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SBS연예뉴스, 「'남사용', 이시영의 컨트롤 포스터 공개 '기대 UP'」.

 


 남자들은 어떤 존재일까?


 정말로 남자로 살아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뉴욕 타임즈의 기고가이자 작가인 노라 빈센트는 한 번 남자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준비와 노력 끝에 남자 세계에 잠입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 기록을 엮은 책이 바로 『548일 남장 체험(2007)』. 


 저자가 굳이 남장까지 해가며 남자들의 세계를 알고 싶어했던 이유는,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남성들이 누리는 특권을 직접 체험하며 고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뭐, 계획이야 그런데, 정말 될까. 저자 본인도 미친 생각이라고 생각했고, 독자인 나조차도 읽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런 장애 없이 잠입에 성공했다.

   





남성 속으로의 잠입


 노라 빈센트는 갖은 노력으로 남자로 완벽히 위장했다. 여성 저널리스트 노라 빈센트에서 사무직 남성 네드 빈센트로. 


 178cm의 키에, 엉덩이도 작고, 가슴도 작고, 성격은 남자애들처럼 드세고. 여성으로서의 컴플렉스가 남성으로 위장한 상황에서 모두 장점으로 변했다.


 단백질 쉐이크를 퍼먹으며 운동하고, 아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남성으로 위장하는 화장도 배우고, 가짜 성기도 달고,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남자 목소리를 내는 법과 말투까지 모두 배웠다. 완벽하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취재에 돌입하기 전에 시험 삼아 술집에서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며 친구가 되었다. 의외로 딱히 자신의 성별에 대해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런 위장도 처음이고 하니 확신이 들지 않는다. 눈앞의 친구가 그냥 얄팍한 위장을 넘어가준 건지 아닌 지를 모르니.


 그래서 친구를 따로 불러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네드 빈센트의 말에 그 친구는 무슨 이상한 농담 취급을 했지만, 결국 '노라 빈센트' 명의로 된 모든 신분증을 보여주고, 자신의 취재기획까지 모두 설명한 이후에야 진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니까 다들 빈센트를 정말 남자로 여긴 것이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렇게 변장 검증을 마친 후, 빈센트는 본격적으로 남자 탐구를 시작한다. 이 이후로는 그냥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일종의 첩보소설을 읽는 느낌도 든다. 


 레즈비언인 저자가 남자가 된 김에 연애를 하면서 여자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나,  이 글의 주제는 그게 아니잖은가.


 이 책의 먼지를 털어낸 이유는 남성의 성욕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SBS, 「쉿, 비밀이야」 웹페이지.



남자가 가장 감추고 싶은 비밀


 당연히 빈센트도 그러한 기대가 있을 걸 알았다. 원래 본인도 궁금해했고. 남자들과 위화감 없이 섞일 수 있다는 걸 안 이후엔 거리낄 게 없어졌다. 본격적으로 남자의 성생활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아무 정보 없이 그냥 탐색하면 헤멜 뿐이니 전문가의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빈센트는 스트립 클럽의 단골을 소개받아 함께 성의 세계로 떠나게 된다.


 스트립 클럽. 이름과 달리 옷만 벗는 곳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밖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하나가 충격을 주었다.


 빈센트는 그 스트립 단골을 만났을 때부터 적잖이 놀랐는데, 아내와 아이가 있는 건실한 가정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아버지도 굳이 왜 이런 곳을 들락거릴까.

 이 지면에 적기엔 너무 많은 양의 취재 끝에 얻어낸 결론은 생각 외의 것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성욕을 매우 부끄러워 한다.'


 어느 정도로 부끄러워 하느냐면, 다른 사람도 아닌 배우자에게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부부의 시작이 시작이다 보니 상당히 의외지만, 남자는 정말 배우자를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기 때문에 부끄러워 하는 것이었다. 자주 보는 사람에게, 친밀한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특히 여성의 몸을 탐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성욕을 매우 부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배우자와의 관계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걸 정말 큰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그러한 관계가 남자의 내밀한 마음 속에선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차마 때릴 순 없다. 성이 곧 폭력인 도식 속에선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욕은 꽤 큰 욕구로 남아있다. 그냥 참았을 뿐이니까. 그래서 1회성의 만남으로 성욕을 풀 수 있는 존재를 원했다. 이 경우엔 스트리퍼들이었다. 서로 한 번만 보고 마는 사이고, 자신의 일상 영역에 들어오지도,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는 존재들. 그러면서도 성욕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존재들. 그런 회색지대를 원했기에 탄생한 것이 그러한 밤문화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 설명에서 이미 이 글의 말미에 적힐 내용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 추측이 맞으니 당장 추천을 눌러 이 글의 수고를 치하해주시라. 어쨌든.

 

 빈센트는 남자들을 관찰하며, 남자라는 존재는 자신이 노라 빈센트로서 보던 남자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들은 영원한 시대의 강자도 아니고, 특권을 독점한 존재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여러 압력으로 인해 구겨진 존재에 불과했다.

 남자들은 감정 표현을 절제할 것을 강요받는다.

 남자들은 욕구를 절제할 것을 강요받는다.

 남자들은 항상 유능한 존재가 될 것을,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남자의 자격을 얻는다는 건 이를 테면, 중세의 기사가 되는 일과 같다. 항상 봉사하는 존재. 항상 강한 존재. 항상 고결한 존재. 그러한 존재들이 되기를 강요받는 존재.


 남자로서의 그 의무를 거부한다면 차가운 경멸의 지옥만이 있을 뿐이다. 남자란 결국,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때의 파멸을 피하기 위해 남성성을 연기하며 사는 존재일 뿐이었다. 남자들 서로가 감시자이자 징벌자가 되면서 움직이는.


 그리고 자신이 남자다움을 연기하는 태도가 어째서 들키지 않았는 지도 깨닫는다. 이미 남자들도 남성성을 연기하며 사는 존재였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는 남자들과 놀라우리만치 똑같은 것이다.


 그렇게 남성의 실체를 알게 된 빈센트는 더 이상 남자들을 질투하지 않았다. 


 대신 응원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서 빈센트는 남자들에게 주문한다.


 남성성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시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시라.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시라.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라. 


 남자들의 동지애와 우정, 그리고 형제애가 그것을 극복하게 할 수 있다. 서로를 처벌하는 대신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라.


 압력이 자기 자신을 망가지게 두지 마시라.


 물론, 그것이 어렵다는 건 저자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다.


 겪어봤으니까.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영화, 「쇼생크 탈출(1994)」 中.



그들은 왜 오토코노코를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에서 '성욕의 억압은 의심의 여지없이 성적 장애를 낳고, 결국 사람은 강박적 성격을 띠게 되어 술이나 마약처럼 특별히 즐기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신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소비하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결국 표준을 벗어난 문화 코드는 억압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도피의 방식이 아니라, 그냥 즐기고 있다면, 굳이 억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선 에리히 프롬의 어구가 주는 흐름을 따라 '우리는 솔직함의 의무를 타고 났습니다!', '억압이 당신을 왜곡하게 두지 마십시오!' 따위의 문구로 마무리하는 게 적절할 것 같지만, 에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메어진 멍에를 벗겨주는 노력을 하려는 바로 그 마음. 그런 따뜻함을 가지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적어도, 그런 따뜻함은 모사품이 없을 테니까. 그것이 모사품에만 빠진 인간에게 필요한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