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사물의 보편적 형상(이데아)과 개별자는 분리되지 않고 공존한다고 하는데
이 주장대로라면 어떤 동물이 멸종하면 그 동물에 대한 형상도 사라지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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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 비판하는 내용임 플라톤은 사물의 실재가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하는 거고, 아리스는 개체 내에 존재한다는 거임
개의 본질이 어딧냐고 물으면 플라톤은 외부 세계, 아리스는 개 안에 있다고 할 거임 - dc App
지나가는문과(laumak94)2024-02-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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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거는 알겠는데 만약 어떤 조각상이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하는데 이걸 부숴버리면 그 조각상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남지 않게 되는건가? 조각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이게 궁금하네요
석개(gogogowls21)2024-02-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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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는게 있잖아.
익명(39.113)2024-02-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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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말한다는 자체가 그것에 대한 형상을 말하는것과 같지 않습니까? 질료가 소멸됨과 동시에 형상도 사라졌을텐데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건지 이해가 안됩니다..
석개(gogogowls21)2024-02-2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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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라는 게 개체에 물리적으로 붙어 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개체를 탐구해야 한다는 거임 - dc App
지나가는문과(laumak94)2024-02-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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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 이야기는 아리스 이야기랑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는데 답변하자면 조각상의 존재했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 조각상에 대한 본질도 알 수 없겠지 - dc App
지나가는문과(laumak94)2024-02-2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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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형상이 아냐. 아랫도리털났으 형이 말하는 형상은 에이도스, 실체는 우시아. 하나의 사물은 에이도스와 우시아의 결합이지. 에이도스만 따로 때낼 수 없어. 그럼 우시아 망가지거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물자체를 볼 수 있겠지.
익명(39.113)2024-02-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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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에 존재하는 형상과 우주의 객관적인 형상을 이분법으로 나눠서 보아야한다.. 그런것같네요 다들 감사합니다
석개(gogogowls21)2024-02-21 21:58
핵심은 '보편자'임. 그러니까 여기서는 유개념으로서의 보편자를 말하는 건데, 인간이 두 발로 걷는 동물이라고 할 때 '두 발로 걷는' 부분이 종차(종의 차이를 만드는 특성)고, '동물'이 유개념임. 그런 식으로 독붕이 개체들에는 '인간', '영장류', '동물'과 같은 보편자가 적용될 수 있는데, 이 보편자가 어디에 존재하냐는 거지. 플라톤은 그 보편자들이 존재하는 세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기하학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쉬움. 아무리 잘 그려도 현실의 삼각형은 완벽하지 않지. 그렇지만 그런 불완전한 현실적 존재들을 보편자로 묶을 수 있는 건, 그 보편자가 완벽한 존재로서 실재하기 때문이라고 봄. 그래서 보편자(개념=이름) 실재론이고, 그 실재의 세계가 이데아의 세계임.
팔리팔리외국인(file2048)2024-02-2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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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분류가 더 친숙한 사람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너님이나 나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자는 매우 많음. '인간'은 별 문제 없는데, 영장류나 동물도 적용됨. 그렇다면 '완전한 인간'이란 이데아는 모르겠지만 완전한 영장류, 완전한 동물이란 이데아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웃기지 않겠음?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보편자(유 개념)는 각 개체 안에 나누어져 존재하고 따로 독립해 있는 건 아니라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생각을 한 걸거임. 보편자가 실재하지 않는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유명론과도 다르고 플라톤과도 다름.
팔리팔리외국인(file2048)2024-02-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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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라는 문제로 들어가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섞이는 것임. 플라톤은 질료 없는 순수 형상(이데아)이 존재한다고 보았지만, 반대로 형상 없는 순수 질료는 가능한가, 이건 또 다른 논쟁거리였음. 과거의 다른 철학자가 말한 아페이론이 그러한 순수 질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아무튼 조각상을 부수면 더 이상 조각상이 아니게 되는데, 인간도 갈아버리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님. 플라톤은 지구를 갈아버려도 그 모든 형상이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렇지 않음. 다만 그 개체가 더 이상 그 보편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임.
팔리팔리외국인(file2048)2024-02-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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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중세 시대에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문제가 되는데,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니라."하고 축성을 하면 그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문제가 기독교 교리와 형상-질료 형이상학의 결합에서 난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임. 당시만 하더라도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라는 식의 세련된 (현대적인) 사고가 불가능했기 때문. 마찬가지로 그리스 철학 시기에는 인식 주체의 인간이 세계에 대해 가지는 표상이라는 식의 사고가 존재하지 않음. 그러니 인간이 알건 모르건 그냥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함.
팔리팔리외국인(file2048)2024-02-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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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대로 '인간의 인식에 존재하는 형상'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임. 형상과 질료는 개체에서 결합되어 있고 그러한 종류의 개체가 모두 소멸할 경우 어떻게 되는가, 라는 질문이 발생할 거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그렇다면 그 보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할 것임. 개체들을 묶어주는 개념이,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면 '존재한다'의 의미가 달라지는 거니까. 물론 플라톤에게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고. 유명론자들에게도, 보편자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질문 자체가 안 나올 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더 해명을 필요로 하는 의문이 되는 거임.
이데아 비판하는 내용임 플라톤은 사물의 실재가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하는 거고, 아리스는 개체 내에 존재한다는 거임 개의 본질이 어딧냐고 물으면 플라톤은 외부 세계, 아리스는 개 안에 있다고 할 거임 - dc App
예.. 그거는 알겠는데 만약 어떤 조각상이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하는데 이걸 부숴버리면 그 조각상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남지 않게 되는건가? 조각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이게 궁금하네요
기록이라는게 있잖아.
기록을 말한다는 자체가 그것에 대한 형상을 말하는것과 같지 않습니까? 질료가 소멸됨과 동시에 형상도 사라졌을텐데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건지 이해가 안됩니다..
본질이라는 게 개체에 물리적으로 붙어 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개체를 탐구해야 한다는 거임 - dc App
조각상 이야기는 아리스 이야기랑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는데 답변하자면 조각상의 존재했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 조각상에 대한 본질도 알 수 없겠지 - dc App
기록은 형상이 아냐. 아랫도리털났으 형이 말하는 형상은 에이도스, 실체는 우시아. 하나의 사물은 에이도스와 우시아의 결합이지. 에이도스만 따로 때낼 수 없어. 그럼 우시아 망가지거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물자체를 볼 수 있겠지.
인간의 인식에 존재하는 형상과 우주의 객관적인 형상을 이분법으로 나눠서 보아야한다.. 그런것같네요 다들 감사합니다
핵심은 '보편자'임. 그러니까 여기서는 유개념으로서의 보편자를 말하는 건데, 인간이 두 발로 걷는 동물이라고 할 때 '두 발로 걷는' 부분이 종차(종의 차이를 만드는 특성)고, '동물'이 유개념임. 그런 식으로 독붕이 개체들에는 '인간', '영장류', '동물'과 같은 보편자가 적용될 수 있는데, 이 보편자가 어디에 존재하냐는 거지. 플라톤은 그 보편자들이 존재하는 세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기하학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쉬움. 아무리 잘 그려도 현실의 삼각형은 완벽하지 않지. 그렇지만 그런 불완전한 현실적 존재들을 보편자로 묶을 수 있는 건, 그 보편자가 완벽한 존재로서 실재하기 때문이라고 봄. 그래서 보편자(개념=이름) 실재론이고, 그 실재의 세계가 이데아의 세계임.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분류가 더 친숙한 사람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너님이나 나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자는 매우 많음. '인간'은 별 문제 없는데, 영장류나 동물도 적용됨. 그렇다면 '완전한 인간'이란 이데아는 모르겠지만 완전한 영장류, 완전한 동물이란 이데아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웃기지 않겠음?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보편자(유 개념)는 각 개체 안에 나누어져 존재하고 따로 독립해 있는 건 아니라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생각을 한 걸거임. 보편자가 실재하지 않는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유명론과도 다르고 플라톤과도 다름.
'보편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라는 문제로 들어가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섞이는 것임. 플라톤은 질료 없는 순수 형상(이데아)이 존재한다고 보았지만, 반대로 형상 없는 순수 질료는 가능한가, 이건 또 다른 논쟁거리였음. 과거의 다른 철학자가 말한 아페이론이 그러한 순수 질료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아무튼 조각상을 부수면 더 이상 조각상이 아니게 되는데, 인간도 갈아버리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님. 플라톤은 지구를 갈아버려도 그 모든 형상이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렇지 않음. 다만 그 개체가 더 이상 그 보편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임.
이게 중세 시대에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문제가 되는데,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니라."하고 축성을 하면 그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문제가 기독교 교리와 형상-질료 형이상학의 결합에서 난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임. 당시만 하더라도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라는 식의 세련된 (현대적인) 사고가 불가능했기 때문. 마찬가지로 그리스 철학 시기에는 인식 주체의 인간이 세계에 대해 가지는 표상이라는 식의 사고가 존재하지 않음. 그러니 인간이 알건 모르건 그냥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함.
위에서 말한 대로 '인간의 인식에 존재하는 형상'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임. 형상과 질료는 개체에서 결합되어 있고 그러한 종류의 개체가 모두 소멸할 경우 어떻게 되는가, 라는 질문이 발생할 거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그렇다면 그 보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할 것임. 개체들을 묶어주는 개념이,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면 '존재한다'의 의미가 달라지는 거니까. 물론 플라톤에게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고. 유명론자들에게도, 보편자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질문 자체가 안 나올 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더 해명을 필요로 하는 의문이 되는 거임.
감사합니다 선생님 전부 이해된건 아니지만 천천히 곱씹어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