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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최후의 작업
<만년양식집>을 읽다보면 자대 가서 이틀정도 지나 선임들 군번 외우고 있는데 뭣도 모르는 상태로 훈련 나가는 상황이 떠오른다.
ㄹㅇ 어쩔 수 없이 참여는 하는데 말 그대로 뭣도 몰라서 개상노무 선임들한테 욕 개처먹는 느낌?
물론 그 덕에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기란 대단한 스킬을 습득하긴 했지만 아무튼 썩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은 아니다.
그때 그 추억을 바라는 변태들은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생각해보니 작가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국내절판)의 주요인물인 ‘기’형과 <체인지링>(국내절판)에 등장하는 처남 하나와 고로(‘하나’와 ‘고로’인줄 알았는데 문맥상 하나의 인물로 보인다.)가 주요인물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들은 당최 누구란 말이오?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난 그 이야기를 들어줄 정도로 그들을 향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
오에 겐자부로의 중기 이후 소설들은 소설가 조코 코키토란 인물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선 분명 흥미로운 점이 있지만
다시 말하면 그의 세계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인 체험>,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가 직접 선정한 단편선, 대담집 등을 읽고 나 정도면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좀 아는게 아닐까 하는 자만이 있었지만
이 책을 보곤 으악 이건 찐고인물들만 누릴 수 있는 파티로구나 소외감이 들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GTX노선 연장하듯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넓혀왔지만 우린 GTX 신설될 역 근처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진작 절판된 그의 작품을 웃돈주고 구매할 재력도 없거니와 30년 된 책을 비싸게 팔아먹는 되팔이들이 꼴보기 싫어서라도 볼 수 없기에 나는 하나의 부조리에 갇혀있는 셈이다.
그렇게 난 왕따 피해자가 된다.
뭐 그런 단점이 있음에도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순 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대가는 대가란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도 만년엔 이런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따라서 너는 이해할 것이다, 미래의 문이 닫히자마자 우리의 지식은 전부 죽은 지식이 되리라는 사실을.
조코 코키토는 원전 방사능물질 유출로 미래가 닫힌 절박한 상황에 좌절한다.
미래를 향한 절망에 더해 주변인물들은 그의 역사를 부정하려드는 듯 비판한다.
주변인물들이 조코 코키토의 기존 작품, 설정, 상황 등 비판을 거듭할수록 작가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품어온 의문의 정체가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벗겨져나가고 '그'만 덩그러니 남는다.
주변인물들은 오에가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 위해 내세운 일종의 분신으로써 작품 전반적으로 소설, 에세이, 대담이란 형식을 빌어 철저한 자기비판을 수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비판은 그의 상처를 한 번 더 찢어발긴다.
단순한 작품 설정, 상황적 오류를 넘어 도덕적인 문제 즉 실제 대상을 가공해서 웃음거리나 가쉽소재로 삼은 것은 아닌지,
주변인물들의 죽음을 덤덤히 다루고 있지만 정말 죽음에 대한 책임이 정녕 너에겐 없는거냐고.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고 결국 이 모든 상처는 스스로 아물게 해야 한다.
결국 모든 일들의 근원인 고향 시코쿠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조코 코키토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세계대전 패전 이후 교장의 우린 더 이상 살 수 없단 선언 아래 절망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어머니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몇십년 동안 어머니가 한 말의 의미를 고민하지만 우린 히카리를 보고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해볼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중 <개인적인 체험>에서 고뇌의 결과로 태어난 게 히카리라면, <공중 괴물 아구이>에선 고뇌의 결과로 죽은 게 아구이다.
아구이는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히카리가 방사능물질에 아구이가 피폭당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어쩌면 그들은 하나의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산 히카리와 죽은 아구이는 산 아구이자 죽은 히카리고, 그들은 공존한다. 아니 공존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줄로만 알았던 히카리는 스스로 연민을 느끼며 아구이를 돕기 위해 시코쿠 마을에 전승되는 숲의 노래를 계승하고자 하며 안전한 숲으로 아구이를 불러들이기 위해 창작욕을 불태우는 살아있는 독립된 존재다.
작가는 일평생 무언가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서 전통과 사회를 거부해왔다.
하지만, 만년에 그는 이런 모든 시도들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상상력 따위가 다 무엇이며, 그 시도로 얻은 것은 도대체 무어냐고..
그럼에도 그것을 관두진 않는다.
원전 사고 후 원전을 재가동시키는 정부의 압제에 대해 국민으로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모욕감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노년의 지식인 이면에는 타인들에게, 특히 자녀들에게 저질러온 일종의 폭력과 불의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양면적인 모습이 공존한다.
자신의 고통과 내면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의 정제를 통해 태어난 소설 속 아들 히카리와 딸 마키는 작가에 의해 왜곡되어 버렸지만 그들은 결코 종물이 아니며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아버지의 압제란 폭력에 저항한다.
그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작가가 일평생 수행해온 작업과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
자립하는 자녀들을 보며, 자기가 그래왔듯 모든 사람의 공존을 꿈꾸며 불의에 저항하는 그의 희망은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다.
후손들에게서 자연스레 우러나온 희망은 솟구쳐 그들에게 삶을 지탱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그 희망은 대를 이어 이어질 것이기에 나는 죽더라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작가는 죽는다하더라도 그의 정신만은 후손들에게서 계속 살아있으니 말이다.
그의 시도는 헛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비록 죽고 이 세상에 없지만 인간들의 공존을 위해 자기 자신과도 타협하지 않는 그의 저항정신은 문득 새삼 대단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오욕의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는 사람에겐 무조건 추천하긴 어려운 책이며,
오히려 질문과 답변이 명확한 대담집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를 추천하고 싶기도 하지만
위험과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직접 찾길 바라는 사람과 오에 겐자부로의 최후의 작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추천해봄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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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관심이 있어도 절판으로 접근성이 뚝 떨어지니 그야말로 통탄할 상황..
이재명 닮았네
전집 읽을랬는데 절판 우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