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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나는 헤르만 헤세의 글은 읽기 쉽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다른 소설은 1달, 길게는 3달도 걸리는 내가 이상하게 헤르만 헤세의 소설만 읽으면 길어도 사흘이 안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이 이해하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헤르만 헤세의 글은 마치 반죽에 물을 많이 넣어 묽어지게하고, 끝에 가선 그 쫀득한 느낌마저 없애버리듯이, 글에 비유와 우회적인 말들을 사용하여 어떤 사람이든 스스로의 신념대로 해석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헤르만 헤세의 글은 명작이 된 것이다. 그 누가 읽어도 자신의 인생을 통해 만든 신념과 정확히 일치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스스로의 영혼을 헤르만 헤세의 글을 통해 들여다 보고 있음에도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영혼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글이 가진 능력이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특징은 소설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내가 “해석”한 싯타르타의 깨우침은
“세상은 개념으로도, 시간으로도, 내 자신의 사상으로도 나눌 수 없으니, 그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그러니 이것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삶에는 의미 있을지언정 세상에는 의미없다.“
라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오롯이 내 자신이 해석한 글을 남기기 위해 책 끝의 해설을 읽지도, 헤르만 헤세의 뒷 배경도 더 알아보지 않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요즈음 매체에서 나오는 여러 메세지와도 유사하다. 모두가 피해자이며, 모두가 나름의 사연이 있으며, 모두가 자신의 사상이 있다는, 그런 것들 말이다.
 다만 이러한 사상들과 싯타르타의 지혜의 (위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싯타르타는 사상에 의미를 가지는 것조차 해탈했으니 지혜라는 말이 더 알맞겠다.) 차이점이라면, 싯타르타는 이렇게 나누는 ”타인“조차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 결국 모두가 하나로 뭉쳐진 거대한 덩어리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평소에 가지던 생각과도 참으로 모순되는 말이다. 결국 타인은 내가 아니니,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고 나는 외지인일 터인데, 왜인지 모든 것을 하나의 순환이자 큰 흐름으로 보는 싯타르타의 사상에 나는 감탄하며 그러한 그의 지혜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것이 헤르만 헤세가 언급한 말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절반은 감정으로써 존재하니, 인간의 믿음과 깨우침 또한 절반은 감정일 터인데, 그것을 딱딱한 구조와 규칙이 있는 말로 전달하려니 제대로 전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치 하나의 회로처럼 모순을 낳고 오해를 낳고 분쟁을 낳는게 아닐까… 라고 적으면 너무 개똥철학인가? 최대한 나의 사적인 고민은 제외하려 했으나 나의 독후감이니 내 생각이 들어가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 소설의 종교적인 부분에선 내가 할 말이 없다. 내가 초4 때 첫 영성체를 (이게 맞춤법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은 단어라서.)  받은 것 이외에는 종교에 관해선 일자무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내가 읽어도 크게 소설을 읽는데 방해받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로 이 소설에서 종교라는 매체는 메인이라기보단 소설의 윤활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저 싯타르타의 인생이 흘러가는데 설득력을 더해주는, 일종의 메타포? 이 단어가 이럴 때 쓰이는게 맞나? 글쎄다. 이와 관련해선 첨언할 것이 없다.
  그 외에 더 흥미로운 점을 적어보자면 싯타르타는 결국 지혜를 얻은, 일종의 초월한 인간이 되었음에도 그의 인생은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소년이 청년이 될 때까지 노력하고, 중년기에 성공을 즐긴 후, 노년기에 이에 대하여 해탈하고 유유자적 살아간다는, 싯타르타의 인격은 세상의 한계로부터 벗어났을지언정, 그의 인생 자체는 다른 종교 속 현자들이나 신의 부름받은 자들에 비해 그 어떤 초월도 전능도 보여주지 못한다. 이러한 점이 마치 나의 삶 또한 평범할지라도 그 내부의 세상은 한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희망적 메세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외에 자잘하게 데미안과 이 소설의 공통점, 그의 소설이 가진 전체적 특징에 관하여 더 적고 싶지만, 이것은 굳이 표현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간직하려한다. 이 글은 오로지 ”싯타르타“만을 즐긴 나의 후기여야 하며, 그 이상으로 가면 그것은 나의 해석이 다른 생각과 섞여버려 정제할 수 없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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