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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
마게도냐에 들러 제자들을 격려하던 사도바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에베소 지방에서 온 교회의 장로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행20:22~25)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바울로 인해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헬라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모함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배반했으며 유대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자'라는 모함이었습니다. 소동에 대한 소식이 군대 천부장에까지 전해졌기에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군중에게 구타 당하던 바울을 보고 일단 바울을 잡아서 결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여러 소리로 떠드는 백성들로 인해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 심문합니다.
심문하던 중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알게 된 천부장은 그의 결박을 풀도록 명령하고,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기 위해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그들 앞에 바울을 데려갑니다. 유대인들과 바울 사이에 큰 분쟁이 벌어지자 천부장은 다시 바울을 보호하여 영내로 들어 갔습니다. 유대인 사십여명이 무리를 지어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했는데 이를 알게 된 바울의 친척이 천부장에게 소식을 전하였고 천부장은 바울을 보호할 군인들을 세워 가이사랴까지 호송합니다.
가이사랴에 바울이 도착한지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고발합니다. 지중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하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죄목이었습니다. 재판은 차일피일 미루어지며 2년이 흘렀고 총독은 베스도로 바뀌었습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이 대답합니다.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이렇게 되어 바울과 다른 죄수들 몇명은 백부장 율리오의 지휘하에 배에 태워 이탈리아로의 호송이 결정되었습니다. 항해도중 큰 광풍 유라굴로를 만난 일행은 난파되어 멜리데라는 섬에 내렸고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 로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로마시민인 바울에게는 지키는 군인 한 명과 함께 따로 지내는 것이 허락되어 2년여간 셋집에 머물면서 그곳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로마서-
로마서의 주된 내용은 죄와 인간, 성령의 관계에 대한 교리입니다. 마음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봤던 분들이 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이런 것인가?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어찌 이렇게도 끔찍한 죄악이 만연한 것일까?" 로마서에는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처음 창조된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이후, 이 세상에는 죄가 들어왔고 범죄에 대한 판결은 '죽음'이었습니다. 인간은 물론 모든 피조물의 결말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창세기 3장).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싶어합니다. (롬1:28) 그리고 처음 창조된 목적에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는 불의,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타인에 대한 수군거림, 비방, 능욕, 교만, 자랑, 부모에 대한 거역, 우매, 무정, 무자비 등입니다. (롬1:29,30)
인간이 타인에 대해 수군거리고 비방하는 행위, 마음속에 자랑을 품는 것, 교만, 무정하고 무자비한 성격까지도 죄에 대한 결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위적으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러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그것은 그사람 안에 '죄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죄성을 갖고 태어나며 이것은 아담이 저지른 불순종의 원죄로 인함입니다. 원죄라 함은 연좌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유전적 질병'과 비슷합니다. 모든 인간은 목격자가 없고 자신의 신분만 노출되지 않는다면 죄를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 의하면 우상숭배(재물 포함), 불효, 간음(결혼없는 성행위), 거짓말, 탐욕도 엄연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왜 세상은 이러한 것일까?'
위의 질문에 대하여.. 성경적인 답변은 이러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왔고 그리하여 인간은 서로에게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죄성(죄를 지으려는 성향)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데 마음 속의 것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면 비로소 공개적으로 '죄'라 불리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의 간음죄는 행동으로 발생한 결과를 중시하나.. 성경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증언합니다. (마태5:28).
때로는 다른 이와 자신을 비교하며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착하다"라고 생각할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아는데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이 범죄이고, 이스라엘 민족 외에 율법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들이 범죄한 자임을 드러냅니다. 이들에게는 양심이 곧 마음에 새겨진 율법으로 작용합니다.(롬2:12~15) 자신은 율법을 안다고 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는 이들은 조심하십시오.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며 탐욕을 품는 이들은 조심하십시오. 간음하지 말라고 하며 마음으로 간음하는 이들은 조심하십시오. 율법을 안다고 자랑하는 이들은 스스로 율법을 범하지 않았는지 점검하십시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닙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합니다. 사람에게서 칭찬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롬2:21~29)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0~1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없으며 율법을 통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롬3:2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가 분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속죄 제물인 예수께서 대신 죄를 짊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여기심을 전하려 하셨습니다. 이 예수는 그의 흘리신 피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화목제물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과 '원죄 아래에 있는 인간(죄인)'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한 제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통해 예수님을 화목제물 삼아 그의 피로 인간의 죄를 씻으려 하심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태내시기 위함이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칭하시기 위함입니다. (롬3:23~26)
죄 사함은 예수께서 속죄양의 역할을 담당하시고 그 피로 인해 죄 씻음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때에는 아직 우리가 죄인인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것이었으며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합니다. 죄를 지었던 최초의 한 사람(아담)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의 결과로 인해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운명에 놓였던 것입니다. (롬5:6~12)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그런즉 '한 범죄(아담의 불순종)'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예수님의 십자가 대속)'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롬5:17,18)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성경이 탐심을 죄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도 행위만 죄라고 인식했을 것입니다. 성경이 마음으로 범하는 것 또한 죄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실질적인 행동만이 죄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삶속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이후 도리어 내 안에서 활동하는 죄성을 보게 되어 죽을 듯 괴롭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선함을 알게 되었음에도.. 나는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나의 육체 안에는 선한 것이 없는 건가요? 선을 원함에도 왜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것인가요?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속사람(요한복음 3장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때때로 육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는 광경을 봅니다.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구해주십시오. (롬7:7~24)
예수 믿는 이들은 힘을 내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4장)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기독교인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의 영을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게 하십니다. (롬8:1~10)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롬8:14~16) 성령께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할지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인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롬8:26~2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올리겠습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설리 앗살람 살레이쿰 - dc App
왜 념글 못갔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