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으로 대학원까지 다녔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입문서'로 그럴듯한 게 거의 없다.

내가 추천을 못하겠다고 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정치학이라는 게 그 시작점을 찾자면 플라톤부터 찾아야 할 것이고 범위도 뒤지게 넓고 자기 나름의 정리를 하기도 굉장히 힘들다.

교수들이라고 별로 다른 상황은 아니다. 여러 책들을 보고 쌓인 지식들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하는 수밖에 없거든.

학문으로서의 정치학 책들은 그래서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 한정된 자기 나름의 견해를 쓴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뭐 하나 나올 때마다 학계에서 물고 늘어지고, 씹고 뜯고 쉴드치고 그러는 게 일이야. 그게 정치학의 발전임.


정치학을 크게 나누면 1) 비교정치, 2) 정치사상, 그리고 3) 국제정치다.

정치학과 혹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면 이 셋을 다 다룸.

물론 정치/외교학과가 나뉘어 있는 경우라면 정치학과에선 1, 2번을, 외교학과에선 3번만을 다룰텐데,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입문을 원하는 자가 이 셋 중 어디부터 대가리를 들이박고 싶으냐에 따라 추천할 책이 또 나뉘게 된다.


좌파네 우파네 개혁이 어쩌고 진보가 어쩌고 보수가 어쩌고 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드립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가장 느리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빠른 게 정치사상을 들이파는 거다.

정치사상은 그나마 접근 루트가 있어. 고대-중세-근대-현대 정치사상가들을 따라가는 거지. 그러다보면 근대 쪽부터 아 이런 소리구나 하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근데 그러고 나면 범인들의 정치드립은 팔할은 다 개소리라는 것도 알게 되고, 어디가서 정치 얘기를 안하게 됨.


비교정치부터는 그야말로 사회'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회과학 방법론부터 무장하고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음. (자연과학의 방법론의 기본서들도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한번씩은 다 밟고 간다.)

물론 과학적 방법론이 아닌 역사적 방법론 등 다른 방법론을 쓰는 학자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고 나서 정치학의 일반적인 논쟁들에 끼어들어가는 건데, 이건 학부 수준에서는 어렵고,

그냥 유명한 사람들 저서를 꼼꼼히 보면서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전개하는구나 하고 견문만 쌓아도 ㅆㅅㅌㅊ 학부생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관계는?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가? 대통령제와 민주주의 발전의 관계는? 왜 중남미는 맨날 저 모양?

이런 질문들이 비교정치 분야에 포함된다.


국제정치는 20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진짜 신흥 학문분야이고, 그래서 학술적으로는 상당히 잘 정리가 되어 있는 편이다.

'사회과학'으로 접근하기에 가장 적절하지.

학파도 비교적 깔끔하게 나뉘어서 치고받고 하는 걸 관전하다보면 나름 내가 어느 학파 쪽에 가까운가보다 하는 감도 오고.



책 추천을 굳이, 진짜 굳이, 한다면 아래와 같다.



정치 사상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기타 등등, 그냥 쭉 보면서 해설서 곁들이거나 수업 들어라 ㅠㅠ


비교정치는 내가 진짜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분야가 너무 넓다. 이를테면 로버트 달, 사르트르, 헌팅턴, 뭐 끝이 없다.

하지만 일단 존 스튜어트 밀, 토머스 쿤부터 시작해서 방법론도 밟고 가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국제정치는 그럴듯한 것들이 좀 있다.

국제분쟁의 이해 (Joseph Nye) - 한국어판 있음. 그 유명한 소프트파워, 스마트파워 드립친 나이 성님의 국제정치 기본서다. 자유주의 입장이라는 걸 기억하고 봐야 함.

세계정치론 (존 베일리스) - 한국어판 있음. 자유주의 입장의 백과사전형 입문서. 어지간한 거 다 들어가 있는데 깊이는 포기해라.

International Politics (Art & Jervis) - 이게 진짜 최고인데 한국어판 있는지 모르겠음. 자기 학파 아닌 것도 제대로 수록함. 안나왔어도 국제정치 하는 놈들은 원서라도 구해 읽어라.

국제정치이론(Kenneth Waltz) - 한국어판 있는 거 확인함. 국제정치학의 시초. 모든 것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다. 국제정치 이론의 전반적 이해를 하려고 읽는 게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