있음을 말하고있다. 또한 맹아론은 그 말뜻처럼 그럴만한 새싹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는것이기 때문에 가정으로서의 역사에서나 통하는 말이고 사실로서의 역사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저자가 생각하는 가정적 상황에서 역시 조선후기의 경제는 여전히 맹아론이 아닌 관치에 예속된 영역이었다.

저사가 경성방직을 예로 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경성방직의 김성수 등은 동아일보 고려대 등을 설립하며 겉으로는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보인 '부르주아지 민족주의자' ,  교과서적 표현으로는 '타협적 민족주의자'라고 볼수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의 자본가들은 기본적으로 일제에 타협했으나 박흥식등의 경우처럼 전적으로 일제에 타협하며 조선을 혐오한 세력이 있던 반면 김성수의 경우는 민족주의적 노선을 잃지 않았다. 이는 신분의 차이로도 볼수있는데 김성수가문은 조선시대부터 양반가문으로 이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있던 반면 조선시대 천출출신 자본가들은 조선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던 것이다.

일제시대 자본가가 단순한 일제의 부역자인지 아니면 민족의 세력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중이기 때문에 한참전 책인 이 저서가 오늘의 관점에서 정답을 내리지는 못한다. 다만 이 책은 경성방직과 같이 최종적으로는 분명히 일제에 협력했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양반의 풍모를 지키고자했던 회색지대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회색의 영역은 일제치하를 통해 지주에서 공업가로 변모했고 이는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이 책은 마무리에서 일제시대의 자본주의가 해방이후 한국의 자본주의와도 연관이 깊다고 말한다. 이 주장 역시 일본의 시혜론이나 민족반역자 처단등의 감정적 영역으로 논란이 치닫는 부분이다. 저자의 주장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일제시대에 조선의 자본주의가 발흥햇던 권위주의 경제개발 모델이 해방한국에도 적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과거 자본주의를 경험한 일제시대 자본가들이 재임용되었음을 사실로서 말하고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읽고싶던 책이었으나 읽고난 후의 감상은 다소 실망감이 컸다.  이미 역사논쟁의 개요를 알고있고 위 책의 논지를 강화시킨 이영훈 박지향등의 저작을 읽고난뒤 이 책을 읽으니 다소 내용이 싱겁게 느껴진 것이었다. 연구사적으로는 역사관의 시발점이 되는 책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나 이미 관련내용이 심화되어 있기 때문에 박지향이나 이영훈의 저작들을 살피는것이 더 좋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