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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文学が裁く戦争−東京裁判から現代へ
이 책을 처음 본 건
맨날 왔다갔다 길에 있는 서점의 쇼윈도에요
웬 한국사람 이름이 보이길래 자세히 보니까 제목도 꽤 재밌어 보여서
그 길로 바로 구매했어요
저자 김영롱 선생님은 서울 출신에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를 하시고 지금 오오츠마여대에서 교원을 하고 계시다네요
이와나미 신서에서 한국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맨날 보인다 하면 북한 관련 아님 한일관계 관련같은 거라
문학 관련은 재미있어 보여서 집은 것도 있어요
(이 책도 결국 넓게 보면 한일관계 관련이지만요)
내용에 대한 얘기를 해 볼게요
일본 사회에서 끊임없이 다뤄지는 주제인 ‘전쟁책임’ ‘도쿄전범재판’이
종전직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 졌는가
뭐 이런 내용이에요
일본인이 전쟁에 가지는 감정은 매우 복잡하죠
패전국으로, 전범국으로서의 죄의식과
그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감각에서 나오는 피해의식
이 모든 책임이 어디에 있는 가를 물었을 때 돌아오는 모호한 답변..
<문학이 판결하는 전쟁>은
일본인들이 모든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려고 했는가를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어요
한국의 통념과는 다르게
(최소한 문학계에서는)
전쟁의 책임이 재판정에 선 일부 전범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를 만든 모든 우리 일본인에게 있는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 왔더라구요
2차 세계대전을 넘어 일본의 식민지 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구요
60년대 일본원조를 경제식민지화의 획책이라고 비판하는 작품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럼 왜 이런 자성이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닿지 않는 걸까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저는 뭐 반일국뽕 이런 거 아니에요 중증 일뽕에다가 일뽕때문에 일본서 사는 인간이니까요 말도 안되죠)
전 그건 그 자성을 감싸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슬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뭐 한국에서 흔히들 말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라기 보다는,
‘왜 우리가 이런 추악한 모습이 되었을까
왜 우리가 불러온 전화에 스스로 잡아먹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런 슬픔과 자기연민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런 슬픔 자체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슬픔을 남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반대로 이런 슬픔에 빠지지 조차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같은 생각도 개인적으로 들었어요
조선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조선인 전범’에 관한 점인데요
김영롱 선생님께서는 BC급 전범재판에서 처벌된 조선인 전범들에 있어서
한국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계시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제7장 ‘전쟁재판과 문학의 현재와 미래(戦争裁判と文学の今と未来)’에서
재일 극작가 정의신의 ‘붉은 길 아래의 맥베스(赤道の下のマクベス)’의
포로학대 혐의로 체포된 등장인물이 ‘일본 정부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고
항변하는 장면을 꼽으시며 이렇게 쓰셨어요
ㅡ
…つまり、強制か志願か、個人の責任か否かといった二項対立を超えて、帝国と植民地の構造的問題を文脈化してみせたのである。それが参照して書かれた戯曲の主人子が「志願」がどうかこだわり、「自分」と言う言葉を頻繁に用いることは、危うく見える。その倫理はこれまで重ねてきた歴史的議論を無視し、自己責任として悪用されかねないからだ。…この「自分」というレトリックは、戦争経験のない世帯が、朝鮮人犯罪を過剰に同一視した結果ではないだろうか。(pp.198)
..즉, 강제에 의한 것인가 지원에 의한 것인가, 또는 개인의 책임인가 아닌가 하는 양자의 대립을 넘어, 제국과 식민지의 구조적인 문제를 문맥화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논리가 반영되어 쓰여진, 주인공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 ‘자기 자신’이란 단어에 대한 빈번한 사용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 논리는 지금까지 쌓여온 역사적 논의를 무시하고 자기 책임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자기 자신’이라는 수사는 전쟁 경험이 없는 세대가 조선인 전범과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한 결과가 아닐까.
ㅡ
이 작품의 인용은 전쟁책임을 어디까지나 윗세대에 대한 책임으로 넘기며 회피하려고 하는
ㅡ
…つまり、強制か志願か、個人の責任か否かといった二項対立を超えて、帝国と植民地の構造的問題を文脈化してみせたのである。それが参照して書かれた戯曲の主人子が「志願」がどうかこだわり、「自分」と言う言葉を頻繁に用いることは、危うく見える。その倫理はこれまで重ねてきた歴史的議論を無視し、自己責任として悪用されかねないからだ。…この「自分」というレトリックは、戦争経験のない世帯が、朝鮮人犯罪を過剰に同一視した結果ではないだろうか。(pp.198)
..즉, 강제에 의한 것인가 지원에 의한 것인가, 또는 개인의 책임인가 아닌가 하는 양자의 대립을 넘어, 제국과 식민지의 구조적인 문제를 문맥화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논리가 반영되어 쓰여진, 주인공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 ‘자기 자신’이란 단어에 대한 빈번한 사용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 논리는 지금까지 쌓여온 역사적 논의를 무시하고 자기 책임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자기 자신’이라는 수사는 전쟁 경험이 없는 세대가 조선인 전범과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한 결과가 아닐까.
ㅡ
이 작품의 인용은 전쟁책임을 어디까지나 윗세대에 대한 책임으로 넘기며 회피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이 문학적인 흐름으로 있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건데요
그 설명을 위해 한국에서 조선인 전범에 대해 흔히 펼쳐지는 논리를
정면 돌파하신 부분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정리해 볼게요
요즘 위안2부 합의를 시작으로 전쟁책임에 대한 화제 중에
배상이니 개인 청구권이니
돈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김영롱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한 권이었어요
이런 내용의 책이 제가 자주 다니던 서점의 베스트셀러 4위에 놓여 있는 게 신기했어요
역시 역사와 전통의 반골 동네 토호쿠 답달까요 ㅋㅋ (농담입니다)
한국인 선생님이 쓰신 것도 있고 내용도 그렇고 이와나미 신서라는 대형 레이블인 것도 있고
조만간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 서점에 진열되게 되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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