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풀꽃은 요양원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시오미를 설명하는 '나'가 등장하고 시오미가 곧 폐 절제 수술을 받는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그가 죽을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도입부의 밝지 못한 분위기는 똑같이 요양원을 중심배경으로 삼는 <마의 산>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오미는 의사가 반대하는 수술을 자1청하여(자1청이 금지어??) 받아내고, 자살에 가까운 수술을 받은 후 사망한다. 그 후 '나'는 시오미가 남긴 두 권의 노트를 발견해서 읽는다. 그 노트에는 시오미가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 대학 때 남자 동성친구 후지키와 그 여동생 지에코를 사랑했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두 권의 노트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수학여행 중 시오미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후지키에게 고백하지만 급성 폐렴으로 사망해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시오미는 오빠와 닮은 지에코를 좋아하게 되지만 신앙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 사이가 틀어지고 이어지지 못한 채 군대에 입대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을 때까지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됐다는 내용이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제목인 <풀꽃>에 대해 생각해봤다. 꽃은 봄에 피고 봄이 지나면 진다. 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현상이다. 하지만 작품 내에 있는 동성애와 연결지어 떠올려보면 꽃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간혹 벌이 수꽃을 암꽃으로 착각해서 붙기도 하는데, 시오미는 수꽃이 남자인 걸 알면서도 수꽃을 사랑하게 된 벌이다. 성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오미는 그 꽃 자체를 사랑했다. 그 수꽃이 사고로 일찍 죽고 그 아래 달린 사랑하던 수꽃과 비슷하게 생긴 암꽃을 찾아가지만 여전히 그 수꽃을 잊지 못한다. 


왜냐면 같은 식물에서 자란 암꽃을 찾아간 행동도 수꽃의 영향 아래였기 때문이다. 애당초 시오미는 수꽃, 후지키를 원하고 그 유사품으로 지에코를 선택했기에 사랑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을 듯 하다. 본문에서 지에코를 사랑하게 된 이유와, 양측 간에 다른 성격에 대해 설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되어있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나'가 시오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보내는 편지를 지에코에게 보내는 4장의 이름은 역설스럽게도 <봄>인데, 후지키와 지에코를 잃고 요양원에 갇힌 시오미가 죽고나서야 평안을 되찾았다는 암시 같다. 풀꽃은 봄에 피니까 말이다. 편지를 받은 지에코는 자기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서, 시오미가 자신에게서 오빠를 본 것 같다고 용서해달라고 말하며 소설은 끝난다.


참 좋은 소설이다. 동성애라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꺼냈지만 서정적인 필체로 능숙하게 써내렸고, 결말까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매끄럽게 이어져 어색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칭찬한 미시마 유키오의 말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였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분명히 성소수자의 이야기지만 그곳에서 젠더성이 배제된, 사랑의 순수함을 담은 글을 간만에 읽은 듯 하다. 나는 이벤트로 운 좋게 이 책을 접했지만 돈을 주고 산다 해도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소설을 선물해준 완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