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cea8070b38361f336ea84e2439f2e2de49c4d2d30206ca0f6d73b43



존재의 기술이란 의식적으로 성찰된 실천인 동시에 자발적인 실천이다. 이 실천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규칙을 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변형시키고, 자신의 특이한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바꾸며, 마침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 한다.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어떤 양식의 기준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한다.

            
<쾌락의 활용> 중 푸코의 말을 토대로 저자는 타율성에 저항하는 근거를 인간의 실존적 자기 탐색과 능동적인 행위에서 발견하려 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기술로, 삶에 내재된 생명을 미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일련의 과정을 이른바 존재미학으로 본다.


하지만 이 책은 푸코의 사상을 파헤쳐 존재미학을 연구한 결과물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사의 변천과 더불어, 존재를 파헤치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고찰해나감으로써 존재미학이란 무엇인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정의하는 편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능동적으로 푸코의 존재미학을 실천하는 셈이다. 저자가 말하는 존재미학이란 무엇일까?


근대로 들어서며 예술가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던 도구적 역할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찾지만, 자신을 표출하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저주를 동시에 받는다. 그 결과 예술가의 과잉된 감정만이 남아있고 우린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다.


과도한 개별성이 문제가 된다면 인간은 보편적으로 통일된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가? 헤겔은 낭만적 자아를 비판하면서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사회를 통일과 조화로 이끌어 줄 보편적 의식을 말하지만, 모든 이에게 동일한 의미를 강요하는 절대적인 보편성은 타당하지도 않으며 개인의 개성을 짓밟는 공허함을 불러올 뿐이다.


들뢰즈는 기존의 체계와 구분을 벗어나는 탈영토화를 통해 주체와 대상간의 구분을 해체한 후 드러나는 무한한 차이를 긍정한다. 들뢰즈의 보편성 비판은 타당하지만, 외부와 유리된 개체의 내부 표출은 그저 단지 자폐성의 표출이며 광란이 아닐까? 결국 이해받지 못한 낭만적 자아는 파멸로 향할 수밖에 없다.


보편과 개성의 진실한 화해를 위해서는 양자가 모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로 양보해야만 하는 측면이 있다. 보편성만으론 억압적이고 공허하며 개성만으론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기에 공존을 모색하여 보편 속의 개별과 개별 속의 보편의 균형이 이뤄져야만한다.


이렇듯 인간은 완전치 못한 주제에 완전해보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어여쁘고 가련하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고픈 노력에서 비롯된 어여쁨 속에 하나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의식의 주체는 완벽해지려는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살아 숨쉬는 생명력의 추동을 느낄 수 있고, 생명의 파동은 우리 가슴 속에 전이되어 무언가 꿈틀거리게 하는 미묘한 감정을 맛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때로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했을 때 낯선 불안을 이기지 못해 억압하기도 한다. 억압은 다시 의식위로 떠오르며 기괴한 무언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뜻을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은 때론 뜻을 파괴시키기도 하고 창조하기도 하지만 그 노력이 인간을 발전시켜왔다. 불안 속에서 뜻밖의 대상과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긍정적 결과로 창조적 행위가 발생한다.


창조는 알지 못하는 것, 즉 나 이외의 것인 외부의 세계를 마주하고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나비가 자신의 날개를 한 번 펼쳐보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치 상태에서 웅크리고 있는 과정처럼,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나 이외의 세계를 우연히 마주했을 때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이해하려고 열정을 다한 끝에 무언가 깨달았을 때 그것을 표출하는 것이 예술이다. 외부세계를 이해하려는 온당한 노력이 이뤄진 삶, 자기 자신을 깨부수고 나아가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하는 열정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자,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세계에 입증하는 과정이 한 인간의 존재미학인 것이다.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했을 때 책이란 세계를 헤엄치는 물고기 같은 애서가 독붕이들도 자신만의 존재미학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독붕이들은 하나의 책이란 외부세계를 필연적으로 우연히 맞닥뜨렸을 뿐이지만 이해 불가능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단 불안함과 괴로움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그 뜻밖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자아 세계에서 한 발짝 벗어나, 외부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이해의 노력과 고통 끝에, 새로 피어나는 다양함과 아름다움의 들판이 드리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으로써 넓어진 지평과 그 이해의 표출이 무한히 반복될 때, 그 자체가 존재미학의 실현과정이 아닐까? 우린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