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사적인 관점에서 이 질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함. 언뜻보기엔 정보철학이라는것은 뻔해보임. 왜냐면 우린 정보라는 말도, 철학이라는 말도 대충 알고 있으니까. 정보에 대한 철학이 정보철학이겠지. 생물철학이나 법철학처럼, 정보에 대한 응용철학이지 않겠나. (물론 해당분야 종사자들은 그게 응용철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님. 이 책의 저자는 정보철학을 모든 철학에 우선하는 혹은 토대가 되는 제1철학으로서 구상하고 있음.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임.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정보철학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장르나 범주를 묻는 질문으로 단순화 되지 않음. 정보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보라는것의 특별한 성질에 대해 이해할때 대답할수 있는것이고, 정보의 성질을 알게 될때 정보철학의 철학적 위치에 대해서도 알수 있게 됨.






정보가 왜 중요한가? 이 책에선 다양한 이유, 즉 사회적 변화부터 순수한 (이를테면 의미론적이거나 논리적인) 철학적 의미까지, 여러 영역에서 나타날 정보와 관련된 변화를 근거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 이것은 정보철학의 입문서로서는 물론 적절한 안배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 철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보통 사람에게라면 몰라도, 철학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것만으로는 정보철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전달할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예를들어 구글이 데이터과학자를 얼마나 고용하였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보통사람들에겐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이야기겠으나, 좀 더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사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경제적 현상' 일 뿐이겠지.



전공이나 직업을 막론하고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철학인이라고 하겠음.

왜 정보철학은 철학인에게도 중요한가? 구글이나 빅테크기업같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상관 없이?

왜 정보철학은 철학인에게 특별히 더 중요한가? 그러니까 정보철학의 지지자들이 '정보에 대해 아는것은 칸트나 플라톤을 아는것보다 더 중요하다' 라고 말할때 그것을 미친소리라고 무시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보자. 이것은 저자의 직접적 주장은 아님. 저자는 단지 정보혁명과 관련된 여러 지식들을 제시해줄뿐임. 그러나 서문과 1장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의도, 그리고 정보철학을 제1철학으로 하는 원대한 구상과 그것의 텍스트화 계획(그 첫단계가 바로 이 '입문'임.)을 보면(해제에 설명돼있음), 저자 역시 분명하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나는 느낌.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상관없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심리철학에서 시작하는것일것임.

다수실현은 무엇인가? 어떤 마음, 혹은 시스템이 서로 다른 물리적 기반에 의해 실현될수 있다는 성질임. 똑같은 컴퓨터 시스템이 진공카드로도, 천공관으로도, 반도체 트랜지스터로도 실현될수 있음. 마음도 마찬가지고. 마음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은 마음의 이런 성질에 주목함. 물질에 기반하긴 하나, 물질에 의존하진 않는 성질. 물질은 그것이 구현되기 위한 장치이지만, 개별 물질의 물성이 아닌 그것들의 관계로부터 마음이 나타남. 철학자들은 이것을 기능이라 부르기도 하고, 시스템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쨋든 중요한것은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물리적인것들의 성질과는 매우 다른 성질이란것임. 이를테면 물건 a로부터도 물건 b로부터도 같은 시스템 x가 나타난다면,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인과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보임. 일반적으로 인과는 하나의 원인에 하나의 결과가 연결되는것을 말하지. a->x에 일대일 대응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인과가 아님. 적어도 물리적 인과는 아닌것이지. 심-신 관계라고 할수 있는 이 철학적 문제는 의식의 주관성과 함께 철학자들을 괴롭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것임. 수많은 철학적 논쟁이 오가고, 결과적으로 학자들은 마음이 몸의 인과적 결과가 아니라는것에 대체로 동의했음.


이것은 일반인의 직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임. 왜냐면 우리가 생각하거나 느끼는것이 우리를 움직이고, 다시 우리 자신은 환경의 영향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고 우리는 느끼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을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진리로 인정하고 있는 유물론(심리철학에서는 물리주의라고 부름) 세계에서 마음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것이 판명됨. 왜냐면 우리는 외부의 세계(물리적)에 영향을 받고 뇌가 작동하고(물리적) 행동(물리적)하여 다시 외부에 영향을 주기때문임.

환경-뇌-행동-환경만으로 물리적 인과는 완전해지고, 마음이 끼어들 인과적 자리는 존재하지 않음. 오히려 마음이 끼어들면 문제는 복잡해짐. 왜냐면 마음이 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어디에 '존재' 하는지 설명할수 없기때문임. 우리는 환경이 뇌와, 뇌가 신체와, 신체가 환경과 어떻게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알고있음. 그러나 뇌는 어떻게 마음과 상호작용하는가? 데카르트의 송과선 드립을 포함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 문제는 해결된적이 없음.


언뜻보면 문제는 간단해보임. 우리 신체가 받아들인 감각에 의해 활성된 뇌 상태가 마음이다라는 설명은 일상경험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그럴듯해보임.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음. 분명 우리의 마음은 외부를 반영하는듯 보임. 내가 느끼고 있는 이미지는 눈이 포착한 세계의 가시광선이 뇌에서 적절하게 처리된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 마음 안에 담긴 '상' 은 외부에 대응하는것임. 즉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외부에 대응하는듯 보임. 그러나 이것만으로 마음과 뇌는 상호작용한다고 할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상호작용은 '상호성' 을 포함함. 입자 a가 b에 영향을 줄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함. 작용방향의 대칭성이 있는게 물리적 상호작용임. 그렇다면 외부의 영향을 받는 마음은, 역으로 외부에 영향을 끼치는가? 이 역시 직관적으로, 일상경험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 왜냐면 실제로 우리가 외부에 행사하는 영향력의 근원은 뇌기때문임. 우리의 운동을 통제하는것은 뇌지 마음 자체가 아님. 그렇다면 뇌는 마음의 영향을 받아 작동하는것인가? 그렇다면 뇌는 마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우리가 아는 한 이 세계의 인과적 상호작용은 전부 물리적인것임. 그렇다면 마음의 영향을 받는 뇌는, 마음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이야기가 됨. 그러나 마음에 물리적인것이 있나? 우리의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물리적인것은 뇌임. 뇌의 신경이 발화하는 방식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일의 전부임. 결국 마음은 존재할곳 없게됨. 외부-뇌-외부만으로 모든 행동이 설명되고, 인과사슬은 폐쇄됨. 인과사슬의 폐쇄된다는 의미는, 모든 원인은 뒤따르는 결과를 사슬로 갖는단 뜻임. 그런 사슬들은 무수한 연결의 결과 닫힌 연쇄를 형성함. 모든 원인은 결과가 있으며,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짐. 결과를 갖지 않는 사슬은 존재하지 않음. 우리의 물리세계는 그렇게 인과적으로 닫힌 세계임. 외부의 영향을 받는 마음은 무언가를 원인으로 두지만, 결과를 만들진 않음. 이것은 사슬의 열린부분임. 다음 사슬이 존재하지 않는 사슬이지. 영향받지만 영향주지는 않는 이 기묘한 관계를 철학자들은 수반이라는 말로 미봉할수밖에 없었음. 역사적으로는 더 다양한 이론이 있었음.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라든가. 물질과 마음 둘 다 최초에 신이 계획한대로 흘러가며, 둘은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똑같은 계획으로 움직이기에 일치한다는 이론임. 어쨋든 근대인들도 마음을 물리적인것으로 볼수 없다는것을 알수 있었음. 그리고 여전히 이에 대해 철학자들이 제시한 방법은 우리가 진리로 받아들이는 물리학에서는 관찰되지 않는(애초에 가정하는것 자체가 비물리적인) 수반관계임.



이런 곤란한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은 차치하고 방향성만을 보자면 크게 세가지 해법이 있을것임.


1. 물리학이 틀렸다. 우린 더 발전된 물리학을 갖게될것이다.

2. 물리학은 맞지만 세상엔 비환원적인 관계란것이 있다.

3. 물리학은 맞고, 마음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을뿐이다. 마음을 더 알게 되면 환원적인 물리학으로 설명할수 있다.



1번은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고 지지하는사람이 별로 없음. 2번은 비환원적 물리주의라 말하고, 기능이나 성질같은것들은 '속성' 이 다르다는 식으로 설명함. 이들에 따르면 마음이나 기능, 빨갛다 같은 주관적 성질등은 속성이며, 물질적인것과 같이 세계의 근본적인 요소임. 둘은 다른것이기에 이원론이라 할수 있음. 예를들어 차머스가 일종의 속성이원론자임. 3번은 대닛같은 사람이 주장하는것이며, 마음이나 의식에 대해 우리가 아직 너무 몰라서 착각하는것이라는 주장.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마음에 대한 이해는 물리학에 대한 입장을 포함하는것임. 다시말해서, 마음이란 시스템에 대하여 논한단것은, 물리학이라는 매우 근본적인 논의를 포함한단 것이고, 그렇기에 마음철학은 단순히 세계의 한귀퉁이에 존재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토대와 맞닿아있는 중요한 문제라는것임. 그리고, 마음이 바로 정보적인 현상의 대표격이라는것을 생각해 보면, 정보에 대해서 깊이 이해한다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를 알수 있음.




존재론을 따져보자. 역사적으로 존재함에 대하여 많은 주장들이 있었지만, 근대 이후로 존재는 물리적인것이거나 감각가능한것으로 간주되었음. 그러나 정보적인것은 물리적인것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음. 공간을 점하지 않고, 기반의존적이지 않음. 어쩌면 그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나타나는것일지도 모르지.

대체 존재한다는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우리가 확언할수 있는 존재함이란것은, 그것을 어떤식으로든 감각으로 변환할수 있다는 이야기지. 전자의 궤적을 포착한 안개상자의 방식처럼. 그리고 감각으로 변환한단것은 물리적인 성질이 있단것이고,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성질이 존재한다는것이 바로 존재한다는것과 같은것이며, 일반적인, 상식적인 의미에서 존재한다는것은 물리적 성질을 가진다는 의미임.


그런데 이 물리적 성질은 다시 존재의 범주 자체와 동일시 될수 있음. 왜냐면 사실 존재의 구분은 다른 성질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임. 양성자와 전자가 다른 범주의 존재인 이유는 둘이 다른 전기적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지. 사실 이것조차 거꾸로 된 서술이고, 사실은 어떤 전기적 성질을 가진 무언가가 전자로 정의될뿐임. 우리의 직관은 존재라는것이 마치 칠하지 않은 건물처럼 있고, 그것에 성질이라는 페인트를 입혀서 세상을 이해하고 구별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실제로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음 그뿐이지. 다른 성질 그 자체가 존재의 유일한 구분가능성이고, 이것이 물리학적인 존재인것임.


그런데 정보적인 존재는 이와 다름. 물리적인 존재의 성질은 고유하고 유일함. 다른 행동을 하는(=다른 성질을 가진)존재는다른 존재이기 때문임. 그러나 정보적인 존재는 이런 방식으로 분류할수 없음. 다른 구조를 지닌 같은 기능을 하는 시스템이 가능함. 이것은 너무 크고 따라서 착각할 여지가 많은 예시일까? 그럼 훨씬 더 단순한것을 생각해보자. 정보란 본질적으로 의미론적인 데이터이며,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균일성의 결여(lack of uniformity)로 정의될수 있음. 무언가와 구별될수 있는 무언가, 즉 다름이 있을때 균일하지 않음이 발생하고 거기서 데이터가 발생할수 있음. 다시말해서 데이터 그리고 정보는 존재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라, 단지 다름과 다른것들의 관계로부터 나타난다는것임. 예를들어 우주공간에 단 하나의 입자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입자인지는 그 입자의 고유한 성질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이지만, 정보는 그 고유한 성질과 관계 없이 단지 진공과 입자의 다름, 균일성의 결여로부터 발생함. 어떤 입자든 상관 없이 데이터를 만들수 있지.


이런 성질은 정보가 물리적인것이 아니라 더 일반적이고 원초적인 우주의 성질(혹은 요소)중 하나라고 볼 이유가 되는것임.




위 주장은 주로 1~3장(특히 1장)의 내용에서 도출할수 있는것이지만, 이후의 장에서도 정보가 물리적인것과 다른 특별한 성질을 지녔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함. 노버트 위너나 아치볼드 휠러는 정보가 물질, 에너지와 함께 우주를 이루는 근원 요소거나, 혹은 물질과 에너지보다 원초적인 무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나옴. 또 수학적 정보이론에서 계산할수 있는 정보의 수학적 구조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와 완전히 같은 구조라는 이야기도 나오지.



나는 복잡한 시스템과 구조, 추상적 형식에 많은 흥미가 있음. 그런것들의 구조나 성질뿐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예를들어 예술에서도 나는 회화나 조각보다 건축과 음악을 더 흥미롭게 느낌.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것들이 나에게 직관적으로 주는 만족감이나 영감이 더 많기 때문이지만, 그것들에 대해 생각할때 회화나 조각보다 더 심오하고 숭고한 성질을 느끼게 됨. 음악은 패턴으로만 존재하지. 실물이란 없고 오리지널리티도 없음. 원본에만 존재하는 아우라도 없지. 그러나 존재하지. 건축은 어떤가? 음악처럼 계획된 추상적 구조이지만, 물리적으로 구현되지. 그러나 어떤 설계도를 구현할때 첫번째로 만들어진 건물이 오리지날일까? 이것이 아우라를 가지나? 이후 같은 설계도로 똑같이 지어진 건물들은 복제인가? 난 이런 생각들에서 건축과 음악이 가진 특별함, 구조, 아름다움, 그리고 존재한다는것의 의미를 깨닫고자 함. 예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것이 정보적인것과 물리적인것의 결합으로 되어있음.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생명, 사회, 마음, 모든게. 그리고 나는 어쩌면 존재한다는것은 차이가 있다는것이고, 이 우주는 발생한 차이들에 의해 채워져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함. 물질과 에너지는 전체 존재의 일부에 해당하며, 더 근본적인 존재의 원리는 정보를 깊이 이해함으로서 가능할거라는 기대를 함.



이런 내 기대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음. 왜냐면 정보라는 개념에 대해서 우리는 놀랄만큼 모르고 있으니까. 철학자를 포함한 누구나 정보란 개념을 수없이 사용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진 못하지. 그리고 틀림없이 정보는 중요한 개념임. 어쩌면 모든 철학의 바탕에 세워질 기초일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충분히. 사실 이제와서야 정보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기 시작한 철학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놀랍게 느껴짐. 우리는 이미 정보적인것에 너무 익숙하니까. 그리고 사실 세상 전체가 정보적인것으로 채워져 있었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의 관심과 이해는 너무나 부족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