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있다. 여기선 집단간 갈등과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여기서 말하는 집단은 국가, 민족, 성, 성지향, 신념, 종교등 인간을 묶고 구분할수 있는 모든것을 뜻한다.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살던 생물이라 나의 집단 내 구성원과는 협력하고, 다른 집단과는 대립하는 천성을 가지고 있다. 마가렛 미드의 "...이런 원시부족들이 숲 속에서 다른 부족 사람을 만났을때 해야 할 가장 합당한 일은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는것..." 이란 표현처럼, 좀 더 자연에 가깝던 전근대 사회는 그야말로 집단간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이 시기의 폭력이 단순히 지성이나 도덕성의 부족에 기인하는가? 현대인은 개개인 고대인보다 더 지적이고 선해서 폭력이 줄어든것일까?
직관적으로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도덕생활에대한 많은 연구로, 도덕이 상당부분이 집단과 관련있다는것이 밝혀졌다. 예를들어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다. 아이들에게 두가지 색의 티셔츠를 무작위로 입히고, 사탕을 주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게 하면, 같은 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에게 더 많이 나누어주는 경향이 있다. 티셔츠 색은 무작위로 정해진것일 뿐인데도, 심지어 이걸 알고 있는 좀 큰 아이들도차도 그냥 그렇게 행동한다.
이건 인문학적 해석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옥시토신같은 호르몬은 내 집단 사람에겐 친절하게, 타 집단 사람에겐 배타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분명 내 집단에 더 협력하고 타집단에는 공격적이도록 만들어진것이다.
핵심은 우리와 타인을 나누고 구분하는 기준이다.
이를테면 언어가 그렇다. 고대 그리스인은 그리스어를 못하는 다른민족 사람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웃기게도 스키타인은 그리스인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스키타이말을 못하니까. 로마인은 유대인을 야만인이라 불렀고, 유대인은 유대말 못하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알다시피 고대에 야만인이란 말은 '인간 이하 인간' 이란 의미다. 자신들과 같은 지성이나 도덕성을 가지지 못한 동물같은 존재라는 멸칭이지. 단순히 언어가 다른것 만으로도 이런 구분과 대립이 생겨난다. 현대의 과학적 연구에서도, 전형적인 미국인은 다른지역 억양이 섞인 영어(인도, 파키스탄, 독일, 러시아등) 를 쓰는 사람을 지능이 낮아보인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억양을 사용하는 사람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
언어뿐만 아니라 피부색, 문화, 종교, 복장, 행동 등 집단을 구분하는 수많은 기준이 있다. 21세기에 이런것들은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으로 '보존되고 존중받아야 할 것' 이라고 설명되지만, 한편으론 갈등의 인자(그것도 가장 강력한) 인것도 분명하다. 다른 문화 사회에 이주하고도 자신들의 문화를 버리지 않는 이슬람인들이 기존 문화와 충돌하는 일을 생각해보라. 다름은 분명하게 말해서 위협적인 신호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책은 이야기를 담는다. 주로 인간에대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노예제 폐지에 중요한 공헌을 했음은 분명하다. 백인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톰 아저씨도 자신들과 같은 감정과 지능을 지닌 인격체라는것을 실감하게 됐고, 감정이입할수 있게 되었다. 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읽힐수록 이런 인식은 상식이 되었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했지.
심리학자 폴 블룸은 20세기 미국에서의 동성에대한 인식의 극적인 변화의 원인으로 시트콤을 지목한다. 시트콤에 등장하는 긍정적 이미지의 동성애자들이, 우리의 동성애에대한 인식을 바꿨단거지.
단순한 가설일까? 간접적 증거는 많다. 예를들어 인간에게 타고난 인종정체성같은건 없다. 아기들은 많이 봐서 익숙한 인종을 선호할뿐, 자신과 같은 인종을 선호하고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가진 인종주의는 '선천적인 인종적 정체성' 과는 무관한, 오로지 노출에 관한 문제다. 이는 진화적으로도 타당하다. 왜냐면 우리는 진화기간동안 다른 인종을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다른 인종에대한 표적적 적응은 불가능하다. 서로 구분할수 있을만큼 달라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게 된것은, 인류가 지구에 널리 퍼지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의 일이다.
실제로 잦은 접촉은 편견과 경계심을 완화시킨다. 백인학교를 다니는 백인아이보다, 다인종학교를 다니는 백인아이가 다른 인종에대한 편견이 더 적다. 타문화와의 접촉이 증가하고, 이동기술과 통신기술이 발달할수록 타문화에대한 편견이 줄어든다는 역사적 흐름도 가설을 지지해준다. 세계화만큼 세계평화와 갈등완화에 공헌한것이 있을까?
서로를 야만인이라고 비난하고 죽였던 고대와 달리, 우리는 분명하게 다른 민족들을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걱정한다.
책은 세가지 이유에서 의미있다.
첫째로 책은 타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처럼, 우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할수 있다.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본질적인 유사성에 더 주목하게 될것이다. 같은 육체를 가지고, 같은 고통과 기쁨, 사랑을 느끼는 유사성에 대해서. 유명한 표현대로, 피부 한꺼풀만 벗기면 같은 인간이라는것을 감정으로 느끼게 된다.
두번째로 우리의 일반적 지성이 향상된다는것이다. 도덕철학자 제임스 플린은 도덕의 핵심으로 역지사지의 추론을 꼽는다. 남을 자기처럼, 자신을 남처럼 생각할수 있을때 비로소 도덕이 가능한것이다. 역지사지를 위해선 가정적인 사고나 비현실적 상상, 삼단논법같은 사고능력이 요구된다. 익히 알려진대로 전근대 농촌사회 사람들은 교육받지 못했고, 이런 분야에서 능숙하지 못하다.
전근대 도덕이 지역적이고 국소적이고 특수적인것에 비해서, 현대의 도덕은 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것은 이런 이유때문이다. 우리는 내 가족이나 부족, 민족에만 국한되는 이익 도덕이 아닌, 인류 전체에 적용될수 있는 일반원칙을 확립할수 있다. 독서를 포함한 다양한 교육은 지성 전반을 향상시키지만, 특히 독서는 더욱 더 도덕과 관련있다. 탈맥락적이고 기술적인 학교 교육과 달리, 우리의 독서는 좀 더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정확한 사실을 알수 있도록 만든다. 예를들어 여성은 남성보다, 흑인은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멍청하다는 오래된 편견을 정면 반박하는 과학적 연구가 수없이 많다. (예를들어 플린효과에 따르면 많은 나라의 평균 iq는 수십년동안 10점 이상 상승해왔다. 미국의 경우 상승폭이 25점에 달하고, 그래서 수십년 전 미국 백인보다 현대의 흑인이 평균아이큐가 더 높다! 또한 선천적 재능의 영역이라고밖에 할수 없는 sat 수학 상위 0.01% 점수를 획득한 남녀학생의 비율은, 지난 수십년동안 13:1에서 2.5:1로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여학생들이 선천적으로 멍청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수학에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한다.)
책과 독서는 이런 지식을 전파시키며, 우리는 더 유식해지는만큼 편견에 저항할 힘을 얻게된다.
혹시 책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책이 세상을 단번에 바꿀것이라고, 혹은 자신을 극적으로 바꿔놓을것이라고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실망한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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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투표 안했다 방구석에서 야갤 투표중계봤음..
정치 떠나서 그냥 궁금해서 묻는건데 왜 이 글을 보고 글쓴이가 문재인을 찍었다는 추론이 나왔음?
정말 좋은 글이다. 개추 - dc App
유유상종 공감도 동류인 사람이랑 가능하지. 아무 사람이나 고전문학 클래식 음악 향유 가능한거 아님. 백날 해봐라 즐길수 있나. 코스프레충만 늘어남.
개추 - dc App
그래. 이렇게 글쓰는 연습하는거야. (미안. 글이 길어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PC 화면 글은 길면 읽기 싫더라. 짧은 문장. 단락, 문단 구분해! 마지막에 결론 문단 따로 만들어서 그거라도 읽게 유도하고) - dc App
글 잘 쓰네 - dc App
http://m.dcinside.com/board/reading/59981
선영(ast62) = 하루사십장 = 하루삼십장 = 친구구함 = 괴롭히지마세요 = syrup = tolle = ** = 키키... = 120
음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