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책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읽은 것은 '칼의 노래', '흑산', '개' 정도였다. 이제 '남한산성'이 리스트에서 추가됐다. 그의 진면목은 소설보다는 산문집에서 발휘된다고 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내가 무어라 입에 올릴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읽은 것만 얘기하겠다. 내가 이번에 읽은 것은 '남한산성'이다.
우리가 모두 알듯이 '남한산성'에는 뼈아픈 역사가 있다. 그 역사가 우리에게 뼈아픈 것인지 아니면 역사에 서술된 문장이 뼈아픈 것인지 우리는 가늠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가 아프면 아픈것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왕 옆에서 국정을 적는 사관이 있었다. 사관이 적는 글은 실록이 되었고 우리 역사가 됐다. 사관은 자기 앞에 펼쳐진 현실을 바라보며 기록을 할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앞에서 당상과 당하들이 말다툼을 할 때, 그가 붓을 들면서 말을 받아 적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의말을 들으면서 그것을 받아 적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역시 우리는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는 사관의 생각을 알 수 없다.우리는 그저 그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감정을 펼칠 뿐이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은 이러한 일렬의 과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적은 것이다. 김훈은 실록을 읽고, 자료를 읽으며, 남한산성을 돌며, 글을 쓰며. 자신의 감정으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내가 이때까지 읽어본 김훈의 소설, 그리고 소설을 이루는 그 많은 문장들은 참으로 답답하였다. 꽉꽉 막힌 채로 조그만한 틈새로 감정을 뱉어냈다. 김훈의 문장들은 감정에는 빡빡하지만, 육체에는 너그럽다. 감정을 숨기는 대신 육체의 표현으로 대신한다. 그것이 김훈의 문장이고, 장점인듯 하다.
왜 그는 감정을 숨기는 문장을 택하는 것일까? 왜 육체표현이나 자연물롤 대신해 소설 전체 분위기를 잡아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이 처한 상황 그러니깐, 소설에 분위기를 더욱더 배가시키려는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소설 인물들이 표현하는 감정은 독자가 소설 인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수도있다. 그러나 육체나 자연물의 표현은 객관적이다. 속이지 못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문장을 다시 읽어보며 가늠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을 가늠하는지 또, 어떻게 가늠하는지는 책을 읽어 보면 안다. 그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인물의 감정을 알기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 궁금해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하나의 글 앞에 놓여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사관이든 소설가이든, 우리는 그저 글 앞에 놓여 있는 한 명의 독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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