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그늘 라디오
- 허수경
햇살 속 흰 나비는 날개를 펼쳤다
날개의 어진 그늘은 검었나
마주 선 두 사람
마음 물결 사이로 펄럭이는 넝마 두 장
한 장의 넝마는 죽을 만큼 나비를 내쳤다
다른 한 장의 넝마는 내쳐진 나비를 안고 갔다
넝마 같은 세월을 햇빛에 말리며
라디오 속 노래들이 기절한다면
난 무얼 할까
바짝 마른 빨래 없는 계절이 지나가는데
울었던 흔적을 지워줄 내일은 없는데
난 무얼 할까
바람은 꽃술을 안고
아둔하게 허공에서 자부라지는데
저 꽃술에 묻어온 빛의 손을 기어이
주먹으로 만들며 어둠 속으로 활보하는 라디오
안녕하세요, 오늘 전해드릴 곡은 내 우산, 입니다 사연은 이십 년 전 헤어진 연인이 폐암을 앓으면서 쓴 편지네요, 사랑은 이렇게 한 도시를, 물바다로 만듭니다 을숙아, 미안하다, 너 사랑해서
이런 천년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 씨가 언젠가 천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날개 없는 나비들이 이 천년의 연못에 아주 붉은 그림자를 던질 즈음,
목포산 주꾸미 ,고추장 양념을 넣고요 한 숨 끓어오르면 돌미나리를 넣고 향이 달아나지 않게 잽싸게 볶으세요, 아침의 셰프인 태양이 보내온 레시피입니다
서울 25도, 북풍이 분다고 일기예보는 말하네요 북방한계선에는 아무 일 없습니다 아이들은 북이나 남이나 죽어갑니다 내일은 오늘처럼 불명확한 바람이 부니 주의하세요!
빛을 돼지 떼처럼 몰면서
해는 천천히 어떤 날로 가는구나
펄럭이는 넝마 두 장은
누런 배로 접혀서
푸름이 기도하는 밤으로 가네
이별 없이
나비그늘마저 없이
정오의 희망곡
- 이장욱
우리는 우호적이다.
분별이 없었다.
누구나 종말을 향해 나아갔다.
당신은 사랑을 잃고
나는 줄넘기를 했다.
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
넘실거리는 음악,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우리는 언제나
정기적으로 흘러갔다.
누군가 지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냉소적인 자들은 세상을 움직였다.
거리에는 키스 신이 그려진
극장 간판이 걸려 있고
가을은 순조롭게 깊어갔다.
나는 사랑을 잃고
당신은 줄넘기를 하고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냉소적인 자들을 위해 우리는
최후까지
정오의 허공을 날아다녔다.
라디오랑 겹쳐지는 시 특유의 속살거림이라 해야해나
그게 참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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