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첫 달을 맞아 읽었던 책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작년 말만 하더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읽어보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이번 달 독서량은 꽤나 처참하다. 그래도 다음 달부터는 조금 더 독서할 때 집중력을 더 쏟아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결산을 시작해보겠다.
1. 귀환 (The Return)
“몇년에 걸쳐, 나는 가족이란 화창한 날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걸 서서히 믿게되었다.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던 간에 영혼처럼 어깨 너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Over the years, I’d gradually come to believe that family is like your shadow on a sunny day, always there, just over your shoulder, following you in spirit no matter where you are or what you’re doing.)”
- 귀환 中 -
미국의 소설가 니콜라스 스파크스(Nicholas Sparks)가 2020년에 출간한 장편 로맨스 소설인 귀환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작가의 대표작을 꼽자면 데뷔작인 노트북(The Notebook)이 있는데, 이걸 원작으로한 동명의 영화가 한국에서는 꽤나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가 썼던 소설 여러편이 영화화가 됐다. 본 작품은 평소에는 잘 안 찾아보던 로맨스 소설에다 현대 소설이라는 두 조합을 갖춘 작품이다 보니 내겐 꽤나 생소한 종류의 책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에게 꽤나 낯선 장르의 작품이지만 고맙게도 지인으로부터 예상치도 않게 이 책을 선물받았던 덕에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미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외과의사인 트레버 벤슨이 2019년에 한 결혼식에 참가하면서 5년 전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존스홉킨스 대학 의전원을 졸업하여 외과의가 된 수재지만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도 마다하지도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자들을 열심히 돌봤었다. 그러나 그가 일하던 병원으로 날아든 박격포 포탄으로 인해 귀 한쪽과 손가락 2개를 잃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로인해 그는 외과의사로서의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나 버리고 이내 PTSD에도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버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꾸준히 회복에 전념하였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를 돕고자 모교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을 다시 밟기로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트레버에게 노스캐롤라이나 주 뉴베른에서 양봉으로 소일거리를 하던 노령의 외할아버지인 칼이 심장마비로 인해 위태롭다는 소식이 날라온다. 생각치도 못한 비보를 전해들은 그는 외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이상하게도 그 병원은 뉴베른에서 차로 6시간 거리로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이즐리 시에 있었다. 중태에서 잠깐 의식을 차린 칼도 외손자에게 알아듣기 힘든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만다. 트레버는 대학생 시절 불의의 사고로 양친을 모두 여의었고 외할머니도 어린 시절 이미 세상을 떠난 바람에 외할아버지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고,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러 가기 전까지 그는 뉴베른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트레버는 대문 앞 현관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던 소녀를 발견한다. 그녀는 집에 있던 트레버를 보고는 원래 그곳은 이미 죽은 칼의 집이라며 잔뜩 경계를 했지만, 이윽고 그가 자신을 칼의 외손자라고 얘기하자 안도하고는 자기의 이름을 캘리라고 짤막히 소개하고는 다시 제 갈길을 갔다. 또 다음날 그 저녁에는 여성 부보안관이 트레버를 찾아와 이 집의 새주인이 맞냐고 물어왔다. 트레버로부터 사정을 전해들은 그녀는 자신을 나탈리라고 소개하며 최근 이 집에 무단침입이 있었다는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서 순찰하고자 들른 것이라며 해명했다. 뜬금없는 일로 만나게 되었지만 트레버는 나탈리의 아름다우면서 이지적인 인상과 영롱히 빛나는 파란 눈동자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만다.
이 책은 주인공 트레버가 외조부인 칼의 생전 묘연했던 행방을 쫓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와 동시에 큰 상실의 경험을 지닌 트레버, 나탈리, 캘리 세사람이 맞닥뜨리며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랑과 우정을 키워가는 내용도 서사를 견인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흥미로워 보이는 사건을 중심소재로 삼고 있고, 충분히 격정적인 장면을 연출할만한 감정선을 갖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서사는 시종일관 잔잔한 톤으로 이어진다. 이때문인지 이야기 자체는 부담없이 꺼내들어 읽기 좋은 로맨스 소설이라는 인상만 받았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애틋한 장면들이 여럿 나오긴 했지만, 아주 잠깐 뭉클한 감정만을 일으키고,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할 만큼의 울림은 주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너무 얄팍하다는 느낌만 주다보니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아쉬웠다.
하지만 이책을 영어로 읽으면서 제법 만족스러웠던 점도 있었는데 다름 아닌 문장이다. 책에 적힌 문장을 뜯어 보면 문장 자체는 절대 길이가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은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짜여져 있어 꽤나 술술 읽히는 편이었다. 영어가 모어가 아니기도 하고 그닥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닌 나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어서 내심 한 번 번역이라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이야기 곳곳에 의학, 양봉업, 법 집행 기관등 일상적이지만 전문적이기도 한 정보들이 가미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소설인만큼 당연히 본격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작가가 꽤나 열심히 취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디테일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꽤나 낯선 미국의 지역인 남부인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미국 남부의 독특한 정취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인 취향하고는 잘 맞지 않는 편이라 앞에서는 너무 박평을 하긴 했지만 부담없이 읽을 정도의 무난한 완성도를 갖췄고, 무엇보다 문장이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인 표현들이 나와서 영어 공부하기에는 꽤나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혹시라도 새해를 맞아서 영어 독해력 향상을 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적당한 교보재로 적극 추천한다.
2. 데미안 (Demian)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中 -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부르크의 칼브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독문학의 대가인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의 장편소설 데미안을 읽어봤다. 본 작품은 헤세가 42세 즈음이었던 1919년에 출간되었지만 청년들의 정신적 방황을 섬세하게 묘사한 덕에 당대 많은 청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작품 출간 이후 한참 뒤인 제2차 세계대전 중 노획되었던 젊은 독일군 장교의 개인물품 중에 이 책이 적잖이 보였을 정도였다. 본 작품이 꽤나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일부러 피하기라도 하는 듯이 일부러 찾아 읽어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한 몇 달 전 즈음에 개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이 책을 꽤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길래, 이번 기회에 한 번 사서 나중에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값을 치르고 가져왔다. 이후로도 몇 달 간을 책장에 처박아두었다가 문득 이책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봐야 감흥이 크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사람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모범적인 도덕관과 신앙심을 갖춘 부모의 양육을 받아왔고, 당대 중상류층들이 다니던 라틴어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소년이었다. 그는 집안의 분위기를 '밝은 세계'라고 일컬으며 안락함을 느껴왔다. 하지만 어린 싱클레어는 이에 곧 지루함을 느끼고 싸움과 야비함이 존재하는 집 밖의 '어두운 세계'에도 매력을 느끼고 조그만 일탈을 감행한다. 그는 양복쟁이의 아들로 공립학교를 다니고, 불량아로 소문이 났던 프란츠 크로머와 그의 패거리들을 따라다닌다. 처음 싱클레어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내내 겉돌기만 했기에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비장의 수를 하나 꺼내드는데, 바로 자신이 용감무쌍하게 동네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말을 지어내 이들에게 읊어준 것이었다. 이는 크로머의 이목을 끌었는지 그는 싱클레어에게 정말 사실이냐고 하느님께 맹세할 수 있냐고 하자, 싱클레어는 이내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며칠 후 크로머는 싱클레어를 구석으로 끌고 오고는 최근 과수원에서 사과를 도둑 맞았는데 범인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2 마르크를 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똑같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싱클레어를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한다. 싱클레어는 이에 충격을 받으며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2 마르크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크로머에게 지속적으로 갈취를 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렇게 모진 핍박의 시간을 견디던 싱클레어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오는데 바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던 한 학년 상급생이었던 전학생인 막스 데미안이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가까워지게된 계기는 교리시간 수업 때였는데, 그날 수업의 주제는 동생인 아벨을 시기해 그를 죽이며 성경에서 최초로 살인을 행한 카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상하게도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을 무조건 악인으로만 규정하는 통념과 다르게 그는 인습에서 벗어나 초인적인 힘을 행사하는 인물상이라고 얘기하였다. 이는 싱클레어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로도 크로머에게 끊임없는 괴롭힘에 시달려온 싱클레어는 죽상이 된 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데미안을 마주친다. 뭔가 안좋은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냐고 집요하게 캐묻고, 이를 못이긴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이름을 대며 그에게 내내 갈취당하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데미안은 그런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대답하고는, 앞으로는 더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남기며 싱클레어를 떠난다. 정말로 기이하게도 그날 이후로 크로머는 싱클레어를 찾아와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그를 일부러 피하면서 다녔다. 당연히 이를 이상하게 여겼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크로머한테 무슨 짓을 벌었냐고 묻자, 데미안은 태연하게 자신은 그에게 어떤 폭력도 쓰지 않았고 싱클레어를 괴롭히면 안되는 이유가 담긴 말만 했다고 답했다. 황당한 대답을 들은 싱클레어는 처음으로 묘령의 친구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본 작품은 흔히 성장소설로 회자되는 책이다. 보통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친구와의 유대관계, 성에 눈을 뜨면서 펼쳐지는 풋풋한 사랑이야기 같은 것이 연상된다. 하지만 성장소설의 표본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은 그런 요소들과는 거리를 둔 채 철저히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숙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 데미안, 싱클레어가 방황에 젖어 있던 시절 멘토 역할을 해준 오르가니스트 피스토리우스, 싱클레어에게 이상향으로 삼은 완벽한 이성의 표본인 에바 부인 같이 주인공과 상호작용하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른 인물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 또한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숙을 촉진하는 캐릭터로서만 기능한다. 이야기의 중추를 이루는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숙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장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보통 우리는 성장을 통해 주어진 규칙을 숙지하고 현실적인 감각을 갖춰서 사회성을 갖추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이 책에서 정신적인 성장은 두어진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맹점을 파악하고, 낡은 구습을 거부하는 능동적인 인물상이 되는 것을 강조한다. 상기 문단에서도 언급된 카인에 관한 데미안의 견해도 그중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논할때마다 한 번씩은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구절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라는 구절도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또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적인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기 보다는 도피하듯이 어떤 이상을 기치로 건 단체나 국가에 투신하여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려는 경향에 대해서도 ‘패거리 짓기’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렇듯 작가는 본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아를 성찰하여 진일보할 것을 역설하였다.
데미안은 주된 내용으로 싱클레어의 정신적 고뇌를 다룬 만큼 다분히 관념적인 성격을 띄었고, 카인과 아벨, 영지주의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괴신인 아브락사스 같은 신화적인 은유가 종종 등장하는 까닭에 마냥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 책을 펼쳐서 읽어보면 굉장히 술술 페이지를 넘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이유를 곱씹어 보자면 미려하면서 감성적인 내음을 풍기는 헤세의 문장도 한몫 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사유는 이 작품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왔던 성장통을 주요 소재로 다루면서 갖춘 보편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작품의 내러티브가 난해한 편이긴 하지만, 작중 싱클레어가 겪는 정신적 방황과 그가 매번 사회에 주어진 규칙과 도덕,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상황은 사고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한번씩은 경험하게 된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켜 싱클레어를 자신과 동일시하게끔 만들고, 이내 독자들의 감정 또한 고양시킨다. 이렇게 작품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는 왜 데미안이 전간기를 살아가던 독일 청년들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전세계의 독자들을 매혹시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상술하였듯이 본 작품이 신화적인 은유로 점철된 만큼 가볍게 추천드리기는 망설여지긴 하지만, 작품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고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편인 만큼 고전 문학에 입문해 보고자 한다면 본 작품의 일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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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데 잘읽히노 개추
글솜씨가 아직 부족한데 칭찬 고맙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