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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처음 읽어본 도스토옙스키 작품.

처음에 마르멜라노프가 술을 거하게 마시고 자신의 가족 사정과 더불어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는데,

왜 죄와 벌이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마시는 겁니다. 고통을 배가시키려고 마시는 겁니다.”


노파와 여동생 살해 장면을 읽어내릴 때는 정말로 쓰러질 것만 같은 불안과 심장 고동을 느꼈다. 미친 몰입감을 부르는 필력이었다.

상황은 이상하리만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흘러갔다.

그 점이 오히려 라스꼴리니꼬프의 숨겨진 죄책감을 자극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를 벌하려는 듯 옥죄어 오는 감각이 정말 생생했다.

주인공의 내면 묘사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으면서도 현기증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죄인은 주변에 은근슬쩍 자신의 죄를 암시하는가 하면,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다시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며 평온을 찾으려 한다.

여기서 주인공의 논문 내용을 통해 그의 사상이 드러나는데,

세상에는 평범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이 존재하고,

후자의 경우 더 큰 위대한 목적을 위해 범죄를 저지를 권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노파를 살해한 것은 본인이 비범한 쪽(인간이자 나폴레옹)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괴로워했고, 자살을 고민하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할 때에는 더욱 고통받았다.

스스로는 부정했을지 몰라도 이는 그가 범인(凡人)이라는 반증이다.

6장의 마지막, 자백하는 장면에서는 비로소 해방감, 편안함,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마르멜라노프의 추모연에서는 카테리나 가족의 몰락이 나온다.

이미 찢어질 듯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형편에 맞지 않게 돈을 들여 추모연을 열고,

과거에는 귀족의 딸이었다는 자존심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짠했다.

결국 그 자존심이 트리거가 되어 완전히 몰락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라스꼴리니꼬프에게도 그 자존심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자신의 논문에 담겨있던 생각들, 그 이론에 대해서는 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은 비범한 존재가 아니었고, 범인의 길(자수)을 선택한 것이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부정하는 기분이 들었던 게 아닐까?

코드기어스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총을 쏠 수 있는 자는, 총에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뿐이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는 총을 쐈지만, 총에 맞을 각오(자살)는 가지지 못했다.

반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죄를 쌓아왔던 인물이지만 라스꼴리니꼬프와 다르게 자살한다.

그렇다고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세계 안에서는 그의 범죄가 “위대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라스꼴리니꼬프에게는 소냐가 있었다.

그리고 소냐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저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론이나 자존심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이후에는 점차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나온다.

긴 이야기 속에 다양한 비애와 고통이 있었고,

아직 7년이라는 옥살이가 남아있지만, 다 읽은 뒤에는 어떤 안도감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순수 재미력, 흡입력이 엄청났다.그냥 ㅅㅂ 개꿀잼이었다.


다음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봐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