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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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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풀 내음과 이전엔 맡아본 적 없는 희미한 꽃향기가 풍기는 산들 속의 기차역에 정차되어 있는 열차는 붉은 석양에 물들어 있다.


열차에 반사되는 빛에 차마 눈을 뜨기 힘들지만 그 눈부심을 감당할 수 있는 틈새에 즐기는 주변 풍광은 얼핏 보기에도 평화롭다.


실눈을 뜨고 석양과 눈싸움하는 사이 갑작스런 굉음이 귓가를 흔들더니 감동마저 흔들린다. 열차가 출발한다.



어랍쇼? 나도 타야되는데? 좀 같이 갑시다.



난 의욕에 차 열차를 뒤따라 내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지만 본능적인 균형감각 덕에 낭패는 모면했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꼴사납게 온몸을 크게 휘청거리면서 몸을 다시 추스른 후 본격적으로 속력이 붙지 않은 열차에 가까스로 매달리는데 성공한다.


손이 다가온다. 그 손을 붙잡고 간신히 열차에 올라선다.



어어, 고맙소



작가 카렐 차페크가 내민 손 덕분에 <평범한 인생> 행 열차에 매달려 지나쳐가는 산과 들 그리고 들을 가로지르는 붉은 개울을 바라봤다.


그 옆에 듬성듬성 아무 곳에 놓인 듯한 바위들은 서로를 째려보며 몸집을 겨루는 듯 보였으며 바위들 틈에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제라늄들은 평온해보이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인생>이란 작품은 이렇듯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 훈훈한 온기가 흐르다 못해 그 훈기에 호빵도 익을 듯한 분위기다.


전반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눈에 띄는 특별한 갈등은 없는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보였던 한 철도공무원의 자서전으로 이뤄진다.


작가와는 어색한 첫 대면이긴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21세기까지 살아남기란 힘들어 보였다! 그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지만 결코 만만한 작가는 아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 팔자에 그런 곳에 갔는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공연장에 앉아있는데 연주자들에게서 숨을 부여받은 살아있는 음표들이 튀어 올라 분주하게 공연장 내부를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내 주변을 맴돌더니 그것들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 마냥 내 눈을 자꾸 감긴다.


아 정말 평화롭다, 근데 왤케 눈이 감기냐, 저 앞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네, 나도 잠깐만 눈 좀 감아야겠다. 하고 눈을 감는 그 순간 심벌즈 연주자가 집에 우환이라도 있는지 쾅쾅쾅하고 잠을 깨운다.




변주가 시작된 것이다.


누구보다 평범하면서도 모범적으로 보였던 한 인간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했거나 태평했던 것이 아니라는 변주.


인생을 나무로 비유해보자면,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볼 때 그저 나무 밑동부터 해서 위로 훑어가며 줄기와 가지를 본다.


좀 더 열심히 산 놈들은 번듯하게 재단한 가지에 자신의 노력의 결실인 탐스런 열매를 자랑한다.


그렇지만 나무의 근원은 흙 위의 줄기나 가지, 열매 따위가 아니라 흙 아래 묻힌 뿌리가지들로 이루어진다.


뽑았을 때 탈탈 털어야만 비로소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뿌리야말로 나무의 근원이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이 뿌리가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그 인간인거처럼 보이는 하나의 성격과 자아가 아니라 그 내면 속 여러 갈래의 자아로 이루어져있다.



사람은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집합 속에 평범한 인간, 우울증 환자, 영웅, 억척이 같은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은 그처럼 뒤섞인 무리로 이루어진 존재이지만, 이 무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늘 그중 누군가가 앞장서서 한동안 길을 인도한다. 그가 지도자라는걸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왕의 깃발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 깃발에는 <내가 자아>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가 나의 자아이다. 이건 단지 단어에 불과하지만 강력하고 거창한 단어이다.




그가 자아인 동안 그는 집합의 지배자이다. 그 후 또다시 누군가 무리 중의 다른 인물이 앞으로 헤쳐 나오고, 이제는 그가 왕기를 들고 인도하는 자아가 된다.



모든 시간에 걸쳐 그 집합은 우리의 내면에서 서로 싸우며 영원한 투쟁을 벌인다.



나는 그 철학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망치를 들고 모든 걸 깨부수는 그 철학자. 이 지점에서 힘(권력)에의 의지 개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니체는 세계를 해석함에 있어서 힘에의 의지를 세계의 본성으로 보았다.


세계는 결코 하나가 아니며 복수의 의지로 이루어져있다. 복수의 의지들은 상호 영향을 받는 한편 더 큰 힘을 원하며, 서로 상대보다 강해지길 원한다.


설령 지금 이 순간에는 A라는 의지가 승리를 거둬 지배적인 영향을 행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지들이 영원한 패배자로 뒷방에 쭈구려 있진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힘을 키우며 자신들이 지배할 그 순간만을 꿈꾼다.


그리고 이 힘은 언젠가 강대해져 A를 전복하여 승리자로 부상한다.


이 무한한 반복의 결과인 변화가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원리인 것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평범한 인생>에서 다루는 모범적이고 평범한 인생의 내면에서도 여러 의지가 날뛴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최상층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억척이와


다른 사람과의 경쟁 따위는 바라지도 않고 스스로의 세계를 한정짓고 그 속에서 만족을 거두는 평범이,


우울증을 앓는 우울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한 낭만이,


어둠의 쾌락을 추구했지만 맘 속 깊은 곳에 파묻힌 어둠이,


세계를 설명하는 번뜩이는 시인이,


체코인으로서 독일을 골탕 먹이는 반역죄를 저지르고 모든 체코인들의 단결을 꾀하는 영웅이,


그리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상함만을 깨닫게 해주는 철저한 허무주의인 거지가 각축전을 벌이는 난장판이었다.


힘들 중 가장 유력한 의지인 평범이, 억척이, 우울이의 균형있는 삼국정립이 이뤄졌지만 때론 낭만이나 시인의 힘이 융성하기도 하고, 영웅이의 고함이 한바탕 다른 녀석들을 휩쓸고 지나가기도 한다.


뭐 죽을때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 파묻힌 어둠이도 있지만, 역시 가장 주목할만한 녀석은 역시 거지다.


거지는 죽을 때까지 우리 몰래 숨어 빤히 쳐다본다.


우리는 그 인기척을 외면하기 어렵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의 허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때론 그에게 휘둘리며 때론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게 인생이다. 허무주의와의 영원한 대결!




그렇지, 요시! 이 작품을 읽는 키워드는 여기에 있구나.


니체의 정신적 유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남겼듯 모든 것을 불태우는 차라투스트라가 이 작가의 마음속도 한 바탕 불 싸질러 모든 걸 송두리째 재로 만들었구나.


그렇다면 이 소설은 니체 철학개념과 허무주의와의 대결 의지를 알아먹기 쉽게 써내려간 소설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그렇게 치부하기엔 카렐 차페크란 작가는 절대 만만한 작가가 아니며 무려 체코에서 철학 박사까지 취득한 사람인 걸 간과해선 안 된다.

  


곧이어 두 번째 변주가 시작된다.


우리는 가깝겐 운 좋게 얼굴을 볼 기회가 있던 조상 또는 얼굴 없는 조상으로부터, 그리고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의 무한한 고리로부터 많은 자아의 가능성을 부여받았다.


우리는 그 중에 어떤 자아의 가능성을 선택해 받아들이거나 제거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인간이 된다. 인간은 다양성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하나의 고유한 인간이 된다.


하지만, 곧 이 말을 되살펴보면 우리는 선택의 순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판이한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들이 누구이건 간에, 너와 같은 집합이라는 걸 모르겠나? 너는 그들과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이 너이다. 네 속에 그런 다양성이 있으니까.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을 인지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네 내면에 있다. 그들 중 각자는 네 삶의 어떤 것을 살았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 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내가 너를 미워하더라도 난 네가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나는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리라. 그의 멍에를 느끼고, 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그에게 닥친 부당함에 대해 함께 괴로워하리라. 내가 그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는 더 많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다른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이 세상은 얼마나 늘어나는가! 세상이 이렇게 커다란 공간이고, 이렇게 찬@란한 곳인지 누가 알았으랴!


나는 더 이상 어떤 모험을 좇아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 그 대신 무한대를 향해 곧바로, 곧바로 달릴 것이다. 어쩌면 그 무한대는 그곳에, 아니면 그것이 내 삶 속에 있었는지 모른다
.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





인간은 다양한 의지의 집합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다양성의 근원에서부터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설령 나와 너는 이만큼 다른 사람이고 이만큼 차이가 있지만 어쩌면 같았을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에서 역설적이게도 너와 나의 차이는 사라지고 여러 자아의 기반이 되는 힘에의 의지는 언제든 내가 될 수 있었음에 하나로 포용된다.


그리고 이 힘은 언젠가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걸는 결실을 맺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고 곧 너는 나다. 힘의 격차, 차이를 강조하는 니체적인 것으로부터 동일성의 휴머니즘을 이끌어내는 결론은 한동안 내게서 떠나지 않을 성 싶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위대한 선현과의 대화라는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유쾌한 경험이었다.


나는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그가 일평생 가꿔온 창의적인 생각을 담은 열매를 받아 쥐곤 열차에서 내린다.


<평범한 인생> 행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점차 더 멀리 떠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 열매를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줄 또다른 열차를 기다리면서...




PS 해설을 읽어보니 니체는 개뿔..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이 있던데 베르그송을 아는 사람이 <평범한 인생>을 읽고 가벼운 감상문이라도 하나 남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