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청년기 시절 읽고 있는데 인쇄업 시다바리하면서 지역 유지들 엄청 만나고 다니던데..
자신 소유의 독자적인 업체를 운영하는것도 아니고 일개 직원이 어떻게 저렇게 상류층들이랑 교류하는거임?
뭔가 잘 이해가 안되네. 지금으로 치면 실리콘밸리 it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출중한 젊은이 뭐 이런 급인건가?
- dc official App
댓글 9
야설 따로 제본해서 줬겠지
익명(39.113)2024-03-01 07:56
답글
ㅋㅋ - dc App
Aftnt(wfzr25lzmpnx)2024-03-01 16:02
흥미롭네. 근데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생에서 인쇄업에 종사한게 최소 두번 이상인것같은데, 어느쪽임? 런던에서 일한때하고, 필라델피아에서 신문사 세운 때 하고.
beethoven(foggy4049)2024-03-01 14:06
답글
https://en.wikipedia.org/wiki/Early_American_publishers_and_printers 이런 문서를 보면 미국 역사 초창기에 인쇄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문화, 경제, 정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복합체라고 할수 있는듯. 아마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 인쇄하고 언론이 상당히 분리된 오늘과 달리 전근대엔 언론이란 곧 인쇄와 출판능력을 가진 주체에 의해 행해진것이었으니. 그렇기에 출판사, 신문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지식인이었고, 신문사를 창간함과 동시에 스스로 정치적인 글을 쓰면서 그것을 인쇄하고 출판했던것임. 마르크스가 그랬던것처럼. 그러니 이 시기의 인쇄업자는 단순한 공장 소유주가 아니라 언론인에 가까운 자본가였을거.
beethoven(foggy4049)2024-03-01 14:08
답글
언론 출판과 음악 출판이 완전히 같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근대 유럽 음악사에서도 출판업자의 위치는 생각보다 중요했던것같음. 피아노의 발명과 '교양' 개념의 형성으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지금의 티비 개념으로 피아노를 한대씩 소유했고, 교육받은 여성은 피아노를 칠줄 아는것이 기본이었음.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피아노를 칠때 봐야 할 악보의 출판이란것도 하나의 산업이 됨. 1840년대에 영국에서만 연간 2만3천대의 피아노가 생산되었다고 하니 악보 출판업도 상당한 규모의 산업이었을것임. 게다가 출판업자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작곡가가 쓴 악보를 인쇄하기만 하는게 아니었음. 음악에대한 어느정도의 안목과 지론을 갖추고서 음악가들의 음악 자체에 꽤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던걸로 보임. 예를들어 베토벤의 최대의 명곡중
beethoven(foggy4049)2024-03-01 14:16
답글
하나인 대푸가는 출판업자와 주변의 조언에 의해서 원래 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빠져 독립된 곡으로 출판됨. 이런식으로 출판업자의 의견이 수용되어 곡 구성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것같음. 또다른 명곡 디아벨리 변주곡은 출판업자 디아벨리가 구상한, 많은 작곡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각자의 변주곡을 쓰는 일종의 대규모 콜라보 프로젝트였음. 이런식으로 출판업자들은 상당한 영향력과 주도권을 갖고 있었던것같음. 아마 당시의 기술적 한계가 중요했을것임. 어떤 사람의 말이 사회의 공개된 공간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출판되거나, 사교계에서 회자되거나 둘중 하나였을테니까. 무언가를 출판한다는건 단순한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였던거지.
beethoven(foggy4049)2024-03-01 14:22
답글
아마 필라델피아 시절의 프랭클린이라면 그 자신이 신문을 내는 인텔리로서 명사들을 만났을것이고....런던시절의 프랭클린이라면 좀 더 생각해 봐야겠네.
beethoven(foggy4049)2024-03-01 14:22
답글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이 일한 인쇄소는 1년 뒤 Samuel Keimer에게서 인수한 The Pennsylvania Gazette를 인쇄하는 공장이 되었을것이고, 저 신문은 초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중 하나였음. 그리고 위키에 프랭클린은 Hugh Meredith 와 함께 동업한것으로 나옴. 시다가 아니라 파트너였겠지.
beethoven(foggy4049)2024-03-01 14:26
답글
ㄱㅅㄱㅅ 당시 시대상을 잘 모르겠어서 이해가 잘 안갔는데 인쇄업자가 단순한 직업이 아니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구나 - dc App
야설 따로 제본해서 줬겠지
ㅋㅋ - dc App
흥미롭네. 근데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생에서 인쇄업에 종사한게 최소 두번 이상인것같은데, 어느쪽임? 런던에서 일한때하고, 필라델피아에서 신문사 세운 때 하고.
https://en.wikipedia.org/wiki/Early_American_publishers_and_printers
이런 문서를 보면 미국 역사 초창기에 인쇄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문화, 경제, 정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복합체라고 할수 있는듯. 아마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 인쇄하고 언론이 상당히 분리된 오늘과 달리 전근대엔 언론이란 곧 인쇄와 출판능력을 가진 주체에 의해 행해진것이었으니. 그렇기에 출판사, 신문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지식인이었고, 신문사를 창간함과 동시에 스스로 정치적인 글을 쓰면서 그것을 인쇄하고 출판했던것임. 마르크스가 그랬던것처럼. 그러니 이 시기의 인쇄업자는 단순한 공장 소유주가 아니라 언론인에 가까운 자본가였을거.
언론 출판과 음악 출판이 완전히 같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근대 유럽 음악사에서도 출판업자의 위치는 생각보다 중요했던것같음. 피아노의 발명과 '교양' 개념의 형성으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지금의 티비 개념으로 피아노를 한대씩 소유했고, 교육받은 여성은 피아노를 칠줄 아는것이 기본이었음.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피아노를 칠때 봐야 할 악보의 출판이란것도 하나의 산업이 됨. 1840년대에 영국에서만 연간 2만3천대의 피아노가 생산되었다고 하니 악보 출판업도 상당한 규모의 산업이었을것임. 게다가 출판업자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작곡가가 쓴 악보를 인쇄하기만 하는게 아니었음. 음악에대한 어느정도의 안목과 지론을 갖추고서 음악가들의 음악 자체에 꽤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던걸로 보임. 예를들어 베토벤의 최대의 명곡중
하나인 대푸가는 출판업자와 주변의 조언에 의해서 원래 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빠져 독립된 곡으로 출판됨. 이런식으로 출판업자의 의견이 수용되어 곡 구성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것같음. 또다른 명곡 디아벨리 변주곡은 출판업자 디아벨리가 구상한, 많은 작곡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각자의 변주곡을 쓰는 일종의 대규모 콜라보 프로젝트였음. 이런식으로 출판업자들은 상당한 영향력과 주도권을 갖고 있었던것같음. 아마 당시의 기술적 한계가 중요했을것임. 어떤 사람의 말이 사회의 공개된 공간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출판되거나, 사교계에서 회자되거나 둘중 하나였을테니까. 무언가를 출판한다는건 단순한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였던거지.
아마 필라델피아 시절의 프랭클린이라면 그 자신이 신문을 내는 인텔리로서 명사들을 만났을것이고....런던시절의 프랭클린이라면 좀 더 생각해 봐야겠네.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이 일한 인쇄소는 1년 뒤 Samuel Keimer에게서 인수한 The Pennsylvania Gazette를 인쇄하는 공장이 되었을것이고, 저 신문은 초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중 하나였음. 그리고 위키에 프랭클린은 Hugh Meredith 와 함께 동업한것으로 나옴. 시다가 아니라 파트너였겠지.
ㄱㅅㄱㅅ 당시 시대상을 잘 모르겠어서 이해가 잘 안갔는데 인쇄업자가 단순한 직업이 아니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구나 - dc App