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요즘 고전을 읽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라는 글이 맞는 말인 듯 한데 너무 극딜 당하는 것 같아 '자연과학 공부에 고전강독이 필요한가' 에 대해 논하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연과학에서 고전의 중요성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와서 어느 물리학도가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겠습니까. 근세과학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호기심에서 한번 읽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으나 물리학과 커리큘럼 내에서 프린키피아를 강독할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평범한 물리학도라면 프린키피아를 단 한번도 보지 않고 졸업하게 됩니다. 대신 이들에게는 서웨이(Serway)나 할리데이의 기초 물리학 교재가 인문학에서의 '고전'  역할을 합니다. 2학년 이상 학부 과목에서는 어느 대학교를 가도 'An introduction to ~', 'Fundamentals of ~', 'Elementary ~'  라는 제목들의 교재를 공부하게 됩니다. 


학부 수준 전자기학을 공부할 때 '전자기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봐야할 책' 같은 건 없습니다. 학생들은 대개 교수가 지정한 교재로 공부하고, 그 책에 수록된 예제와 연습문제를 풀며 공부합니다. 전자기학에 많은 뜻이 있는 학생이라도 맥스웰의 저작을 뒤지지는 않습니다. 좀 더 난이도가 높은 전자기학 교재(학부 고급 수준이라든지, 의욕이 더 강하면 대학원 수준의 교재를 찾기도 합니다.)를 찾아서 공부하죠. 


예시는 물리학으로 들긴 했지만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공학 등 자연, 공학 계열은 위와 사정이 동일합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자기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쓴 대표작을 읽는 일은 없습니다. 화학과 학생이라고 라부아지에의 논문을 읽는 것도 아니고 생물학과 학생들도 린네, 심지어 다윈의 저작도 보지 않습니다. 아주 드물게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보는 경우가 있을 뿐이죠. 자연계열 학생들은 대부분 지정된 교재로 강의를 듣고, 교재 내의 예제를 푸는 걸로 공부합니다. 각 교재의 대상 독자들도 상당히 협소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예컨대 자연계열의 교재들의 서문을 보면 'This book is aimed at sophomore or junior students ~'. 라는 식의 서술이 매우 흔하게 발견됩니다. 이것은 인문 교육과는 달리 자연, 공학 계열 과목은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따르게 되는 커리큘럼' 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 고전의 경우 추천되는 강독 순서가 이따금씩 언급되기는 하지만 '반드시 A-B-C-D-E-F' 순으로 읽어야 한다' 고 강요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수학과에서는 거의 필히


해석학 -> 위상수학, 복소해석학 -> 측도론 (해석계열)

선형대수학 -> 현대대수학 -> 암호론 등 응용대수 (대수계열) 

의 순을 따르도록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예로 전기공학의 경우

전자기학 -> 회로이론 -> 전자회로 -> 전력전자, 제어이론 등등 

을 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만약 이렇게 전형화된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예제를 풀기는 커녕 본문 내용조차 따라가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 대학교의 자연계열 / 공학 학문은 이렇게 배워야할 과목들의 이수 모형이 '어느 대학교에서나 비슷비슷하게 정형화' 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만약 자연계열 학생이 자신의 전공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계열의 고전을 공부한다면, 대부분 크게 낭패를 보는 걸로 끝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의 커리큘럼은 논리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잘 체계화되어 있지만, 옛 저술들은 '그 당시' 의 지식 체계를 기반으로 쓰였기 때문에 오늘날 기준으로 잘못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오늘날의 논리체계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현대진화론을 공부하려면 어느정도 유전학에 대한 선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학부수준의 진화론/유전학 교재를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학년 때 교양 생물학(유명한 캠벨 생명과학 등의 교재로 공부하겠죠.)을 알차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 뒤 어떤 유명 대학교 교수가 Oxford, Pearson 등의 대형출판사를 통해 출판한 'Introduction to Genetics' 이런 전형적인 제목이 달린 교재로 공부해야 하겠죠. 만약 어떤 학생이 진화론을 공부하겠답시고 다윈의 저작들을 찾아 읽는다면, 유전자 개념도 없었던 당시의 협소하고 잘못된 생각과 여태 배워온 생물학 지식이 뒤엉킬 위험이 큽니다. 비슷하게 해석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극한 개념은 엡실론-델타 논법에 완전히 기반하고 있으며, 이 논법은 19세기에 가서야 완전히 정형화됩니다. 해석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시중의 학부생을 위한 해석학 교재를 사서 공부해야 현대수학에서 널리 인정받는 논리체계 하에서의 해석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만약 자연계열이나 공학계열의 학생이 자기 분야의 '고전' 을 공부하고 싶다면, 차라리 학부 수준의 내용을 거의 다 마무리하는 3학년 수준까지 공부를 끝마치고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럴 경우, 자기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 예전에 가졌던 생각이나, 옛날의 학문체계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겠죠. 하지만 그 고전들로 자기 분야를 '공부' 한다는 생각으로 읽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인문 고전은 각각의 저술 자체가 오늘날에도 연구대상이 되고, 끊임없는 논의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 고전을 읽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의 폭을 넓혀 주는데다가 사람들과 자기 생각을 교류하는 데 간접적인 도구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자연계열의 학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옛날 고전 서적은 오늘날 기준으로  '아주 명백하게' 잘못되었기 때문이고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효율성도 몹시 떨어지는데다가, 과학자나 공학자들의 대화주제로 뉴턴, 맥스웰, 가우스, 오일러, 라이프니츠, 다윈 등등의 위대한 권위자들이 쓴 서적이나 논문이 오르내리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