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종족, 그 불가해함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종족물, 즉 인간이 아닌 인외, 가상의 인간 아종이 등장하는 작품을 우리는 흔하게 접해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판타지의 하위 장르로 여겨지면서도 정통 판타지와는 구분지어 분류되는데, '이종족이 등장한다'는 단순한 정의를 따르면 웬만한 판타지가 '이종족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순히 판타지 하위 장르로 여겨지기에는 작품마다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판타지물과 구분되는 이종족물의 일반적인 정의를 우리는 이렇게 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종족이 주된 대상으로 등장하며, 그와 관련된 것을 작품의 주요 소재, 또는 주제로 삼는 작품.' 기존의 판타지가 현실 세계와는 다른 '환상 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의 충돌, 또는 환상 세계를 바탕으로 한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준다면, 이종족물은 그 시점을 '종족'으로 옮겨 인간과 '이종족'의 차이와 충돌을 주된 소재로 등장시키는 것이다. 즉 이종족물은 사실 정통 '환상 문학'의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기존 환상 문학이 가진 주제 의식을 이종족물 역시 그대로 계승하게 된다.
물론 정통 '환상 문학'의 정의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고, 지금 여기에서 제시된 전제들은은 다소 낡은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재 각국의 판타지물은 범람하다는 표현에 걸맞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이 시시각각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환상 문학의 본질이나 그 표현법에 있어서 한 가지 정의를 제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이 아닌 괴기한,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고찰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된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는 앞서 말했듯 정통 환상 문학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고찰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불가해한 것을, 신비나 괴기로 여겨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종족물은 이러한 환상문학의 문제 의식을 그대로 따른다. 그렇기에 이종족물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경계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이종족물, 심지어 현대에 와서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이종족물 역시 어느 정도는 이러한 주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흔히 '미소녀 동물원'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형성된 뒤, 이종족물이 본격적으로 '모에'와 결합하며 나타난 여러 장르, 예컨데 '몬무스' 등의 장르에서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차적으로 이종족에 대한 관심 내지는 호기심(아마 성적 페티쉬즘에서 야기된)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예시를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이종족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인간이 아닌 종족과의 으흐흐한 무언가로 판타지를 충족하는 그렇고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의 으흐흐물에서조차 우리는 '이종족'과 '인간' 사이의 충돌을 엿볼 수 있다. 특히나 인간과 인간 외 종으로 양분된 것이 아닌, 인간, 엘프, 드워프, 수인, 리저드맨 등등 다양한 아종이 존재하는 세계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작품들이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담아낼 수도 있는데, 이종족과 으흐흐를 위해서 실제 현실에서의 행위와 대입해보는 것이 필수적이고, 이것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간 사이의 다양한 갈등과 분쟁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이종족물에서는 환상 문학이 가진 내재적 문제 의식, '다른 세계와의 충돌'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수자와 소수자에 대한 알레고리로써 작품에 드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의 두 작품, '센토루의 고민'과 쿠이 료코가 그려내는 여러 작품들(인어금렵구/현대신화/진학 천사 등등)은 이런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물론 두 작품세계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데, 센토루의 고민에서는 어째서 이종족간의 차이가 발생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지, 그것이 '이종족'간에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이렇게 다양한 종족이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에서 '올바름'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조금 더 현실적인 측면을 다룬다. 반면 쿠이 료코의 세계관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조금 더 정통 판타지에 가까운 것으로, 인간 세상이 근본적으로 '불가해한 세계'에 맞닿아있다는 의식을 기초로, 그렇다면 불가해함과 맞닿은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하나, 이들은 이종족의 발생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센토루의 고민'에서는 이종족을 현실에 대입하기 위해, 쿠이 료코의 세계관에서는 '불가해한 세계'에 내재된 논리와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즉, 이 불가해한 세계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며, 거기에는 (우리가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을지라도) 일정한 이유와 법칙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불가해함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다소 비약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하드 SF'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기조와 비슷하다. 이종족물은 그 기원이 환상 문학이 이미 지녀왔던 문제의식이든 아니면 단순한 페티쉬즘이든 이종족에 대한 엄밀한 이해와 탐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종족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있으니, 이제부터 소개할 '데미는 이야기하고 싶어'이다.
1. 하드SF -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어
이 작품에서 '데미'란 데미-휴먼, 즉 '인간 아종'을 일컫는 일종의 신조어다. 이러한 명칭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관 속 '데미'의 사회적 입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센토루의 고민'처럼 사회/현실적인 부분을 건드는 작품은 아니다.
『데미는 이야기하고 싶어』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미소녀 일상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이 중간에 곁들여진 세계관 설정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가볍게 이종족 일상물 읽으러 왔더니 웬 유사SF를 읽는 느낌에, 후반에는 만화 자체가 장르적으로 갈피를 못 잡는 느낌이라 영 별로라는 감상평이 다수 존재한다. 사실 후반부 전개나 중간중간 세계에 대한 설명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데미~』는 이종족 자체에 집중하는 기존의 이종족 일상물과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이종족 일상물 하면 우리는 이종족 여주인공과 으흐흐를 연상하기 쉽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는 판타지를 '현실적으'로 편입시키려는, 그러니까 그것을 현실의 논리로 해명하려 든다는 느낌이 강하다. 대다수 독자들이 거부감도 이런 부분이 늘어지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만화를 다 읽고 느끼는 건 일상물의 잔잔한 여운보다는 세계니 우주니 뭐니 하는 골치 아픈 소리 뿐이다. 중간중간 보이는 전개가 보여주듯 이 만화는 사실 마냥 잔잔한 분위기의 일상물이 아니다. 다소 어이 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 만화는 작중 소마 교수가 SF 애호가라고 주장하듯 '하드SF'에 더 가까운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세계에 대한 내적인 설명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필자도 SF를 많이 읽어보지는 못해서 이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는 어렵다. 대신 하드SF 소설가인 '테드 창'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 넘어가보도록 한다.
<그러나 판타지와는 달리 SF는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우주는 기계와 같은 것이고, (과학을 통해) 그것을 탐구하면 우리도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그 지식은 전파되고 인류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적 사고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라서, 그런 관점에서 쓰인 이야기들을 500년 전, 1000년 전 사람들이 읽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SF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그런 식의 새로운 이야기들이다.>
이 말은 모든 SF에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테드 창 같은 작품을 쓰는 사람들, 그러니까 '하드SF'라고 부르는 일련의 장르에는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테드 창을 위시로한 하드SF의 특징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환상, '판타지'라고 부르는 것들을 이해 가능한 영역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테드 창이 말하는 하드 SF의 지향점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만화로 돌아와서, 이 만화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세계에 대한 구조'이다. 이것은 우리한텐 지나치게 거창한 과학이론처럼 보이지만, 사실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훨씬 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종족 판타지에서 인물은 크게 '인간'과 '아인'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아인'으로 구분된 이들은 대개 서술자인 '인간' 입장에서 '불가해한', '관측하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종족물의 전개를 보면은 대개 인간이 이종족과 만나며 서로의 차이를 드끼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아인과 인간의 관계를 고심하는 부분이 중점적으로 부각된다. 이는 『데미는 이야기하고 싶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두 세계가 충돌한다. 등장인물들이 속한 '인간'의 세계와 막연한 이미지들에 의해 설정된 '아인'의 세계. 이 두 세계의 충돌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이종족물'의 구체적인 장르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데미'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부분이 무척 중요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중 인물들이 '실험'을 통해 두 공간을 봉합한다. 이러한 부분은 작품이 '데미'를 현실을 통해 가닿을 수 있는 존재,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세상은 논리로 설명 가능하고, 데미도 그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의 하드SF적인 특징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데미'라는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며 그것을 '이해가능한 세계'로 옮겨놓는 것, (보편적이고 논리적인)'데미'의 '이야기'를 통해 (미시적이고 개인적인)데미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이종족물'로써 '이해'를 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2. 일상물 - 일인칭을 이야기하고 싶어
그렇다면 이런 하드SF의 방법론이 어떻게 일상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데미는 이야기하고 싶어』는 '데미'를 '이해 가능한 세계'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을 들인다. 그렇게 세계관 설정에 공을 들인 나머지, 이 만화가 설정놀음에 찌들어 정작 '이종족'에 대한 고찰을 잊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 궁극적으로 조명을 받는 것은 거창한 세계의 이론보다는 데미 소녀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이다. 특히 이런저런 혹평으로 가득한 7권~8권 즈음에는 작품의 분위기가 갑자기 역전되며 본격적으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세계를 다룬 청소년물로 탈바꿈한다.
작품에서 주요 인물이라 할 만한 사람은 다섯 명으로, '데미'에 관심 많은 '인간 교사' '타카하시 테츠오'와 '데미' 네 명을 중점적으로 만화가 전개된다. 특히 만화의 초반부는 '인간' 타카하시 테츠오가 '아인' 학생들과 만나 그들을 상담하는 식으로, 이종족물의 왕도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이때는 아직 과학적인 방법론 대신에 아인의 특성을 소개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를 유추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다가 주연 세 사람(뱀파이어, 듀라한, 설녀)이 서로 친해지고 나서부터(그리고 타카하시 선생이 서큐버스 선생인 사토와 본격적인 썸을 타고 나서부터)는 시점이 '타카하시 테츠오를 통한 상담'에서 '데미들의 일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만화 속 세상이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전환되듯 말이다.
절묘하게도 작품은 이 부근부터 아이들의 과거 이야기 등 중요한 에피소드를 차근차근 풀어놓는다. 아이들의 성장 서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역시 이 부근이라고 할 수 있다. 초반부에 '아인'으로서 이야기되던 아이들은 차츰차츰 '아인인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테츠오와의 상담도 확연히 줄어들어 초반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테츠오의 러브코미디 서사가 떨어져 나오는 것도 비슷한 지점이다. 이는 어쩌면 데미와 더불어 '인간' 테츠오의 시선 역시 성장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이 만화가 단순히 세계관 설정에 머무르지 않고, '이종족'으로서 아이들의 성장과 일상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위의 컷들에서 보이듯 본래 교사였던 테츠오 시점에서 진행되던 작품은 조금씩 아이들이 어울리는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본래 불가해한 존재였던 '아인종' 아이들이 본인들의 특성을 깨닫고, 자기들만의 개성과 시점을 형성하여 한 명의 '데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3. 다시, SF의 가능성으로 - 데미는 '이야기'하고 싶어
특이하게도 작품은 여기에서 한 번 더 SF로 전환하여 불가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중후반부에 이르며 작품은 '아인종이라는 보편적인 세계 -> 아이들만의 미시적인 일상 세계'에 도달했다. 작품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아이들이 어떻게 보편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쿠이 료코의 작품에 대한 짧은 설명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이해를 통해 '선택'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은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여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험 내용은 다름 아닌 '데미'를 평범한 '인간'으로 (임시적인 방편이지만) 만드는 것으로, 이를 통해 작품은 매우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불가해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다소 과학적이고 낭만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작품 내에서는 실제로 이 실험에 성공하며 아이들 스스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물론 작중 인물은 인간 생활을 만끽한 뒤 '역시 데미가 편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작품은 인간과 데미 사이에 절대적인 경계를 부여하려 들지는 않는다.)
『데미』가 '청소년물이자 이종족물'로서 완성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 장면에서 보여지듯 작품의 핵심은 아이들이 직접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이것은 청소년물로서 아이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종족물의 근원적인 문제 의식, '인간과 비인간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번외) 그럼에도 불가해한 세계 - 오컬트는 말할 수 없어
여기까지 읽으면 이 작품이 너무나 낙관적으로 비약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데미』의 세계에 해피엔딩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앞부분까지가 세계 -희망편-이었다면 외전인 『오컬트 짱은 말할 수 없어』는 보다 -절망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세계에선 데미를 인간으로 만드는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계는 여전히 '불가해하고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데미'라는 호칭 대신 '오컬트'라는 호칭이 사용되는데, 이는 앞선 작품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게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를 인식한 명칭이다. 오컬트들은 여전히 인간 세계에 편입되지 못한, 세계 바깥의 잔여들인 것이다. 그래서 본편의 '데미'와 외전의 '오컬트'는 설정상 분명 동일한 존재임에도, 둘 사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편에서는 아이들이 본인들의 의지로 '실제로' 세계를 봉합하는데 성공한다. 반면, 이곳에서 '오컬트'들은 '실체'랄 게 없는 존재들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선 가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존재들처럼 그려진다. 이들은 앞서 설명했던 전제, '우주는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라는 법칙에서 비껴나간 이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현세'와 '오컬트' 사이에 중재자인 이가 위치해야하고, 만화는 『데미~』의 초반부가 그랬듯, '오컬트'와 소통할 수 있는 주인공 요코가 '저쪽 세계'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게 된다.
그렇기에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던 '데미'들과는 달리 '오컬트'들은 이 세계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한다. 세계는 그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하고, 그들은 세계 저변으로 밀려난 채 '오컬트'로써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결말에서 그들은 '이쪽 세계'로 환원되지 못하고 '불가해한 저쪽 세계'에 반강제로 머무르게 된다.
이런 오컬트의 특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중에 여우불 여인을 사랑한 인간 남자가 있다. 남자는 인간이면서도 '오컬트'와 동일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 즉, 그는 우주가 정해놓은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간인 것이다. 이 남자가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도 오컬트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데미』와는 사뭇 다른 방법을 통해, 세계의 '불가해성'을 드러내고, '이종족'이 감내해야 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며, 다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우리는 이종족물, 나아가 환상 문학을 접함으로써 세계의 불가해성과 마주한다. 정통 환상 문학 분류에서는 작품들이 불가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신비와 괴기로 장르가 나누어진다고 설명한다. 또한 테드 창은 이러한 불가해성을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냐에 따라 SF와 판타지가 나누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이종족물이 지닌 근원적인 문제 의식은 최근에 하드SF의 방법론, 즉 이종족의 불가해성을 논리적으로 해명함으로써 드러나고 있다. 이종족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를 통해 해당 세계 내에 존재하는 충돌을 봉합하는 방식의 전개가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드SF의 방법론은 우리에게 불가해를 이해로 바꾸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어떻게 해볼 수 있으리라는 관점에는 회의적인 시선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시선은 대개 다크 판타지 등의 장르와 연결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제시한 것들은 그저 막연한 분류일 뿐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철저히 욕구에 기반한 장르로써의 판타지물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어쩌면 이종족물이란 그저 엘프 눈나들을 보며 헉헉대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한 시선을 배제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여타 환상 문학에 비해 이종족이란 소재가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궁금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궁금증은 우리가 미지를 이해하는 오랜 방식이다.
그렇기에 만약 당신이 판타지 만화를 하나 읽는다면 그를 통해 하나의 이해 방식을 얻는다고 말해도 비약은 아닐지 모르겠다. 판타지는 여러모로 삶과 맞닿은 것이다. 그것이 알레고리로써든, 환상 그 자체로써든 말이다.
그러니까 누가 왜 그런 걸 보냐고 묻는다면 이제 이렇게 답하면 된다.
나는 하나의 불가해한 삶을 터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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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갤에 쓴 거 재탕함
호불호 많이 갈리는 만화지만 개인적으로 스핀오프까지 너무 재밌게 읽은 만화라 꺼내보았음
사실 다른 만화도 하고 싶은 거 많았지만 쓰기 귀찮아서 ㅎ;
감사합니다.
서큐버스 눈나 떡인지 주십시오
오 흥미로운 글이네
우화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작품이나, 우화 그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함? 이런 것도 이종족물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나?
우화는 알레고리를 극단적으로 사용한 예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여기서 우화세계는 환상으로서 존재한다기보다 현실을 기저에 깐 '비튼 현실'에 가까움 그래서 우화는 차라리 (남용되는 용어지만) 마술적 사실주의에 가깝지 않을까? 싶음
오... 역시 환상과 현실의 충돌이 중요하구나
길어서 읽진 않았지만 내리며 조금씩 보니 해당 만화에 대한 흥미가 생기네 만약 만화를 보게 되면 읽어봐야겠다
주체화와 타자의 문제를 건드리네. 철학 한 컵 들이붇고 싶은 글이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