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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다루는 1200~1750년의 인도사는 극히 단순한 도식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델리 술탄국과 무굴로 대표되는 북방의 이슬람 침략자들과 비자야나가라와 마라타로 대표되는 토종 힌두교인들의 끝없는 종교적 투쟁만이 반복되다 대영제국의 진격 앞에 허무한 파멸을 맞이한 허망한 시공간.
당연히 인도 아대륙은 그런 단순하기 짝이 없는 퇴행적 세계가 아니었다. 촐라와 가즈니 제국으로부터 무굴의 분열로 이어지는 장구한 기간에서 전쟁과 폭력은 역사의 여러 순간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당시 이슬람과 페르시아의 문화는 마치 현대 미국과 같은 세련된 국제 유행으로 받아들여졌고 데칸 술탄국과 싸워온 비자야나가라의 군주들은 기꺼이 무슬림 기병대를 수용하고 수도에 모스크를 세웠으며 그들의 건축과 의복 양식을 기꺼이 수용하고 재해석했다. 이슬람 역시 인도에서 변화하고 적응했다. 무슬림 수피 성인들은 인도 요가의 수련법을 수용했고 무굴의 귀족들은 라마야나의 페르시아 번역본과 화집 제작을 기꺼이 후원했다. 평민들은 유명한 성인의 영묘를 참배할 수만 있다면 이슬람인지 힌두교인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고 이슬람과 힌두교의 축일은 만인이 향유하는 축제의 순간이었다.
폭력 역시 만연했지만 대체로 군주들은 종교보다는 권력과 승리를 더 중시했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인도판 히틀러로 비하하는 무굴의 아우랑제브조차 그랬고, 그들이 힌두교의 수호자로 숭배하는 시바지 본슬레 역시 무굴과 손을 잡으려고도 했고 무굴과 싸우면서도 무슬림 신하들을 자연스럽게 거느렸다.
동시에 상업은 고도화되며 번영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근대 초기의 인도는 농업이 발전하고 신대륙의 금은이 유입되며 세금 납부가 현금화되고 은행가들의 자금으로 인도양 무역이 번성했다. 중국, 중동, 일본과 마찬가지로 근대 초기까지의 인도는 결코 정체된 적이 없었고 역동적이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 중 한 명이 건축사 전공이기에 각 왕조의 주요 건축물에서 이데올로기와 문화적 유사성을 읽어내는 부분이 항상 수반되는데 한글로 읽어도 무덤덤해지는 것이 건축물 묘사인지라 이 부분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독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실물 책으로는 350페이지라는, 다루는 시대를 감안하면 심히 부족한게 아닌가 싶기도 한 분량이지만 정작 읽고 나서는 가히 완벽에 가까운 분량 최적화를 이뤘다고 평가한다. 기존의 델리 술탄국, 무굴에 치우친 역사 서술 대신 데칸 술탄국과 비자야나가라에도 그에 맞먹는 분량을 할애하면서도 정치, 사회, 문화사의 배분 역시 적당하다 느꼈는데,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예전에 [비잔티움의 역사]를 구매해 읽어볼 때는 이런 밸런스가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낀 만큼 더욱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고 서아프리카의 역사를 다룬 원서를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인도사를 더 파게 될 것 같다. 아마 서문에서도 언급된 리처드 이튼의 [india in the persianate age]을 보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가망은 없겠지만 이런 인도사 명저들이 번역되어 '인도사는 노잼'이라는 편견을 깨부술 날이 오기를 잠시나마 상상해본다.
인도사는 노잼임
노무1현 잼이라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