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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더 셜리 클럽
(2020)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설희’는 축제 퍼레이드에서 ‘더 셜리 클럽’이라는, 셜리라는 이름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행렬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뒤를 쫓는다. 설희의 영어 이름도 한국 이름의 발음을 변형한 ‘셜리’이기 때문. 그렇게 펍까지 따라갔지만 클럽에 선뜻 말을 걸지 못하는 셜리 뒤에서 의문의 사람 ‘S’가 말을 거는데...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진한 ‘사랑과 연대’ 감성으로 살짝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심심했음. 오히려 아쉬울 정도임. 물론 주된 감성은 (S와의) 사랑과 (셜리 클럽에서의) 연대이긴 함. 근데 그게 넘쳐흐르는가? 결코 아님. 그러면 중도를 잘 지켰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간을 덜 해서 심심한 게 아니라 물을 타서 심심한 느낌임. 여러모로 연하다는 느낌이 강함.
처음에는 심심한 이유가, 작가가 책이 주요한 감정에만 너무 깊게 매몰되는 걸 경계해서 그런 건가 싶었음. 전작 ‘체공녀 강주룡’에서도 비장함과 자기 연민에 과하게 빠지는 걸 경계했기에 여기서도 주제는 사랑과 연대이지만 그것만이 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느라 역으로 연해진 건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냥 작가의 마음이 불균형하게 표출돼서 그런 것 같음. 우선 S와 셜리 클럽의 중요도가 비등조차 하지 않음. 이 책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사라진 S를 찾아 떠나는 셜리의 모험’임. 셜리 클럽은 그 안에서 오로지 조력자 역할만 할 뿐임. 굳이 나눠서 얘기하자면 연대보다 사랑이 더 주라는 것. 연대를 아무리 꼬박꼬박 챙겨줘도 그 정도가 결코 S를 향한 셜리의 사랑을 넘어서지 못함.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가는 셜리 클럽(다른 셜리들)을 정말 꼬박꼬박 챙겨준다는 거임. 명대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셜리 할머니들에게서 많이 나옴. 그러나 주인공 셜리는 이름에서 오는 동질감을 제외하면 클럽 자체에 딱히 큰 생각이 없어 보임. 무조건에 가까운 이유 없는 친절은 따박따박 받아먹으면서 마음은 오로지 S만을 향함(여기서 주인공은 절대 할머니들에게 먼저 도와달라고 하지 않음. 그러니 이 평을 주인공이 본다면 ‘아니 난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할머니들이 나서서 도와준 거임. 나도 나름 부담스럽기도 했음. 근데 그럼 호의를 거절함?’ 하며 불평할 듯).
즉, 작가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감성과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감성이 살짝 다름. 정확히는, 작가는 사랑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한 사람을 향한 마음과 다수가 다수를 향한 애정을 함께 말하고 싶어 하지만, 주인공은 그 두 감정이 서로 영향은 미칠 수 있으나 연관된 하나의 감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임. 그러니 사랑과 연대가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고 독자는 어디에 이입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으니 불균형함을 느낄 수밖에 없음. 작가와 주인공이 서로 이야기를 덧칠하려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전체적인 색깔이 연해져 버림. 결국 작가가 인물과 주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뜻.
그러니 가장 큰 문제는 이 책의 제목이 ‘더 셜리 클럽’인 것에 대한 당위가 약하다는 거임. 큰 목적 없이 떠나온 워홀, 고된 공장 생활과 마음 붙이기 어려운 셰어 메이트들, 이해하기 힘든 엄마... 이러한 생활 속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할머니들의 당당한 퍼레이드를 보고 마음이 동한 것까지는 흐름이 좋으나 애초에 이 이야기는 셜리와 S만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듯 펼쳐지는 이후의 상황들을 보면 좀처럼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힘듦.
S라는 인물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는 것도 한 특징인데, 이민자의 자녀라는 소수성을 제외하면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음. 셜리가 S를 좋아하는 이유도 단순히 목소리로 인한 끌림인지 불안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며 느낀 정서적 편안함인지 둘 다인지 명확하지 않음. 오죽하면 사실 S는 셜리(‘S’hirley)의 다른 일면이고 그렇다면 이건 셜리가 자아를 찾는 여행기인가 싶었음.
서사가 불안정해 담으려는 메시지가 빛을 못 보지만 이야기가 품고 있는 분위기까지 마냥 별로라고 할 수는 없긴 함. 마치 90분짜리 가벼운 영화 한 편 본 것 같음. 적당히 유치하면서 적당히 말랑거리고 적당히 짜증 나면서 적당히 사랑스러움. 눈앞의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춘의 일면을 옅게 잘 표현함.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일기장 같음.
마지막으로, S의 목소리가 또렷한 보라색이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표지는 왜 분홍색일까. 그건 아마 생각해 본 적 없을 셜리 본인의 목소리가, 사랑을 향한 강렬함을 담은 빨강과 어디에서든 겉돌았지만 어디에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무채색 흰색이 섞인 분홍색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미상
이중 작가 초롱
(2022)
드디어 만난 ‘한 걸음 더 나아간’ 책. 그동안 읽어온,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젊은 국문학은 보통 극한의 당사자성만을 강조하거나 ‘거시적으로 담론화할 자신은 없으니 뒤로 한 발 물러나 팔짱 끼고 조소하는’ 감성만이 강했음(6화, 장류진 – ‘연수’ 참조).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시대를 담는 시선에 한계가 너무 명확히 보였다는 뜻임. 작가들 각자의 문체가 있고 소재가 있고 서사가 있는데도 어째선지 다 비슷해 보였던 이유가 바로 쓰는 사람은 다를지언정 그들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모두 같았기 때문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됨.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은 중의적인데, (이제는 평범해진) 기존의 페미니즘 이야기에 대담한 소재를 덧붙여 정말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뜻이기도 하고, 늘 앞에서만 혹은 옆에서만 응시하던 시선을 한 걸음 껑충 뛰어 위로 옮겨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았다는 뜻이기도 함.
소재 얘기부터 하면, ‘이제는 평범해진 페미니즘 이야기’에 대한 언급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음. 젊은 여성이 등장해 젠더 이슈에 맞서는 그 많은 이야기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가슴 답답한 속 시원함’이라고 생각함. 독자 자신도 겪었던, 겪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을 읽으며 화자와 자신을 동일시해 개운함을 느낌과 동시에 그럼에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 책과 달리 덮을 수도 없는 현실에 다시금 차오르는 답답함. 물론 이러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유행하는 것에는 큰 의의가 있지만, 역으로 그러한 이야기들의 가장 큰 단점은 그저 ‘재확인의 반복’일 뿐이라는 점이었음. 이미 알고 있는, 어쩌면 내가 작가보다 먼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내용들이 적당히 옷만 갈아입고 쏟아지니 시대의 담론이긴 하나 가볍게 느껴지고 도리어 평범해져 버렸다고 생각함. 그럼 이 책은 뭐가 그렇게 다르냐, 사실 소재만 보면 그렇게 다르지 않음. 오히려 그 가볍고 평범한 소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 그러나 적당한 재확인이 아닌 불편한 의문을 던짐으로써 차이를 만들어 냄. 그것도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설 내내 질문을 던지다가 끝남.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소재들을 살짝 비틀어 파격을 만들고 그 속에서 성과 차별과 편견과 폭력에 대한, ‘윤리’에 대한 질문을, 생각해 본 적은 있으나 밖으로는 굳이 꺼내지 않는 애매하며 불쾌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짐.
시선의 방향은 당사자성과 연관 지을 수 있는데, 체험이 아닌 공감만을 노린 글은 어쩔 수 없이 화자(작가)의 시선이 평면적일 수밖에 없음. 독자의 마음속에 있는 경험(했던, 할지도 모르는)의 근원을 건드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직접 겪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일직선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음. 하지만 이미상의 글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표현했듯, 한 발짝 멀리 떨어지는 것을 넘어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치 남 일인 양 묘사하고 있음. 단순히 일인칭과 삼인칭을 섞는 것이 아니라 수기와 일기와 회고와 독백의 형식을 돌리고 깎아 파편적이면서도 메타적인 시선을 구현했기 때문임. 다분히 산만하면서도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음. 따라서 소재의 동시대성은 강할지라도 시선의 당사자성에는 편차가 생기니 마냥 공감하며 읽기엔 어려울 거임.
구조를 보면 겹겹이 주름을 쌓아나가는 것이 특징임. 표제작 ‘이중 작가 초롱’에 나오는 ‘제3의 원’식으로 말하면, 작가가 그리는 이야기, 독자가 이해하는(할 수 있는) 이야기, 독자를 딱히 의식하지도 않았고 독자도 이해하고 싶지 않을 이야기, 이렇게 세 개의 원이 켜켜이 쌓여 어디에서는 분리되고 어디에서는 다시 합쳐짐. 하나의 소설 안에서도 그러할 뿐 아니라 책 전체로 봤을 때도 유기적이어서 단편집이긴 하나 거대한 연작이라고 할 수도 있음. 게다가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것도 특징인데, 첫 번째 작품 ‘하긴’을 빼면 어퍼컷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딱히 없음. 그러나 크고 작은 펀치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다 읽고 나면 얼얼함. 이는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에서 나오는 ‘한 방’과도 연관이 있음. 이렇듯 소설의 구조를 인물의 입을 빌려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독특한 특징임(‘이모’가 아닌 ‘고모’를 내세워 모성애를 말하는 것 또한 신선한 지점).
즉, 이 책은 불편한 질문과 파편적인 시선과 겹겹이 쌓인 서사가 합쳐져 위험함과 이상함을 뽐냄. 솔직히 썩 유쾌한 이야기들도 아니라 읽으면 정말 기분이 불쾌해질 수 있음. 마치 김애란의 단편집을 읽을 때 들었던 감정과 비슷함. 서사가 불편하니 좀이 쑤시고 인물에는 마음을 못 붙이니 답답하고 던지는 질문에는 즉각적인 대답이 안 나오니 내가 바보인 것 같음. 물론 김애란의 묘사 차력쇼에는 못 따라오지만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운 면에서는 비슷했음.
문장에 대해서는 살짝 양가감정이 듦. 읽다 보면 시대의 유행어라고 할 수 있는 표현들이 살짝살짝 나오는데 그로 인해 쌓아가던 감정이 갑자기 확 무너지기도 했음. 지극히 가벼운 표현은 지양하면서 필요한 위트만 충분히 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흐름의 무게가 훅 날아가게 되는 지점들이 있어서 아쉬움. 그러나 그러한 가벼운 표현들이 답답함을 환기해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작가의 기본적인 센스와도 귀결되는 부분이기에 마냥 아쉬워할 수만은 없긴 함.
시점을 조각내다 보니 서사의 완결성이 약해 보이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임. 이게 끝인가 싶어서 두세 번 읽은 작품도 많음. 꽉 닫히며 끝나는 게 아닌 수준이 아니라 어이가 없을 정도임. 만약 읽는데 정 어려우면 해설을 먼저 보는 것도 추천함. 딱히 스포일러가 중요하진 않아서 괜찮음. 그리고 해설도 비평에 가까울 정도로 굉장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함. 어찌 됐든 읽어보는 걸 추천.
아쉬운 점으로는, 기다려온 불쾌함이긴 하나 불온하다고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임(이 지점에서는 해설과 의견이 다름). 동시대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재해석하는 데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인데,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구조가 어찌 보면 벌여놓은 판을 제대로 수습할 자신이 없어 적당히 마무리 짓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기껏 내디딘 한 걸음을 다시 슬쩍 뒤로 물려 타협하는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임. 힘을 숨기고 있는 건지, 역량이 여기까지인 건지, 반응을 간 보고 있는 건지는 두고 봐야 알 듯함. 그러니 마냥 좋다고 하기엔 멈칫하게 됨. 그렇다... 나는 소망한다 더욱더 큰 파격을... 더 솔직히는 열린 결말이나 실험적인 구조를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굳이 따지자면 불호에 가까움. 하지만 국문학 판 전체를 보면 호라고 할 수밖에 없음. 해야만 함. ‘안온 다정 무해 따뜻’ 세계에 지친 독자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거라고 생각함.
추가로 하긴을 읽고 여작가인지 몰랐다는 평이 많은데, 솔직히 누가 봐도 여작가가 그린 남화자로 보임. 이걸 정말 몰랐다는 건 여작가가 남화자를 혹은 이야기 자체를 ‘그런 식’으로 묘사할 거라 생각 못 하는, 또 하나의 무시와도 같음. 여작가를 여성 ‘작가’가 아닌 ‘여성’ 작가로 먼저 인식하기에 생기는 판단 오류 같음. 판의 흐름이 바뀌길 바란다면 독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함.
추천작: 여자가 지하철 할 때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2015)
시대에 맞춰 감각 좋은 작가가 젊은이들을 겨냥해 재빨리 써낸 듯한 책. 집필의 목적이 아주 직관적이라 가볍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담긴 시선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꽤 유효해 보여 이 책을 그저 시의성만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음.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계획하는 ‘계나’는 가족과 남자 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주로 떠난다. 어학원을 수료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영주권과 시민권을 따는 것을 목표로. 행복을 찾아.
줄거리는 단순함. 계나가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에서의 생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민을 목적으로 호주로 떠난다는 게 다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쳐짐.
우선 책장이 그야말로 술술 넘어가는 게 큰 장점임. 주인공이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정말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아서 흡인력이 좋고 인터넷에 올라온 ‘필력 좋은 장문 썰’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속도감도 좋음. 계나가 겪는 일들이 가만 생각하면 은근히 파란만장한데, 깊게 염려할 틈 없이 죽죽 읽어나가게 돼서 거꾸로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특징임. 그래도 어쨌든 잘 해결됐다, 는 게 함축되어 있는 말투라 읽기에 편안한 감도 있고.
대화 진행이 친절해서 누가 말하는지 한 번에 다 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함. 개인적으로 대사의 주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기법을 아주 싫어하는데(유추를 통해 파악하는 재미도 한두 번이지, 캐릭터성이 엇비슷한 것도 모자라 말투도 거기서 거기라 누가 말하는지 잘 파악 안 되는 책들 요즘 한 바가지임), 이 책에선 꼬박꼬박 누가 말했다고 덧붙여줌. 헷갈릴 여지조차 없음.
이러한 점들이 얽혀 책 자체가 굉장히 단순하면서 쉬움. 두께도 얇아 앉은 자리에서 쉬지 않고 후루룩 읽기에 좋음.
나는 작가가 이성의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에 반감이 아닌 불안이 있는데(작품 전체가 아닌 순간적인 ‘빻음’으로 감상을 해치게 될까 봐), 다 읽고 나니 남작가가 쓴 것이 뻔히 보이지만 여화자를 그리는 방식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음. 물론 ‘다 읽고 나서’임. 초반에 계나가 호주에 입국하며 생리를 흘리는 장면을 보고서는 탄식을 금치 못했음(아, 대체 남작가들은 왜 이리 여성의 생리를 좋아하는가, 무언가의 비유로 생리를 활용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잡으려는 수작으로 보일 정도였음.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생각이나 외국에서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는 여성 독자들한테 점수 따려고 발버둥 치는 건가 싶었는데(물론 이 책의 최종 목적은 계나의 행복이기에 너무 짙은 농도의 위험은 피할 필요가 있긴 함), 다 읽고 나니 꽤나 괜찮은 시선으로 양성을 묘사할 줄 아는 영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음. 큰 왜곡 없이 현실을 그대로 담는 것에 능해 보임.
메시지 면에서는 솔직히 좀 놀랐음. 첫 번째는 2015년에 나온 책의 문장들이 지금도 먹힐 만하다는 점에서, 두 번째는 그렇다는 건 이 사회가 그동안 제대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줄거리만큼 메시지도 간단함. 계나가 한국을 떠나려 하는 이유, 그건 바로 계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임. 행복을 우선 가치로 두기에는 숨 쉬는 것부터가 막막한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이, 이 사회가 ‘정상화’가 되기 전까지는 먹힐 수밖에 없을 시선이 제법 날카롭고 공감이 많이 감. 주인공(여성)의 관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아 자칫하면 성별 간 불행 배틀이 될 수 있을 흐름을 잘 틀어막은 것도 좋고. 또한 한국과 호주는 각각 ‘익숙한 불행’과 ‘낯선 행복’으로 치환할 수 있고 이민은 곧 탈출을 뜻하기에 넓은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로도 넉넉히 챙김.
다만 2030이 대한민국에 가질 수 있는 불평을 모두 모으다 보니 ‘노림수’로 보이는 면이 많긴 함. 취재와 더불어 인터넷 커뮤니티 눈팅 많이 했나 싶음. 그래도 겉핥기로 보이지 않기 위해 뻔한 문장을 작가 본인의 스타일로 열심히 바꾼 점이 책을 마냥 얕게 하지 않음.
다른 단점으로는, 행복을 찾아 호주로 떠났지만 어느새 자신이 욕하던 사람들과 닮아있는 주인공을 통해 좋게 잘 마무리되던 분위기가 잠깐 틀어지는데, 행복의 원천에 대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준비한 채로 시작했으면서 갑자기 물음표를 던지다 얼렁뚱땅 마침표로 끝내버림. 책이 너무 안전할까 싶어 뒤늦게 살짝 비튼 게 아닐까 싶으나 결국 일정하고 일관적임이 장점이었던 책의 흐름에 균열만 만들게 됨. 난 계나의 진정한 행복을 바란다고...
그래도 취재로 얻은 사례를 활용해 작품의 밀도를 높이고 흔한 징징거림을 보편적이면서 특수하게 풀어낸 작가의 깔끔한 필력만큼은 괜찮았음.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짐.
여담으로 어쩌다 보니 ‘더 셜리 클럽’도 그렇고 호주 워홀을 주제로 여성이 주인공인 책을 연달아 읽었는데, 남성 주인공의 워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심재천의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추천함. 순수 재미만 따졌을 때 셋 중 제일 웃김.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016)
외면과 무지도 동조와 다름없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썼던 감상평임.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욕을 먹던 시절에 답답함을 느끼고 쓴 ‘광역 저격’과 같은 멘트였는데, 지금처럼 장문의 감상을 쓰거나 어디에 글을 올리지도 않을 때라 혼자 조용히 끄적이던 기억이 있음.
그런데 만약 재독한 지금 이 시점에서 한줄평을 다시 쓰라면 다르게 쓸 것 같음. 외면과 무지를 강조했던 것은 ‘모르는’ 이들과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를 대단히 다른 종인 양 선을 긋기 위함이었음을, 알량한 이해로 가슴이 울컥했다는 정도로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했던 것에 불과했음을 몇 년이 지나 다시 읽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음.
알다시피 82년생 ‘김지영’ 씨가 주인공임. 김지영을 설명할 다른 말로는, 여성, 삼십 대, 아내, 엄마, 주부 정도가 있음. 간단히 말하면 ‘출산과 동시에 퇴사한 서른 초중반의 여성’임. 알 수 있듯 저 타이틀 중 김지영이 사회적으로 이루어낸 건 포함되어 있지 않음. 없는 게 아니라 지워졌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아무튼, 이러한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인, 고인 가리지 않고) 주변 다른 여성들이 빙의 된 듯 말하는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남. 이 이야기는 그러한 김지영을 담당한 정신과 의사가 쓴 환자 기록이자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풀어낸 김지영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음.
장단점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서 쓰는 게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구구절절한 개인 감상만 쓰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다른 책들과 동등하게 얘기하고자 함.
구조부터 짚자면, 마지막 장에서 화자가 의사였다는 게 드러남으로써 이 책은 사실 거대한 진료 기록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작품 분위기를 지배하던 기묘한 삼인칭 화법이 그제야 이해가 됨. 솔직히 나름 반전이었음. ‘기묘한 삼인칭’,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용이 김지영과 남편의 말을 토대로 의사라는 극 속 인물이 최대한 제삼자의 시선으로 작성한 것도 같으나, 곳곳에 드러나는 극 밖 작가의 자아가 철저히 주관적인 설명을 곁들이기 때문임. 의사는 김지영의 생애를 ‘거칠게’ 요약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세세히 늘어놨음. 작가와 화자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탓. 거기에 뚜렷한 기승전결 서사 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소재 전시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인용들이 진료 기록을 소설과 르포 사이의 어딘가로 몰아넣으니 ‘전체적으로 어정쩡하다’는 평도 아주 나쁜 말은 아닐 것임.
소재에 대해선 아주 재미있는 점이, 아들과 딸, 남학생과 여학생 차별을 넘어선 근본적 남아선호사상, 여아 낙태, 스토킹, 2차 가해, 집안 어른들의 시대착오적인 발언들, 시집살이, 직장 내 성희롱,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육아 우울증, 화장실 내 불법 촬영, ‘맘충’ 발언 등 2024년도인 지금 와서 보기엔 굉장히 ‘순한 맛’ 소재들이라는 거임. 아니, 사실 그 당시에도 신선하게는 느꼈지만 그렇게 ‘매운맛’은 아니었음. 애초에 자극만을 위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임. 여성의 아픔을 그리기 위해 채택한 소재들이 한데 묶였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이 ‘금서’ 취급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 물론 저러한 소재 나열의 연결이 매끄럽진 않음. 어찌 보면 젊은 국문학 ‘먹다 체할 지경인 주제 파티’(4화, 정세랑 – ‘시선으로부터,’ 참조)의 선구자로서 단순 소재 나열의 시작을 끊었지만 그것을 ‘잘’ 끊었는지는 별개의 문제.
누군가는 반박하겠지, 차별이나 불행 등 여성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을 써서 욕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싹싹 긁어 쓴 게 문제고, 지나치다고 느끼는 건 어떤 종류의 공감이나 이해 없이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라고 타자의 입장에서 우선 생각하기 때문임, 한 사람이 전부 겪기에는 너무 과장되거나 왜곡된 점이 많고, 혼자라고 하기엔 김지영은 여성의 대표 격으로 상징되는 인물이고 위 사례들은 지영 혼자 겪은 것도 아닐뿐더러 수많은 여성 독자가 공감했다는 결과만으로 후행적 당위가 충분해짐, 모든 원인을 남성으로 돌리는 것도 모자라 남성을 전부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이 책에서 가해자는 남성들만이 아니라 할머니, 선생님, 시어머니 등 여성들도 많음 그 말은 문제의 원인을 어느 한 성이 아닌 사회 전체로 향하게 한다는 뜻, 남자도 겪을 수 있는 아픔이고, 그럼 그걸로 소설을 쓰면 되시겠습니다, 우리 엄마는 다 불평 없이 했던 일들인데? 김지영의 어머니도 그러함 하지만 당신의 딸들은 당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람.
즉, 나는 이 책이 사회적 젠더 갈등의 ‘기폭제’라고 보지 않음. 오히려 갈등을 직면함으로써 ‘해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편임. 다만 매개체가 될 순 있어도 방안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데, 고발만의 메시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책 자체가 마땅한 결론 없이 마무리되어 작가가 모든 답을 전적으로 독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임. 그러니 깊이가 얕아 보이고 읽은 놈들과 안 읽은 놈들만 서로 싸우는 꼴이 됨. 그러나 나는 적어도 욕할 거면 읽어 보고 욕했으면 좋겠음. 읽었으면 욕해도 됨? 아니 좀 참아봐... 차라리 필력이 별로라고 까는 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슬쩍 보고 지레짐작해서 까는 건 좀 억울하다고 봄.
내용을 한 번 더 보면, 김지영이 다른 여성에게 빙의되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표출하기 위함과 같은데 김지영의 생애에서 무언가 해결된 건 모두 때마침 등장한 ‘저항 인물’ 덕이지 지영 스스로 목소리를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 그렇다는 건 곧 김지영은 ‘수긍과 수동 사이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볼 수 있음.
아무튼 정리하자면 ‘잘 쓴 책’, ‘재밌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언젠가 나왔어야 할 책’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함. 시의적절하게 등장해서 총대를 잘 멨음. 비문학의 형태로 나왔다면 욕을 덜 먹었을 것 같으나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회자와 구설이 넘나드는 작품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음. 문학이라는 가장 쉽고 대중적인 글의 형태로 나왔기에 이만큼의 파급력이 생겼다고 생각함.
만약 이 이야기가 궁금은 한데 책은 죽어도 읽기 싫다, 그러면 영화를 추천함.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특히 후반부에 갑자기 위로받아야 할 주체가 지영이 아닌 남편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건 다시 봐도 영...) 책보다 흐름이 부드럽고 결말도 더 희망참. 난 개봉 당시에 엄마랑 같이 봤었는데 둘이 눈물 콧물 다 짰었음. 하지만 꾹꾹 참다가 엄마가 울자 그제야 나도 울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먼저 울면, 여성이 흘릴 눈물까지 빼앗는 게 될까 봐.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2023)
어느 날 만나 모임을 결성한 네 사람(+ 한 마리)의 이야기가 각각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연작.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랑이 스스로 헤엄쳐 움직임으로써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는 ‘주희’, 관심 가는 사람에게 더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어찌 보면 김화진의 문학 속 가장 전형적인 인물인) ‘솔아’, 속에 담아둔 사연을 결코 먼저 드러내지 않는 ‘지원’, 철저한 관찰자 입장으로 모임에서 자신의 자리를 영리하게 파악하는 ‘현우’의 인연과 우정과 사랑 이야기임. 단순히 이성 간 사랑뿐 아니라 넓은 의미로, 지인과 친구로서 품고 바라게 되는 마음에 대해 서술함. 얼핏 보면 서사가 빈약해 보일 수 있으나, 지원이 솔아에게 해준 공룡(트리케라톱스) 모양의 타투 ‘피망이’의 시점이 마지막에 에필로그처럼 펼쳐지며 나름 안정적으로 마무리 됨.
전작 ‘나주에 대하여’에서 작품 분위기를 감성적과 환상적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는데(5화 참조), 이번 연작은 전체적인 분위기는 감성적으로 가져가면서 환상적 소재를 중요한 시점 중 하나로 채용함. 거기에 담은 주제는 전작에서도 부르짖었던 ‘마음’이니 모든 면에서 작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들만 골라 썼다고 보면 됨.
‘나주’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신진으로서 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건 ‘포지셔닝’이라는 점이었음. 현재의 현실을 배경으로(실재의 현실을 잘라 걸어 놓은 듯한)... 인연과 우정과 사랑을(퀴어성 관계를 대두하며)... 마음을 조심히 따라가 보는(일기 형식의)... 따뜻함과 예민함으로(작가와 인물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섬세한 문체의(실상은 버석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는 이제 널리고 널렸음. 그런 데다 나주에서 ‘소프트 최은영 + 포스트 정세랑 (+ 장류진 반 스푼)’이라고 평한 것처럼 김화진의 글은 좋게 말하면 기존 작가들의 특징을 잘 섞었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그저 짬뽕으로 보인다는 점이었음. 그러한 점을 가리기 위해 일부러 퀴어와 장애 소재에 그렇게 매달린 건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명확한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가 ‘새 이야기’, 다른 하나는 ‘꿈과 요리’였음. 각각 작가만의 환상과 감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함. 어처구니없을 만큼 뜬금없고 황당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환상성과 관계를 되짚어 보며 나(우리)의 현재와 과거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기 위한 화해의 감성이 이 작가의 개성이라고 생각함.
서두가 너무 긴데?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좀 길었는데, 아무튼 이번 연작은 작가가 자신 있어 하는 소재들과 더불어 전작에서 보여줬던 개성들이 적절히 잘 조화되어 여러모로 장점이 도드라진 작품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음. 어떻게 본인만의 자리를 잡아나갈까 싶었는데 아주 정석적인 방법으로 한자리 꿰참.
물론 작가의 발전과 별개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음. 일단 소재만 보면 전작과 유사함을 감추기 어려움. 서로를 향한 마음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크기일 수 없기에 생기는 시차 속에서 나를 보여주고 싶지만 진짜 내 모습은 보여주기 싫으면서 내가 관심을 갖는 만큼 상대도 나에게 관심을 주길 바라며 말하는 것이 무서운지 말함으로써 불편해질 그 공기와 상처를 받게 될 그 순간이 무서운 건지 그러므로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상처받게 되어 서서히 멀어지는 사이에 대한... 그런 이야기... 한 마디로 아슬아슬한 ‘시절 인연’에 대한, 타인을 향한 못나고 안 예쁜 마음(이런 표현을 참 좋아하는 듯)을 한껏 담았다고 보면 됨. 벌써부터 자가 복제가 시작되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이긴 함.
거기에 책 전반적인 감성이 조금 처연해 보이려고 애썼다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힘을 너무 뺐음. 그런데 또 명대사는 다부진 어투임. 이건 인물과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명의 인물 모두 가장 경계하는 게 자기 연민과 자기 과시로 보이나 실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보임. 이러한 역설적인 묘사가 글 전체에 뿌연 필터가 한 겹 껴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니 문장 간의 균형이 묘하게 어긋나게 됨. 인물의 구성 범위도 (전작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넷 다 엇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그러한 역설 역시 공감의 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그동안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글로 볼 수 있는 경험이 될 거임. 곳곳에 현실감 넘치는 단어들을 배치해 친근감도 높음(장류진이나 이미상이 시대의 ‘유행어’를 쓰며 동시대성을 채운다면, 김화진은 정말 우리의 대화 속에서 흔히 나오는 시대의 ‘단어’를 쓰며 동시대성을 채움).
정리하자면, 잔잔한 파도와 같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음. 쏟아지듯 다가오고 사라지듯 멀어지는 파도. 하지만 돌아보면 그 자리 그대로 있는.
+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2
(2018), (2019)
수필이나 에세이 등도 넓게 보면 문학의 한 갈래이기에, 2부부터는 에세이도 매달 한 권씩 읽어보려고 함(지난달에는 왜 안 읽었냐고 하면 그저 웃지요). 다만 작가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장르인 만큼 분석이나 평가보다는 책 자체를 즐기고 평도 너무 길게 남기지 않을 예정.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후기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첫 타자가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이라고 함)를 앓고 있는 작가의 정신과 상담 기록을 담은 책. 거기에 작가의 일기나 생각 등이 짤막하게 곁들여져 있음. 압도적인 제목과 표지로 오해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마냥 가볍지 않고 굉장히 진솔함. 우울해도 괜찮아...☆ 하는 감성은 더더욱 아님.
작가가 우울한 이유로는, (내외적 기준에 의해)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신에 대한 기준치가 높아(의사의 표현으로는 ‘초자아’가 너무 강함) 발생하는 자기 처벌적 욕구, 남과의 비교, 자기 비하와 자기혐오, 피해 의식과 낮은 자존감, 그로 인한 무력감과 공허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물론 더 근원을 따지면 가족 관계까지 나와야 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들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는 건 실례고, 또 같은 걸 겪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작가가 느꼈던 감정을 토해내면 의사는 관점을 바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작가가 스스로의 생각을 다르게 해석하게끔 유도함. 심리학적 기법이 자세히 나오거나 하지는 않고 정말 ‘상담’에 가까움.
어쩌면 그동안 작가에게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우울을 겪었던 게 아닐까 싶음. 근데 그렇다면 그 ‘제대로’라는 것은 무엇인가. 청자가 화자에 이입하기 위해서는 화자부터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야 함. 그렇다면 말을 바꿔서, 어쩌면 그동안 작가는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우울을 겪었던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봄. 상담뿐 아니라 이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작가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듯함.
책의 구조... (분석 안 한다고 해놓고) 얘기를 하자면, 1권이 너무 갑자기 뚝 끊기는 면이 있음. 말은 2권에서 계속된다고 하지만 2권이 나오기까지 1년 가까이 걸린 걸 보면 굉장히 성의 없는 마무리임. 게다가 1권 끝에 상담 이후 펼쳐지는 일기 퍼레이드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감정 배설을 위한 토막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그것들을 쓰고 책에 담는 것까지가 작가에게 도움이 됐겠지만, 독자를 위해서는 참아야 했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책을 출간한 거면 그에 걸맞은 마무리 글을 썼어야 했다고 생각함.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을 위한 글들이라 읽기 힘들었음. 문장력도 별로라 오죽하면 이 작가가 소설을 쓴다면 그건 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음.
2권에서는 우울의 정도가 훅 깊어졌다가 점차 나아지는데, 정말 놀란 순간도 있었고 진짜 유난이다 싶은 순간도 있었음. 그런데 그 얕은 유난이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여서 내가 다 다행이더라... 실제로 2권 끝에 더 이상 상담에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작가 스스로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싫지 않다’는 말로 마무리됨. 잘 끝나서... 다행이야...
작가가 우울을 완전히 이겨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음. 다만 그러한 우울 자체도 자신의 일부로서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은 듦. ‘내가 좋아’가 아닌 ‘내가 싫지 않아’처럼, 그 어떠한 모습도 자신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보다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음. 좋으나 싫으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여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됨. 어쩌겠어. 그마저 나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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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1
여러분... ‘여러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어째서 아무도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던 거죠...? 본문은 맞춤법 검사기에 두 번 세 번 돌려보면서 정작 제목은 돌려볼 생각을 안 해봤네 아ㅋㅋㅋ
이제 와서 바꾸긴 좀 그러니... 그냥 여러가지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알아주십쇼. 저건 틀린 표기라는 것을... 그리고 저는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을...
여담 2
분명 이보다 더 많이 읽으려 했는데 왜 항상 계획은 어긋나는지... 원래 ‘현남 오빠에게’와 ‘새벽의 방문자들’까지 읽고 김지영과 한데 묶어 평해보려 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하하. 그런 의미에서 2월에는 좀 더 달려보겠습니다.
새해가 밝은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나 2월이네요. 추운 날씨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이것저것 다 읽으시네요. 개인적으로 김지영은 궁금한데 그 책을 읽는 시선 자체가 무서워서 못 읽고 있는 책이었는데. 리뷰를 보니 더 궁금하기도 함 - dc App
죽떡까지 읽으시다니.. 국문학 한권만 추천해줘용
장편: 밝은 밤(최은영) 연작: 피프티 피플(정세랑) 단편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우다영) 추천드립니다.
이미상책 독갤에서 추천받고 읽어봤는데 참 괜찮더라고 괜찮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쫌 부족하다 아쉽다 느꼈는데 니 리뷰가 도움되네 ㄱㅅ
1번은 소재가 마음에 들어서 좀 궁금하긴 하노
왔구나 드디어
독갤이 낳은 작가 김쿠만 언제 읽냐고
진짜 미안한데 궁금증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림... 언젠가 읽기는 할 거니까 기다려주셈
개추
한 글에 네임드가 두권ㄷㄷ
이미상 괜찮지 뭐 베스트는 아니라도 10년 간 이래저래 문단이 뭐라도 한 거의 요약본 같은 느낌이고 나쁘게 말하면 꼴랑 단편집 하나로 퉁칠 정도로 지난 10년은 국문학계의 부끄러움이라 할 법하다는 거
이미상 2023젊작상에서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나쁘지않나보네 읽어봐야겠당 항상 후기글 너무 재미있게 잘써서 부럽다 잘보고있슴다
여러 가지 많이 읽으셨네요
나도 여자가 지하철할때 젤 좋아함ㅋㅋ 평대 이야기 나올때 비명지르면서 읽었다 진짜 매번 재밌게 보고잇음 ㄱㅅㄱㅅ
저 또한 김지영이 언젠가 나왔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마지막 부분의 통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거짓통계를 책에 담았다는 비판이 있어요.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거짓 통계를 썼다는 건 잘 모르겠네요. 없는 자료를 만들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썼다는 건가요?
통계 자체의 데이터 수집 방식에 문제가 있는 통계라 하시는듯 합니다
은근슬쩍 페미적인 독법을 갖고 계시네
은근슬쩍이 아니라 대놓고 같은데
대놓고 그짝 아니노?
김보영은 안읽으시나요….??? - dc App
어떤 걸 추천하시나요? 종의 기원담은 언젠가 읽을 예정이긴 합니다
1. 국문학 찍먹 하다가 이제는 사랑하게 되신 것 같은데 고백하시죠..? 2. 가령 신형철 평론가의 평을 보면 정말 미문이지만 좋은 얘기만 있고 비판은 없어서 아쉬운데, 님은 비판할 지점도 항상 균형잡히게 들어 있어 좋습니다.
올려주시는 리뷰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 제가 느끼던 부분을 명료하고 정돈된 글로 풀어 주셔서 모호하게 느꼈던 감상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커뮤니티에 올라온 리뷰라기엔 글에 통찰력이 있어서 뭐하시는 분인지 너무 궁금한데... 직종정도만이라도 알려주실 순 없나요?
블로그 운영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솔직히 디씨 갤러리에 남기기엔 너무 아까운데... - dc App
곧 오시네요? 선생님의 글이 제가 오늘 독갤에서 발굴한 가장 값진 보람입니다. 사실 오늘 첫 방문이고 이게 첫 댓글입니더 ㅋㅋ 재밌어요 추위 조심하시고 좋은 날 가득하세요
이장욱은 왜 없나요
와 님 글 정주행 중인데 저 82년생 김지영 읽어본적없고 욕하지도않고 그냥 회색분자같은 입장이었는데 님 글로만 보면 플롯 부터(정신과 의사 상담록) 상당히 흥미롭네요.
참 부럽다.. 여자라서 너무 편하게 산다 싶네
김지영 정말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함. 막 심오한 질문을 던지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닌데, 스토리 구성이랑 전개가 자연스러워서 좋은 것 같음. 진짜 실화일 것 같으면서도 다큐식 노잼은 피한느낌.(난 남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