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뉴스펌, 「"침체 아닙니다" 외쳐보지만...美 경제에 바이든 '난감」.



 2015년. 미국. 바다 건너 소식을 접한 미국 국민들은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우리 군대가 치안 유지하러 외국에 나갔는데, 우리나라 군인이 성폭행을 당하던 현지인 남자아이를 구해줬고, 그 군인은 성폭행 당한 아이를 구해줬기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고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정상이다. 그만큼 황당했던 일이니.




 2001년 9월 11일. 여객기가 미국의 거대한 두 마천루를 무너뜨렸다. 3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뉴욕 중심가는 전쟁터처럼 변해버렸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KBS, 개그콘서트 「달인(2007)」 中.




 범인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알 카에다를 보호해주고 도와주던 이들은 탈레반을 비롯한 아프간 군벌들. 




 미국은 즉시 아프간에 군대를 파견했고, 빈 라덴을 돕는 자들을 모두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수 많은 미국 군인들이 조국의 복수와 평화를 위해 아프간으로 떠났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BBC, 「아프가니스탄: 20년간의 아프간 전쟁이 남긴 것」.




 낯선 언어, 매서운 기후, 고달픈 작전과 근무. 




 군인들은 수 많은 난관 속에서도 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명령받았다.  




 복수가 목적이긴 하지만, 이왕 나라를 뒤엎게 된 김에 정상적인 정부가 아프간의 지배권을 갖게 하자는 게 미국의 생각이었다. 그야 미치광이보다는 정상적인 정부가 미국에게도 좋은 건 당연했으니까. 그리고 그 정부는 세속적인 민주주의 정부로 세우고. 자신들이 누리는 것 중 가장 우수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 체제이니 아프간 주민들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주민들의 자잘한 일도 도와주곤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프간의 통치권을 받을 인간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 쿤두즈. 




 주민 중 하나가 미군을 찾아오게 된다. 




 그 주민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 자신의 12살 나이의 아들이 2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경찰서에 붙들려 있으니 제발 좀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 사건의 당사자인 찰스 마틀랜드 중사(Sgt. 1st Class Charles Martland)의 사진. 출처: USAToday, https://www.usatoday.com/story/news/nation-now/2015/10/07/army-green-beret-afghan-beating/73538778/.


 



 동료와 함께 출동한 찰스 마틀랜드(Charles Martland) 중사와 댄 퀸(Dan Quinn) 대위는 아프간 지역 경찰서장 압둘 라만(Abdul Rahman)에게 그 모든 일이 사실이느냐 물었고, 라만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마틀랜드 중사는 라만을 흠씬 두들겨패고는 아이를 구출해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구한 두 군인은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퀸 대위는 지휘권 박탈. 마틀랜드 중사는 강제전역. 임무 밖의 일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이 아프간에서 행한 작전에서 중요한 건 새 정권이 미국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런 충돌이 있을 수록 당연히 그 관계가 나빠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근데 솔직히 그걸 알아도 좀 황당하긴 하다.




 결국 마틀랜드 중사는 복무기간이 끝나는 2015년에 맞춰 항소를 했고, 그렇게 마틀랜드 중사의 영웅적인 행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곧 그의 이름을 딴 마틀랜드 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마틀랜드 법. 미국 군대는 외국 전쟁터에서도 범죄를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TOLONews, https://tolonews.com/afghanistan/aihrc-turns-toward-stemming-bacha-bazi.




슬픈 소년들, 바차 바지




 감자 줄기를 뽑으면 여러 덩이가 같이 딸려나오는 것처럼, 마틀랜드 중사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자 함께 여러 사례가 같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비슷한 사례도 꽤 있었는데, 희한한 건 남자아이에 대한 성범죄가 아프간에서 꽤나 빈번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남자아이들이 성범죄에 유달리 많이 노출되었을까? 




 그 해답은 문화에 있었다. 바로 바차 바지(Bacha Bazi)라는 풍습이었다.




 바차 바지. 페르시아어 놀이와 소년의 합성어로, 바차 바지는 남자 아이가 여성처럼 아름답게 꾸미고 춤을 추며 노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며 즐기는 행위와 그런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물론, 여기서 안 끝나니까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고. 바차 바지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 구경에서 끝나지 않고, 연인처럼 데리고 다니거나,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마치 첩처럼 데리고 다니며, 나름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신들은 절대 동성애자도 아니라고 항변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기괴하지만, 그래도 바차 바지는 천 년이 넘은 전통이기도 해서 마냥 비판하기만은 어려울…… 수도 있다. 아마도.




 유래 자체는 오래된 것으로, 옛 페르시아에서는 각 성별이, 각 연령대별로 그 나름의 미를 갖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물론 남자아이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미동(美童)의 미를 극대화하여 그것을 감상하는 전통, 샤히드 바지(Shahid Bazi)가 있었다. 그런 소년을 암라드라고 하여, 수염이 나지 않은 어린 남성은 남성을 유혹해 깊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암라드는 여성에 가깝게 간주되었기에, 동성애와는 별개로 취급되었다고도 한다. 현대에 바차 바지를 즐기는 이들이 말하지 않긴 하지만, 아마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페르시아의 선진문물이 아프간에도 넘어갔고, 그렇게 바차 바지가 탄생하게 된다.




 유래는 유래고. 어쨌든 이건 좀……. 그래서 탈레반은 바차 바지를 그냥 동성애에 불과하다며 없애려고는 하나, 잘 없어지지 않는다. 이 전통은 아프간 남성들에게 꽤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프간 남성들의 여성 공포증을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아니, 여성 공포증이 여기서 왜 나오는가? 여성 공포증이 남자아이를 찾게 만들었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경향신문,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아프간 여성들…“무너지고 있다”」.


 




이슬람 남성들의 여성 공포증




 미 해군참모대학(Naval War College)의 하야트 알비 박사는 아프간 남성들의 여성 공포에 대해 분석했다. 아프간의 금욕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아프간 남성 상당수를 여성 공포증 환자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아프간 여성들은 물을 길으러 가는 등 집안일을 위해서만 밖에 나갈 수 있으며, 나가더라도 몸이 노출되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다닌다. 거기에 밖에서나 안에서나 목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못한다. 그래서 바깥에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남성들 뿐이다.




 이렇게 보면 남성들이 굉장히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성과 관련된 것은 모두가 금기일 뿐더러, 또래 여자아이를 만날 기회가 없다. 아프간 남성들이 여성을 직접 보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집에서 가족들을 보거나, 결혼할 때 신부를 맞이할 때. 그런데 결혼한 신부도 가족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딱 하나.




 그래도 집에서 어머니와 같은 여성 식구들을 보기라도 한 사람은 그나마 괜찮지만, 문제는 고아들.




 오랜 전쟁으로 국토와 각종 인프라가 황폐화됐고, 정부조차도 돈이 없어 거두어 주지 못하는 이런 고아들은 자연스레 종교인들이 거두게 됐다. 아프간의 종교시설은 사실상 이슬람교의 시설이 대부분이므로 그냥 이슬람교에서 거둔다고 보면 편하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France24, 「Banned from school, Afghan girls turn to madrassas」.




 이렇게 거두어진 아이들은 학교 겸 사원 겸 기숙사를 겸하는 시설 마드라사에서 지내게 되는데, 여기의 아이들은 당연히 엄격한 계율에 따라 지내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무조건 분리되며, 남자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꾸르안을 암송하고 이맘들의 말을 배우게 되는데, 교육자들의 금욕적인 방침도 그렇고. 여성에 대해 가르쳐주는 게 여성에 대한 경계심, 공포가 대부분. 




 그렇게 여성과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이 10대와 20대를 보내게 되고, 그동안 여성에 대해 아는 거라곤 무서운 것 밖에 없다. 이러니 마드라사에서 자란 고아들의 인식 속에선, 여성은 무서운 무언가이다.




 그런데 이 금욕적인 교육은 다른 문제를 낳았다. 마드라사 출신의 남자들도 전통에 따라 결혼을 해야 비로소 남자로, 어른으로 인정받는 것이니 하긴 해야겠는데, 막상 결혼해야 하는 여성들은 무섭고 사악한 존재일 뿐이다. 결혼 상대가 매력적이지 않으니, 결혼을 주저하는 것이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애플TV,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웹페이지.




 이런 경우엔 미국 같은 나라라면 으레 영화에서 그러는 것처럼, 여자를 겁내는 청년을 여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놓으면 될 일이겠지만, 그 당시 아프간에선 그게 안 됐으니.




 결국 전통에서 그 답을 찾았다. 여자를 보여줄 수 없다면, 여성 비스무리한 거라도 보여주면서 적응을 시키는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봉책이 늘 그렇듯,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청년들이 아름답게 꾸민 소년들을 사랑하게 되고 만 것이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월간중앙, 「[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2)] 아시아 유곽문화의 원조 요시와라를 찾아서」.


 


강한 억압……, 왜곡된 성욕……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아프간 바차 바지 문화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남자아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문화가 천 년이 넘게 존재했다.


 -바차 바지의 원조인 페르시아에서부터, 남자아이는 여성에 가까운, 남자가 아닌 무언가로 취급되었다.


 -금욕적인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아프간 사회에선 여성과 교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거기에 이슬람 교육자들은 여성을 매우 악하고 무서운 것이라 가르친다.


 -때문에 그런 무서운 여자들이랑 결혼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남자들은 여성에 대한 공포가 나이를 먹을 수록 강해졌다.


 -이슬람권이니 동성애도 당연히 안 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남자아이는 남자가 아닌 무언가로 취급되는 분위기.


 -자신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기도 전에 이미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 억압을 거친 끝에 사람이 망가진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역사인가.




 먼 나라 이야기라 이번 주제에 적용하기 좀 애매할 수도 있는데, 사실, 가까운 나라의 경우도 있다.




 일본의 와카슈(若衆). 국내에선 와카슈도(若衆道)로 유명한 문화. 바차 바지와 마찬가지로, 남자아이들과 교제를 하는 문화이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방문해 전해듣고 놀란 일화로 유명한데, 이 와카슈도도 사찰의 승려들이 즐기기 시작한 게 유래라고 알려져 있다. 사찰의 승려들도 마찬가지로 여성들과의 접촉이 드문 데다, 금욕적인 계율이 강하다. 아프간의 바차 바지와 놀랍도록 유사한 환경이다. 




 사실, 일본의 저 미동 찬미 문화가 오토코노코 장르에 영향을 줬다는 말도 있다. 하기야, 저런 역사를 볼 때, 그걸 부정하기는 힘들어보인다.


 














아직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




 여기까지 설명했지만,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한국과 일본 등의 나라는 여성과의 접촉이 드문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설령 없다 하더라도 모사품이 많다. 그냥 매력적인 여성을 묘사해놓은, 초정상 자극을 주는 모사품들을 보면 될 것이다. 굳이 오토코노코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데 대체 왜? 그 소비자들이 여성 공포증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게 정말 편리하겠지만, 글쎄?




 그렇다기엔 뭔가,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어쩌면 남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떻게?




 예로부터 외국에 가야 자신의 나라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존재를 인지할 수 없고, 관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때는 바로 차이를 인지할 때이다. 




 남성이 아무리 남성을 관찰해 봐야 보이지 않을 테니 여성이 봐야 제대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을 마주하면 태도부터가 달라지니 제대로 된 관찰이 안 된다.




 그렇다면 여자를 남자로 변장시켜서 남자 그룹에 섞이게 하면 어떨까? 소프트웨어는 여자니까 당연히 섞이기만 한다면 차이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냥 사고실험 같은 이야기이지만, 놀랍게도 이미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글에서 없을 것 같이 말하는 건 항상 있다. 어쨌든.




 뉴욕의 저널리스트가 직접 오랜 준비를 거친 끝에 남자로 완벽히 위장해, 남자들의 세계를 취재한 책이 있다.




  


-다음편-   


 


 


참고자료


-위키백과, 「Bacha Bazi」.


-미국 의회, 「H.R.4717 - MARTLAND Act」, https://www.congress.gov/bill/114th-congress/house-bill/4717/text.


-크리스틴 하우저, 뉴욕타임스, 「Green Beret Who Beat Up Afghan Officer for Raping Boy Can Stay in Army」, 2016-04-30, https://www.nytimes.com/2016/04/30/us/green-beret-who-beat-up-afghan-officer-for-raping-boy-can-stay-in-army.html.


-위키백과, 「Wakashū」.


-위키백과, 「Homosexuality in Japan」.


-멜리사 프로스트, 「Bacha, the odious affix: The origins and consequences of bacha bazi」, 2016.


-하야트 알비, 「Islamists’ Fear of Females: The Roots of Gynophobic Misogyny among the Taliban and Islamic State」,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