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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았다는 건 강하다는 것” <킵 잇 심플>은 무지막지하게 강한 기업 애플의 다사다난했던 초창기 제품 개발 일대기를 에슬링거의 시각에서 서술한 일종의 자서전이다. 자존감 넘치는 디자이너 에슬링거는 명실상부 애플 성공의 주역이었던 스티브 잡스를 조연으로 격하시키며,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점 외에도 그의 업적와 입장은 당연히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지만, 워낙에 고생길을 걸어왔던 탓인지 그의 글에서는 아휴 그래 니 잘났다 ㅋㅋ정도의 장난스러운 재수없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천재적 폭군과 재능있는 따가리들이 시정잡배들과 차가운 현실을 극복해 세계를 바꾸었다라고 요약되는 반쪽짜리 영웅적 서사 속에 제 자리를 잡고 눌러앉아 쓴 개인적 소고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가 굳이어 이런 책을 쓴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스티브 잡스 생전에나 사후에나 끊이질 않았던 왜곡된 서사들을 온전한 이야기로 돌려놓고자 함이기도 하다. 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반()왜곡적 포지션을 잡음으로써, 애플의 거대 신화를 개인들의 이야기로 축소시키고, 스티브 잡스에게 다시금 안녕을 선물한다.


그러한 포지션을 잡기 위해서는 사실성이 필요했고, 에슬링거는 기억과 기록에 기반한 서술에 더하여, 본인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실제 자료들을 실어 두었다. “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거치는 도중에도 막막한 상황에서,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라 여러 번의 수정 끝에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식의 클리셰에 가까운 텍스트를 넘어 실물의 형태로 제시되는 탐구의 과정은, 좋은 디자인이란 일련의 논리로 도출되는 결과라기보다 직관을 사용한 탐험과 개척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연구 스케치부터 기획 발표 자료, 모형과 시제품 사진까지. 폼과 석고로 제작한 미려하고 감성적인 모형에서는 사랑받는 방법을 연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장난이 아님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존 스컬리와의 불화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며, 경험자의 시각에서 그의 편협함을 주기적으로 비난하고, 좋은 디자인이란 디자이너 개인의 능력 뿐 아니라 외부 조건에 맞서는 타협 없는 투쟁의 결과물이기도 함을 정력적으로 피력한다.


다시 말해, 에슬링거는 애플의 신화를 사실의 영역으로 돌려놓기 위해 이 책을 썻다. <킵 잇 심플>은 혁신이라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의 지난함을 묘사하는 책이고, 이 이야기에 등장한 애플과 프로그의 창조자들은 그 지난한 항해를 해쳐나가기 위해, 새롭고 더 나은 것을 창조하기 위해, 아직 정의할 수 없는 그 무형의 가치를 구체화하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고 결합하고 폐기하며 밤하늘에 북극성 하나를 띄워 올린다.


그는 그저 주어진 것을 다듬음에 머물러서는 절대 좋은 디자인을 일궈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기술 분야 디자인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모든 창조적 분야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탐구와 더 좋음에 대한 추구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 에슬링거는 이 구조를 작동시키려면 정말로 그렇게 하는 수 밖에 없음을 오직 사실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등장한 시정잡배들처럼 살지 말기를, 최소한 그들처럼 창의적 인재들의 발목을 잡지는 말기를 당부한다. 이 책에 실리지 못한 연구 스케치들과 시제품 사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인칭 시점으로 본 과정임에도, 사기꾼들은 3인칭 시점의 결과만을 으스대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수요 없는 공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미숙함, 어리숙함 이전에 콩고물만 원하는 못된 심보가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 <킵 잇 심플>을 읽고 알게 된 것이 그것 하나 뿐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