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통일성의 향수, 이 절대의 갈망은 인간이 겪는 내면적 드라마의 본질적인 움직임이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이 향수가 하나의 사실이라고 해서그것이 당장에 만족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욕구와 그 정복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뛰어넘어 파르메니데스8)처럼 유일자(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의실재를 단정한다면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정신적 모순에 빠지고 만다. 완전한 통일성을 단언하는 동시에 그 단언에 의해서, 스스로 해소시킨다고 자처한 자신의 차이와 다양성을 오히려 입증하게되니 말이다. 이 또 하나의 악순환은 우리가 품는 희망의 숨통을 조이기에 충분하다.
"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디. 카쌤 계신가요?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일자와 다자는 동양의 문화에서는 잘 이해가 안됨 - dc App
어디서 설명해줘야할지 막막하노.. - dc App
ㅠㅠ 완전한 통일성을 단언하는 동시에 그 단언에 의해서, 스스로 해소시킨다고 자처한 자신의 차이와 다양성을 오히려 입증하게되니 말이다. 이 부분이 제일 이해안가는데 이거라도 ㅠㅠ
과학적인 시점을 다 빼고 고대 그리스인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해보자. 해바라기가 있다. 해바라기는 씨가 발아하고 생장하는 과정을 거쳐서 해바라기가 된다. 이때 상정하는게 ‘유일자’임 해바라기가 해바라기가 되게끔 하는 무언가 따라서 우리가 해바라기가 생장하는걸 보고 느끼는 건 ‘유일자’의 부분, 부분일 뿐인 해바라기고 ‘진짜 해바라기’, ‘해바라기가 되게끔 하는 무언가‘가 우리가 쫓는거임 - dc App
여기서 해바라기를 인간으로 바꾸면 이해가 조금 되겠노? - dc App
사람들이 세속적이고, 더이상 신을 믿지 않고.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단언했을때 우리는.. 해바라기로 치면 ‘해바라기가 되게끔 하는 무언가’. 즉 목적을 잃어버린거임. - dc App
인간을 인간으로써 존재할수 있게 만드는 무언가 라고같은 느낌이네요잉
근데 실존주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목적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거지.. - dc App
ㄴ 님이 올린 게 이 결론으로 나아가는 부분이라고 보면 됨. 있지도 않은 통일성을 꾸며내 향수를 즉각적으로 해소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차라리 그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따라서 모순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카뮈 모르는 사람인데 걍 독해를 해보자면 우리는 통일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절대로 통일될 수 없는 한계를 가져서 그것을 절대의 추구라고 말한 거 같습니다. 즉 절대적 존재의 실재만이 통일성을 확보가능하다는 거지만 우리는 절대적 존재가 존재하기를 염원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그러한 욕망을 어떠한 과정없이 충족시키기 위해 쉽사리 절대적인 무언가를 단정한다면
그 단정 자체가 자기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는 뜻 같습니다. 단정함이 곧 불완전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단정함 자체가 블완전한 존재가 가지는 속성이기 때문 아닐까요? 실재적인 존재가 있다 없다를 규명하려고 애쓰는 태도야말로 우리들의 모자람이 드러난다는 거겠죠. 파르메니데스처럼 단정짓지 말고 자신의 갈망을 인정하되 그 갈망을 충
족시켜줄 존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연에서 있어야 한다는 뜻 같습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쓰는 게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거 오히려 충족시킨 척 보이게 한다는 점을 지적이 아닐까요.
결국 절대적임을 규정하려는 행위자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모순을 말하는거라 이말이네요
카뮈가 왜 그런건지는 설명을 안해놨지만 문맥상 그럴 가리고 생각합니다. 왜인지에 대해서는 독자가 생각을 해볼 문제겠죠.
혹시 족시가 무슨 뜻인가요?
갈망을 충/족시켜줄 존재나 가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부분이라면 걍 글자수제한으러 짤려서 다음 댓글에 붙여넣었습니다.
아하 ㄳㄳ
인간의 자아는 바뀌기도 하고 변덕스럽기도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단일한 틀 안에 규명하기 어려움. 하지만 인간은 "나"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한다 믿고 싶어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의 통일성을 갈망함. 하지만 만약 통일된 자신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 '통일된 자신'은 '통일되지 않은 자신'인 스스로의 과거와 섞이지 못하므로 모순이 생긴다 할 수 있음.
그리고 이런 본질적인 모순이 "숨통을 조이는" 것이고
통일된 나 자신도 결국 과거의 불안정한 자신이 있기때문에 불안정성이 있다고 할수 있다는 내용이라 이해했습니다
위에랑 섞어서 읽으면 좋을 듯. 단순하게 쓴다고 좀 생략하긴 했는데, 결국 카뮈가 하려는 말은 통일성을 향한 향수가 있어도, 파르메니데스처럼 과정을 건너뛰고 완전한 통일성을 가장하고, 그것을 확신하는 건 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부질없다는 말임
가장이 아니라 가정
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