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관적인 2010년대 국문학 BEST4 뽑았던 갤러인데,

거기 뽑았던 시집 세 권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들 뽑아서 올려봄.

사실 워낙 좋아하는 시들이라 몇 개는 외우고 있어서

필사하는 겸 써본다.


















구관조 씻기기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 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 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여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유독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 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가 웃었고 나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어


다른 애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함께 웃는 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어 냄새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까?


꽃잎과 조명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 모두 알고 있었지
















아름답고 멋지고 열등한



사랑해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해 밤하늘의 달과 구름 어둠속에 스러져가는 별들조차 당신을 애타게 부르고 땅 위의 모든 짐승들과 숲과 호수와 들판에 버려진 꽃들조차 당신을 보고 싶어해 당신 없는 새상은 무덤속의 좀비 얼간이 끓어오르는 오물통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떤 재난도 불행도 아름답고 황홀하겠지 나 미쳐 보여?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이토록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니 당신도 그래? 당신도 그래? 그래요, 나 역시 숨이 막힐 것 같아 당신의 모습이 한순간도 떠나질 않고 지금, 여기, 눈앞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 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신기해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움도 씻은 듯이 사라져버려 어째서,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사랑해 사랑해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


악마새끼들


'물속의 물고기들은 목마르지 않아서 좋겠다'라고 혼자 되뇌었다


-하지만 당신과의 관계를 엄마가 알게된다면 당장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거에요

-걱정하지 마 그녀가 당신을 헤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녀를 없애버릴 테니까

-그만 둬요 바보같이… 엄마를 죽인 남자와 섹스하고 싶진 않아

-무슨 소리야 그러면 나는 앉은뱅이랑 한 침대에서 자고 싶을 거라 생각해?


'저기 봐, 밤이 오고 있어'


이것은 숨죽인 살쾡이가 말했지




내일은프로



내일은 프로는 글자수 제한으로 지움.

디씨 게시글에 글자수 제한있는건 처음알았네

꽤 긴 시니깐 찾아서 봐라 누가

다음 블로그에 올려놨더라.



갠적으론 황병승이나 이준규는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가서 좋아한다고 잘못 말했다간 큰일나는 시인들이지만, 좋은걸 어떡함

갠적으론 들판과 트랙의 별>육체쇼와 전집>여장남자 시코쿠 같다.















마트료시카



창을 조금 연다. 언젠가, 너는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어냐고 했다. 너는 러시아 인형이라고 했다. 너는 중국 인형도 좋아했다. 나는 너에게 중국 인형이라는 노래를 들려주고 중국 인형이라는 소설도 얘기해주었다. 너는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오늘 고케시를 보았다. 일본 인형이다. 나는 그것을 너에게 주고 싶다.귀엽고 오래되고 조금 두려운 것으로. 그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나의 숲을 주고 싶었다. 조금도 두렵지 않은 완전한 숲을.








네모는 막상 쓰려니깐 떠오르는게 이거 밖에 없네

네모 시집을 보면, 전부다 저 위의 시랑 똑같은 형식으로 비슷한 길이로 썼고

퀄리티도 일정해서 읽다보면 뭔가 아우라가 느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