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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위키백과, 「음식」.



 콘텐츠 제작 강의 등에서 가장 쉬운 소재라며 추천하는 소재는 바로 음식이다.


 모두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기에, 배경설명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모두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기에, 누구라도 이해가 쉽다.


 모두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기에, 누구라도 몰입도 쉽다.


 그래서 먹방 콘텐츠의 범람을 콘텐츠 제작자의 게으름과 모험을 기피하는 보신주의의 결과라며 비판한 글도 있지만, 그래도 효과가 좋은데 어쩌겠나.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이용자의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실패 확률이 가장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사실 반대로 제일 어려운 것도 음식 콘텐츠이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미식 콘텐츠로 벌어먹는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미식가라. 미식가. 단어 그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 맛있는 음식만 먹는 사람인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신문 창설 이후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기에 그 위상은 유튜브 등장 이후 생겨난 크리에이터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그 호칭의 접근성이 좋다 보니 미식가 별로 질이 들쭉날쭉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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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한니발(2013)』.




 말이 나와 말인데, 훌륭한 미식가의 조건은 뭘까? 


 사실, 여러 매체에서는 미식가가 뭔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로 나오곤 한다. 대충 음식 한 점, 국물 한 점만 먹고도 뭐가 들어있는 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놀라운 능력! 그래서 미식가의 대표적인 조건을 굉장한 미각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천만에.


 미식가가 그러한 이유로 찬미받아야 한다면, 사람들은 미식가보다는 식품분석기를 찬미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분석기는 미식가가 말해주지 않는 퍼센테이지까지 말해준다!


 그런 논리로 말한다면 소믈리에는 무엇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믈리에들도 방송 등에서 한 모금 마시고 맞히는 놀라운 곡예를 보여주는 게 기본이니까.


 하지만 소믈리에의 역할이 단순히 그뿐이라면 의미가 없다. 고객도 눈이 있다. 맛보지 않아도 그냥 병의 라벨을 보면 된다.


 단순히 포도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만 본다면, 소믈리에의 그 곡예는 카탈로그보다 못하다. 소믈리에는 한 모금 마셔야 하지만, 카탈로그는 자신이 마시지 않고도 고객에게 어떤 술인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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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Vampire Vinyards, https://www.vampire.com/product-page/vampire-vineyards-red-wine-trilogy.

 


 그렇다면 어째서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존재하는가? 어째서 고오급 호텔에선 포도주를 소믈리에가 대접하는가? 비싼 장소의 비싼 술이니까 그냥 대접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선 단순히 깔끔한 제복을 잘 차려입은 친절한 종업원이 대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포도주에 인생 절반을 바친 전문가가 대접할 때에서야 비로소 대접받는다는 실감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문가의 설명과 추천, 각 잡힌 모습으로 깔끔하게 따라주는 것까지. 이 모든 게 하나의 서비스이다. 


 그러니까 사실, 한 모금 마시고 맞히는 건 바텐더가 쉐이커를 굳이 공중에 던지는 것과 같은 퍼포먼스이다. 그냥 손님이 즐거워 하니까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어쨌든.


 이와 같이, 미식가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미각은 하나의 퍼포먼스이지,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뛰어난 미각이 미식가의 조건이 아니라면, 진짜 미식가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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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로웨나 모릴, 「아즈텍의 희생제의」, https://arthive.com/artists/64732~Rowena_Morrill/works/349636~Sacrifice_of_the_Aztecs.



미식 콘텐츠의 필수요소
   
 일개 독자일 뿐이라 진짜 미식가에 대한 기준을 정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미식 콘텐츠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을 뿐이다.

 첫째. 맛의 기준을 제공할 것.

 기준 없이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기준없이 평가하는 이들이 보이면 조금 당혹스럽다.

 맛에 대한 간단한 감상과 함께 자기 인생론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일 때 더욱 그렇다.

 내가 집어든 것은 식당 리뷰나 맛 칼럼이지 에세이나 일기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 당혹스럽다. 

 사실, 맛이라는 것도 꽤나 추상적인 영역인 지라. 그래서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상적인 영역이라고 해서 기준을 두어 평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비교군을 두어 평가한다. 제일 널리 퍼진 프랜차이즈와 비교하는 것이 그 방법의 대표랄 수 있겠다.

 하지만 신문지면이나 책에서 그런 짓거리를 하면 당연히 비교 대상이 된 사람. 특히 평가절하 당한 사람이 법봉을 들고 쫓아올 것이다.

 그래서 에둘러서 말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게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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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SBS, 「백종원의 3대천왕」 中.



 '양파 설익으면 안 되는데, 이 집 잘 익혔네.', '전분물 안 넣고 춘장하고 양파만 볶았어.', '면에서 밀가루 냄새가 안 나요.'

 그렇다. 마땅히 그 음식을 만들 때 지켜야만 하는 사항을 잘 지켰다고 칭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기본을 다 지켰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면 저절로 기준점이 생긴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밑에 깔린 함의도 읽어낸다. 기본도 못하는, 독자들 주변의 그런 가게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당연히 독자들도 자연히 그러한 기본도 안 되는 가게들과 비교하게 된다.

 이렇게 기본을 언급하는 것 하나로, 독자의 경험과 저자의 경험이 서로 동일한 지점을 향해 가게 된다. 텍스트가 언급하는 지점으로 독자와 저자를 서로 근접하게 만든다. 

 과학기술의 시대가 되며 맛도 계측이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람들에게 있어서 맛은 체험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체험의 영역이기에 불완전한 텍스트라고 해도 위력을 갖는 것이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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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조세일보, 「팔도-왕뚜껑, 개그맨 김준현 발탁 패러디 광고 론칭」.



 그리고 두 번째.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물론,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선 당연히 올바르게 먹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결국 앞서 말한 기준 얘기와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건 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것이라고 해서 무슨 예능 방송 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짜로 즐기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것을 보여주라는 말이다. 그것 자체가 재미를 주니까.

 예를 들어, 콘텐츠 제작자들이 자신도 그저 즐기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낮추면서도, 정말로 콘텐츠와 장르를 즐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행동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패러디이다.

 소설이나 만화 등의 콘텐츠 제작자는 패러디를 하거나, 아예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버린다. 패러디는 화제성에 편승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 타겟 이용자들과 함께 즐긴 것을 적절한 감성으로 풀어내야만 하니, 즐기지 않은 사람이 하기엔 어려운 방법이다.

 패러디와는 다르지만, 미식 콘텐츠도 제작자 자신이 그 취미에 열광했던 흔적을 보여줘야만 한다. 그냥 남들 먹는 대로 먹는 사람과 자기만의 방법으로 먹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진정으로 즐기는 자에 가까울까?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자면, 한국의 TV예능 「맛있는 녀석들」이 그 예시랄 수 있겠다. 이 방송은 패널 네 명이 나와서 식당을 돌아다니며 밥을 먹는 예능이다. 차이가 있다면, 먹는 방법에 있다. 아주 별의 별 방법으로 다 먹는다. 먹는 방법에 대한 창의력이 정말 대단하다. 한 입에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는 미션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딱히 그런 제약이 없는 때라도 식당에서 알려주지 않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먹는다는 점이 주가 되는 방송이다.

 물론, 음식을 소개하며 맛의 기준도 다 알려주니, 본 지면에서 말하는 훌륭한 미식 콘텐츠에 제일 걸맞는 방송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결국 다시 말하자면, '제작자가 마니아인 콘텐츠를 원한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미식 애기만 하는 이유는 오늘 소개할 만화가 미식 만화여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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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가나가와 산마멘 홈페이지, https://www.sannma-men.com/sannma-men/Koizumijunichiro_pht_r.html.




라멘덕후 고이즈미 씨(ラーメン大好き小泉さん)

 그러한 미식 콘텐츠 중 오늘 소개할 것은 일본의 만화 『라면 너무 좋아 코이즈미 씨(2014)』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친구들과 교류가 거의 없는 전학생 고이즈미(小泉) 양. 학교가 파하면 사라지는 그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로 라멘 가게!

 고이즈미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고이즈미에게 다가가며, 고이즈미의 취미인 '라멘'에 함께 빠져들게 된다!

 끝.

 더 줄이면 이쁜 여성 캐릭터가 나와서 라면을 먹는다. 예쁜 친구들도 같이 먹는다. 그게 전부.

 아주 평범한 포맷이다. 그래도 차별점은 있기 마련인데,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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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서울신문, 「‘펀쿨섹’ 日환경상 “온실가스 감축 46%? 어렴풋이 떠올랐다”」.



 캐릭터를 볼까? 주인공 고이즈미는 아주 아름답고 기품있는 캐릭터… 라고 한다.

 라멘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학교가 파하면 곧장 라멘 가게부터 가고, 시험기간에도 저 멀리 동북부까지 가서 라멘 기행을 하고 온다. 

 친구가 자신은 라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마자 곧바로 거리를 벌리며 피하는 무례한 모습을 보일 정도로, 인간관계를 포기해도 라멘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무서운 집념을 보여준다. 정말 제목 그대로이다.

 게다가 고열량 고염분인 라멘을 매일 곱배기로 퍼먹으면서도 깔끔한 피부와 가녀린 몸매를 유지한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그 옛날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근육빵빵 강력한 초인이 되는 모습이 뭇 어린이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해 시금치를 퍼먹게 된 것처럼, 독자 또한 라멘을 먹고 깔끔한 피부와 가녀린 몸매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성장하기엔 늦은 나이인 필자도 혹하는 것이다.

 라멘 하나에만 집중하는 만화 특성상 이게 얼마나 오래갈까 싶지만, 의외로 라멘이라는 게 생각만큼 단조로운 소재도 아니다. 칸막이를 두어 완전 개인 공간을 제공하는 라멘가게 등 가게 자체의 특색을 소개하는 것도 있고, 초콜릿을 얹은 라멘, 레몬을 듬뿍 얹은 라멘, 낫토를 얹은 라멘이나, 파인애플을 넣은 라멘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매우 좋아할 라멘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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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文春オンライン, 「小泉進次郎は「上」と「下」どちらの味方か? 参院選で地金があらわになる」.



 그러니까 이 만화는 이를 테면, 지금도 신문 한 구석을 차지한 미식 칼럼과 같다.

 음식에 대한 소개와 감상에 더불어, 자기 인생 한 조각을 섞어 만드는 여러 글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저자의 인생이 아닌 캐릭터의 일상이 들어있을 뿐.

 그런데, 이 만화의 진짜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도 연재중이라는 것. 라면 하나만을 소재로 10년 넘게 한 것이다!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조금 기다려서 면이 국물에 충분히 적셔지도록, 그러니까, 좀 불려서 먹는 방법을 소개하는 등. 좀 단순했다. 초반부터 이러니 소재 부족으로 금방 끝날 것 같았기에 더욱 놀랍다.

 여러 음식도 아니고 라멘 하나라는 이런 단조로운 소재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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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중앙일보, 「日 '정치아이돌' 고이즈미 신지로, 첫 자녀 탄생」.



 답은 작가의 트위터에 있었다.

 작가의 트위터엔, 거의 매일 같이 라면 먹는 포스팅이 올라온다.

 그러면서도 계속 연재중이다.

 작가는 이 만화 외의 다른 만화도 연재를 하는 중이니 정말 매일매일 일본 전국을 순회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 전부터 개인적으로 쟁여둔 식도락 일기의 일부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해도 매일 SNS에 풀어낼 수 있는 분량이 나오다니. 작가가 면식수행에 바친 세월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작가는 진짜배기 마니아였던 것이다. 

 라면과 만화. 그 둘에 모두 미쳐사는 외길인생이다.

 육체는 오로지 라면, 정신은 오로지 만화…….

 결과물은 라면 만화 장기연재…….

 보라,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바로 마니아이다!

 만화 초반만 보고 이 만화를 양산형 미소녀 만화의 포맷을 취했을 뿐인 얄팍한 만화라 판단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작가의 삶과 그의 창작물에 경의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앞서 말한 기준 같은 건 다 때려부수자. 기준 같은 게 다 뭐가 필요하겠는가. 인생을 바친 사람 앞에서는 찬미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짜 라멘 미식가이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짜 만화가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창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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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스포츠경향, 「배민까지 점령한 '펀쿨섹좌' 고이즈미 신지로, 국내 온라인 완전 '석권'」



리뷰 콘텐츠의 즐거움

 말이 길었지만, 결국 이런 리뷰 콘텐츠는 남의 경험을 읽는 간접체험인데, 이러한 간접체험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올바르게 보고 있던 건지, 나는 올바르게 행동했던 것인지. 남의 길을 통해 내 길을 점검해보는 것이다. 

 내 마음의 영점을 잡는 것이다. 
 
 물론, 이런 리뷰 콘텐츠는 이용자 자신의 직접 체험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남의 방법이 맞는 지 틀렸는 지를 판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본디 간접 체험은 자신이 경험할 때를 위해 축적해두는 것이니까.

 평생 남의 것만 봐서는 의미가 없다.

 말 나온 김에, 오늘은 오늘은 음식에 대한 자신의 영점을 맞춰보는 것이 어떨까?

 얼큰하게 끓인 라면이라도 먹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