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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느끼는 독서보다 배우는 독서를 많이 했다. 모든 책들을 교과서 읽듯 읽었다. 유익한 독서지만 피곤한 독서이다. 오랜만에 깊은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독서를 원했다. 그래서 추리 소설인 「빅 슬립」을 선택했다. 하루에 한 시간 집에서 사이클을 타면서 전자책을 읽었다. 딱 사흘 걸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소설인 만큼 감상도 가볍게 쓰련다.
2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미칠 듯이 재밌는 소설이었다. 문장부터 달랐다. 문장 하나하나가 재치 있어서, 영화 「타짜」가 생각났다. 물론 1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의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을 "사백만 달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라고 묘사하질 않나, "키가 크시네?"라는 말에 "내 잘못은 아니지."라고 답하질 않나... 혈흔을 발견하고 "누가 쏴버린 거야. 아니면 피해자가 사이비 종교 교주였고 저 토템 기둥 앞에 제물을 바쳐거나. 아니면 저녁때 닭고기를 먹었는데 닭을 거실에서 잡았거나."라고 말하는 장면도 특기해두고 싶다. 마지막에는 반전이랄 것도 있다. 추리 소설을 읽을 때는 범인을 함께 추리하며 읽으려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문장에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니 반전이 나와서 나름 충격적이었다.
3
필립 말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쿨하다. 쿨내 진동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많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필립 말로는 더럽게 쿨하다. 모종의 윤리 의식을 고집하는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다. 정의의 사도처럼 일하지 않고, 추리도 일단 뛰어들어서 건수를 발견하고 넘겨짚기를 반복한다. 내가 의뢰인이라면 필립 말로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키시베 로한의 말처럼 "그래서 맘에 들었다." 계속 쏟아지는 삼류 소설들이 억지로 쿨한 인물을 만들다가 작품성을 산산조각 내는 것은 아마도 필립 말로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일 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평했듯 「빅 슬립」은 '원형'이다.
4
공권력은 흔히 나쁜 놈들로 묘사되고는 한다. 「빅 슬립」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도 모두가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다. "이 동네 경찰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금주법 시대에 에디 마스네 도박장은 줄곧 나이트클럽이었는데 밤마다 정복 경찰 두 명이 로비를 지켜줬소. 손님들이 클럽 안에서 술을 사 마시는 게 아니라 몰래 가지고 들어오는 걸 막으려고." 공권력이 속이 시커멓다는 클리셰는 요즘에는 흔해빠졌다. 지금 「빅 슬립」의 매력을 반감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빅 슬립」은 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대에 맞춘 탐정을 제시했기 때문에 분명 다른 범작들과 다르다.
"이 게임에서 기사들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것은 기사들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필립 말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공권력이 똥배의 무게로 움직이지 못할 때 몸이 가벼운 필립 말로는 자유로이 악을 추적한다. 필립 말로는 의뢰인이 눈치를 주긴 했지만 직접 말하지 않은 것까지 기꺼이 추적한다. 여기에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거창한 목적은 없다. 그 편이 더 현실적이니까. 대신 필립 말로는 묘한 온정을 갖고 있다. 세상은 이미 썩었고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만, 거기서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구타를 당하고 웅덩이 속에 처박혀가며 도와줄 위인이다. "예쁘고 버릇없고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소녀가 몹시 잘못된 길로 빠져버렸건만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자들은 모조리 지옥에나 떨어져라. 역겨운 것들." 옮긴이의 말대로 필립 말로는 인간을 향한 연민을 품고 움직인다. 필립 말로에게 많은 사람들이 반하고, 후세 사람들이 필립 말로의 아류들을 복제하는 이유도, 필립 말로 같은 사람이 실존하기를 바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5
제목인 빅 슬립은 직역하면 깊은 잠, 의역하면 죽음을 뜻한다.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미 죽어버린 마당에 어디 묻힌들 무슨 상관일까? 죽은 사람은 깊은 잠에 빠졌으니 아랑곳하지 않는다. 얼마나 부당하게 죽었건 어디에 버려졌건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을 잘뿐이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건 죽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명성에 걸맞은 죽음은 없다. 삶은 허무하다. 그렇다고 생명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생명의 무게를 헛되이 날리지 않도록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 필립 말로는 아쉽게도 범죄 예방 캠페인을 하는 사람이 아닌 탐정이라서 한 발씩 늦는다. 가장 좋은 세상은 필립 말로의 일거리 없이 방에서 술이나 마실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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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들러의 묘비에 「빅 슬립」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은 상처받은 마음보다도 무거우니까." 원래 시신을 운반하며 생긴 자국을 보고 농담처럼 남긴 말이지만, 굉장히 분위기 있는 말이다. 그냥 여기다 적어두고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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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은 열린 결말이다. 사실 열린 플롯이라 해도 무방하다. 「빅 슬립」을 영화화하다 감독이 「빅 슬립」 속 부수적인 사건의 범인을 묻자 챈들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죠." 「빅 슬립」의 이야기가 차기작에서도 이어져서 사건 관계자들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차기작을 읽어보고 싶다.
빅 슬립 잼겠농
당시의 다른 하드보일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챈들러도 기존에 발표한 단편들을 짜깁기해서 장편을 썼기 때문에 플롯이 열려 있을 수 밖에 없는ㄷ
우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